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이켜보는 종이거울
불립문자(不立文字).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를 어떻게 글이라는 틀 안에 가둘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의 길을 걸으셨던 것처럼, 그 가르침을 공부해가는 우리 불제자들은 언어에 기대어 불법을 익히고 서로 소통한다. 조계사보는 바로 그 언어의 힘을 빌려, 조계사라는 이 도량에 뿌리내리고 정진하는 불제자들의 삶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어낸다. 창간 14년 반 만에 300호를 맞이한 조계사보 가운데서 지금까지 필자가 편집역을 맡아 진행한 것은 마흔여덟 권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많은 변화와 오르내림이 있었겠지만, 돌아보면 다행스럽게도 한 호 한 호 좀더 나은 그릇이 되고자 하는 서원만은 변함없었던 듯하다. 그 흐름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고민해온 4년여의 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건 단연코 작년 한해 신도 자원활동가로 꾸려진 편집팀 여러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새로운 사보의 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계사보는 재작년 11월부터 만남을 갖기 시작한 편집팀 기자들의 활약으로, 더욱 생생한 스님들의 육성과 신도들의 이야기가 담겨 신도 곁에 한 발짝 다가가는 사보로 거듭나고 있다. 믿는 구석이 생긴 조계사보가 다른 사보(寺報)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표지사진에서 먼저 알아챌 수 있다. 큰살림에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신도들, 비할 데 없는 원력으로 정진하는 불자들이 모인 조계사이기에 이들의 모습 그대로가 사보 표지에 등장한다. 표지인물로 등장한 신행단체를 상세히 소개하는 <표지이야기> 코너는 편집팀원들이 순번을 정해 나눠맡는다. 지난 한해는 특히 편집팀원들의 취재활동으로 꾸며진 코너들이 빛을 발했다. 연배로는 최고참인 김민자 보살님은 <아름다운 사람들> 코너에서 매달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의 불자를 만난다. 조계사에서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면서도 알기 어려운 우리 곁 도반들의 삶의 향기를 한바닥의 종이 위에 실어 보낸다. 편집팀 자원활동가들은 취재를 통해 조계사의 사람들과 조계사의 구석구석을 알게 되며 느끼는 보람을 종종 말하곤 한다. 안연춘 보살님이 매달 먼 길을 달려가 큰스님을 찾아뵙고 오는 <큰스님을 찾아서> 또한, 취재 역량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코너다. 세납으론 여든, 아흔이 되셨어도 정진의 원력 변치 않으시는 큰스님들의 기운이 읽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사중스님과 불교학자, 편집팀 기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상히 밝혀 전하는 코너들은 늘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는다. <이달의 법문>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가꾸어 가도록 주지스님께서 길을 밝혀 주시는 코너다. 독자 설문조사에서 가장 먼저 읽는 코너, 유익한 코너, 좋아하는 코너에 모두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총무국장 도림스님이 맡고 계신 <불교사상>은 팔정도, 십이처 등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1년 동안 원주 도은스님께서 많은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신 <신행상담> 코너는 1월호로 연재를 마치게 된다. 동국대 김종욱 연구교수는 1년 동안 맡아온 <생명윤리와 불교>에 이어 새해부터 <불교로 철학하기>를 통해 서양철학과 불교사상을 비교한다. 편집팀 이운철 거사님은 해박한 불교지식을 바탕으로 <벽화이야기>를 맡아 꾸리고 있다. 앞으로 조계사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어내는 다양한 모양새의 코너들을 늘려갈 예정이다. 필자가 아는 한 불제자들의 가슴은 1℃쯤 더 따뜻하다. 사진가 김성철의 <포토에세이>는 아름다운 자연과 산사의 풍광에 담긴 작은 깨달음으로 사보의 첫머리를 연다. 조계사 종무실장으로서 사보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있는 류지호 편집장의 <편집실에서>는 조계사의 한달 살림살이를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담담한 소회록이다. 편집팀 이은주 보살님이 맡고 있는 <조계사 옛사진>에서는 지금은 잊혀진 조계사의 옛모습을 빛바랜 사진 속으로 찾아간다. <회화나무에세이>는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공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펜을 들어 불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다. 신도들이 직접 필자로 참여하는 코너들도 조계사보의 감칠맛을 더한다. 매월 조계사의 정기 성지순례지를 소개하는 <구도기행>은 고즈넉한 산사를 향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보리의 싹>은 행사나 교육, 법회 등에 참가했던 소감이나 평소 일상생활을 하며 마주친 크고 작은 깨달음의 순간을 신도들이 직접 적어 보내는 독자투고 코너다. 또한 조계사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하는 <사중소식>, <신도회 마당>, <알립니다>, <신행캘린더>에서는 지난달에 있었던 일과 새 달에 예정된 일들이 소개된다. 실하게 맺은 열매들을 모두의 몫으로 나누고, 다양한 행사에 더욱 많은 이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참여의 불씨를 지핀다. 조계사보 한 호에는 평균 20여개 코너에 원고지 200매치 글과 40여 장의 사진이 실린다. 코너마다, 행간마다, 사진 한 장마다 부처님 가르침과의 만남이 있다. 그렇기에 조계사보는 나를 돌이키게 하는 종이거울이다. 불립문자. 문자로는 설 수 없다는 그 신묘한 진리의 세계. 조계사보에서는 문자들이 서고 걷고 내달려서 모든 불자들의 마음에 가닿기를 기원한다. 토요일 저녁이면 집집마다 가정법회가 열리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아들딸이 ‘사보 읽어주는 남자’, ‘사보 읽어주는 여자’ 역할을 자청하는 모습을 언젠가 만나기를 꿈길에서도 바래본다. [발송 봉사팀 모집]조계사보에서는 지금까지 용역업체에 맡겨온 발송 작업을 직접 관리할 사보 발송팀 봉사자를 모집한다. 한 달에 한번씩 사보발행일인 25일 경에 모여 사보를 봉투에 넣고 주소스티커를 붙여 우편집중국에 전달하는 손쉬운 일이지만, 매달 만여 통의 사보를 착오 없이 발송하기 위해서는 책임감을 갖고 동참할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2월 15일까지 편집실로 신청하면 된다. (☏ 732-2115) [조계사보 변천사] 조계사보는 1989년 7월 3일, 타블로이드 신문만한 크기의 네 쪽짜리 공간에서 처음 출발해, 한 주 걸러 한 번씩 격주로 신문을 냈다. 다음해 19호부터는 지면을 두 배로 늘렸고, 5년 뒤 142호부터는 일간지 신문만한 크기의 네 쪽 공간으로 몸을 바꿨다. 이름이 수년마다 바뀌어 조계사보라 하기도 하고, 조계신문, 격주간 조계신문이라 하기도 했다. 작든 크든 외형적으로 신문의 모양새를 하고 있던 조계사보가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2000년 1월이었다. 252호부터 A4용지만한 크기의 책자 형태로 열두 쪽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에는 크기를 조금 줄여 B5용지만한 크기로 내고, 조금씩 늘려온 지면이 이때쯤엔 40여 쪽에 달했다. 89년 7월 창간 이후 2004년 1월에 300호를 발행하기까지, 14년 반 동안 조계사보는 네 번 이름이 바뀌었고 결국 다시 처음의 이름을 갖게 됐다. 크기가 한 번 커졌다가 점점 작아져 모두 네 번 몸을 바꿨으며, 격주간으로 10년을 내다가 월간으로 바뀌었다. 300호인 2004년 1월호에 이르러서는, 50여 쪽 가량의 지면에 조계사보라는 이름을 걸고 만2천부 내지 2만부를 발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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