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의 말사 무량사를 가다
2010년 6월의 성지순례소낙비가 내렸다. 초록이 지친 나뭇잎이 빗방울에 더 향기를 더한다.진초록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빗물에 초록물이 떨어질까 몇번인가 빗방울을 손바닥에 받았다. 갑자기 내린 소낙비로 뜀박질을 해야 하지만 순례단은 언제 준비했는지 하얀 비닐우비를 입고 천천히 경내로 들어선다.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말사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번지 만수산기슭 소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이절은 통일 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고려 때 크게 융성했고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인조(1636-1646)에 재건되었다한다. 극락전 (보물 제356호)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석등(보물 제233호)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 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오층석탑(보물 제185호)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 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극락전 소조아미타삼존불(유형문화재 제164호)1633(인조11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조선중기의 불상중 충청도에서는 가장큰 규모이며 17세기의 시대적인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조성뎐대 및 조성자 등이 확실하게 전하므로 학술자료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불상 견구에도 귀중한 예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또한,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유랑생활을 하다가 말년에이 절에 들어와 59세 때 입적하였고 사리를 모신 부도와 직접그린 자화상이 보존되어 있다.극락전 후불탱화(유형문화재 제163호)는 18세기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신래봉안 불화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희귀한 3폭의 아미타삼존후불탱화로서 특이한 혼합안료의 사용과 화려한 채색기법 등을 살펴 볼 때 조선시대의 불교회화사 및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자료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한다.2010년 6월의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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