초발심의 순수함이 빛나는 그들
성동구 지역모임 김경자·김경옥 자매 ▲ 김경자 김경옥 자매 장작불을 부어놓은 듯한 무더위에 지쳐 그늘을 찾는 마음으로 조계사 경내에 들어섰다. 평일의 이른 오후, 조금은 한적한 절 마당에 기다란 흰색 천막 한 동이 눈에 띈다. ‘하안거 회향 생명살림기도 접수’. ‘아, 벌써!’ 하는 마음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몇몇 보살님들이 접수를 받고 있다. 5천여 명의 대인원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장관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한 조계사 생명살림기도. 그 생명살림기도에 동참한 것을 계기로 조계사 신도가 된 자매 김경자(63) 보살과 동생 김경옥(59, 보련화) 보살이 있으니, 그들이 이번 호의 주인공들이다. 뜨내기 신도가새내기 ‘리모컨’ 신도로“저희들 당번 날은 7월 23일이에요.” 생명살림기도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들도 동참자 접수 봉사를 맡았다며 조금 수줍은 표정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한다. 조계사 새내기 신도답게 봉사활동조차 설레어 하는 그들 모습은 마치 수줍은 소녀들 같다.두 보살은 서울지역의 많은 불자들이 그렇듯, 종로 근방에 나오면 조계사에 들러 참배하고, 가피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등도 접수하는 보통의 불자였다. 그러다가 조계사 진짜 가족이 된 건 올 2월 16일, 동안거 회향 생명살림기도에 동참하면서부터다. 그때 이야기를 전하는 동생 보련화 보살의 눈빛이 반짝인다.“통도사는 전에 가족들과 몇 번 가본 곳인데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랐어요. 수천 명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도 정말 놀라웠고, 주지 스님 법문도 기억에 남아요. 합장주와 통도사 주지 스님이 직접 쓰셨다는 ‘웃고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자’라는 가훈도 특별한 선물이었어요. 귀한 금란가사 조각을 받고 적멸보궁을 참배한 건 오래오래 잊기 힘들 겁니다. 개인적으로 참배했을 때와는 정말 달랐어요. ‘아, 이래서 사람들이 큰 절을 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했죠.”통도사에 다녀오고 나서 지난 6월, 자매는 기본교육과정(84기)에 나란히 등록했다. 평소처럼 동생이 먼저 “이제 우리도 나이가 있는데 부처님 법을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제안하자 언니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였다,그때부터 자매는 기본교육과정 동기로서 함께 불교 공부를 하고 봉사도 나란히 하는 진정한 ‘도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조계사와 인연 맺어준 성동구 지역모임(지회장 장숙이)의 새내기 회원으로, 봉사활동에 꼬박꼬박 동참하고 임원들이 부탁하면 열 일 다 제쳐두고 꼭 따라주는 자칭 ‘말 잘 듣는 리모컨’ 회원이 되었다.“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들을 잘 챙겨주고 관심 갖고 전화도 해주시는 성동구 지역모임 임원님들 모두 고마울 따름입니다.” 새 도화지에그림을 그리듯두 자매 아래로 막내 여동생이 하나 더 있다. 셋째인 김경희(51) 보살 역시 불자여서 늘 셋이 절에 다니고 취미생활도 함께 했다. 그러다가 작년 9월, 셋째가 퇴직한 남편을 따라 사업차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김경옥 보살은 ‘왼팔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고 한다. 물론 오른팔은 언니 김경자 보살이고…. 도맡아서 웃을 일을 만들던 씩씩한 막내가 빠졌으니 두 언니는 당연히 풀이 죽었다. 막내까지 함께 조계사에서 공부하고 함께 수행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김경희 보살은 여전히 조계사에 등도 달고 무슨 행사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멀리 있는 도반이다. 지금 두 자매는 같은 금호동에 살면서 성동구 지역모임에 함께 나간다. 본래 친정이 경기도 화정으로, 과수원을 하는 부지런한 아버지 덕택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았다. 집안에 종교는 없었다. 혼인도 비슷한 처지의 무난한 사람과 했고, 자매 둘 다 시댁이 불자 집안이었다. 종교를 몰랐던 자매는 시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둘이 더 가까워졌다. 종교가 없었던 친정어머니 49재를 절에서 모신 것도 두 딸의 영향 때문이다.쌓아놓은 복이 비슷한지 둘은 닮은 점이 많다. 외아들을 낳아 혼인시켜 내보내고 부부만 살고 있는데 둘 다 며느리가 사무관급의 공무원이고 불자인 점도 닮았다. 탄탄하게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이종사촌 간인 아들들은 둘 다 세종시에 살면서 부부 동반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한다. 자매가 금호동에 같이 살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먼저 금호1동에 이사와 살던 김경옥 보살이 언니더러 가까이 모여 살자고 제안했다. 노부부만 둘이 사는 처지니 외롭지 않게 자주 만나며 살자는 동생 말에 언니는 1년 반쯤 뒤에 금호1동으로 이사했다. 둘의 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둘은 무엇이든 함께 한다. 남편까지 포함해서 부부가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사찰 순례도 다니다 보니 넷이 만나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요즘은 월요일 아침마다 둘이 금호역에서 9시 반에 만나 조계사에 함께 와요. 기본교육과정 수업이 10시 반에 시작하거든요. 그러고는 점심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만발봉사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데, 작년에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안 빠졌어요. 어떤 지식이나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봉사이니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무조건 늘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빠지겠어요.” 월요일 말고도 자매는 거의 매일 만난다. 처음 하는 불교 공부가 어렵다는 김경자 보살은 “강의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와요. 재수, 삼수할 각오로 공부해요”라며 겸연쩍어하면서도 기본교육과정이 체계적이고 행사도 많아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하단다. 소리 없이 다닐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도반들과 함께하는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색 도화지에 그린 그림이 아주 선명하고 순수하듯, 자신의 불교 공부가 그렇지 않겠느냐며 수줍게 웃는다.기본교육과정을 마치고 경전반에 들어가도 삼수나 사수할 각오라는 그에게 성동구 지역모임 한 노보살님의 “나는 경전반 삼수 중이야”라는 말씀이 은근히 큰 격려가 된단다. 하지만 외아들의 직장 내 진급이나 손주 출생을 비는 기도를 하다가 어느덧 천수경을 달달 외게 되었다는 걸 보니, 그 초발심이 예사롭지 않다. 배우고 돌아서면 까먹는다는 언니를 위해 동생은 경전이나 공부할 중요한 내용을 꼭 2부씩 코팅해서 언니와 나눠 갖는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해도 시어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때에 비하면 상당히 주체적이고 진짜 불자가 된 것 같다고 스스로 평한다.두 보살의 시어머니가 며느릿감의 첫째이며 유일한 조건을 “절에만 다니면 된다”로 내걸었듯, 두 보살의 아들들도 배우자 조건을 “절에 다녀야 한다”라고 못 박았단다. 그 덕분에 불자 며느리를 맞이했으니, 요즘 형편에 그런 복도 허투루 생각지 못할 일이다. ▲ 지역모임 생명살림기도 접수를 받고 있는 김경자 김경옥 자매늘 지금만 같기를두 보살에게 얼마 전부터 새 습관이 생겼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지 않으면 잠자리가 편치 않다. 화엄경 약찬게도 외우고 금강경도 열심히 읽는다. 뜻을 잘 알진 못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편안해진다.자식에 대한 욕심은 눈 감기 전에는 포기하지 못한다는데, 많이 내려놓았다 싶어도 다시 어느 순간 몰록 올라오는 것이 그것이다. 그게 평범한 부모의 마음이다. 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아보니 자신들이 참 복이 많은 사람임을 느낀다는 두 사람. 그동안의 원만한 삶이 얼마나 큰 가피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단다.이번 하안거 회향 생명살림기도 때 성동구 3호차 인솔을 맡았다는 동생을 아낌없이 자랑스러워하는 김경자 보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에게 부처님 법을 알리는 포교사가 되고 싶다는 김경옥 보살. 그 두 사람이 성동구 아니 조계사의 진정한 멀티 리모컨으로 언제까지 그 자리에 그런 마음으로 함께하기를 기대한다.김경옥 보살의 한 마디가 여운으로 남는다.“훌륭한 목수는 굽은 나무도 버리지 않는답니다. 비록 나이 예순이 다 되어 조계사에 나온 부족한 불자이지만 남들 앞에 나서서 포교할 수 있는 날도 분명히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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