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기도 입재
동지(冬至, the winter solstice)기도 입재▲ 조계사 동지기도 입재불기2556년 12월 19일 수요일 오전 11시 20분 조계사 대웅전에서 ‘동지기도 입재식’이 봉행되었다. 입재식에는 400여 불자와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이 함께 하였다. 법주(法主) 도문 스님은 “모든 수행의 기본은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아침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침이 없다.”며 증일아함경의 사의단품(四意斷品)으로 법문을 시작하였다.▲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모든 별빛 가운데 달빛이 제일인 것처럼, 여러 착한 공덕의 서른일곱 가지 도(道)가운데 방일(放逸)하지 않는 행이 가장 제일이요 가장 높고 귀하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네 가지 끊기[四意斷]를 닦는다.생기지 않은 나쁜 법은 방편(方便)을 구해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나쁜 법은 방편을 구해 사라지게 한다.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방편(方便)을 구해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방편을 구해 더욱 많아지게 하여 마침내 잃지 않고, 완전히 수행하여 마음에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네 가지 끊기를 닦도록 하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이어 주지 도문 스님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부지런한 사람을 말하였다.“함부로 굴지 않고 방일하지 않으면 모든 좋은 일의 근본(根本)이며, 모든 좋은 일의 원인(原因)이며, 모든 좋은 일의 시작(始作)이다. 마치 씨앗을 대지(大地)에 뿌리면 씨앗은 대지를 의지하여 싹을 띄우듯 부지런함은 모든 좋은 일 가운데 제일인 것이다.”법주(法主) 도문 스님은 “부지런한 수행자가 해탈 할 수 있다며 새해에도 모든 불자들이 부지런히 살자”고 하였다.▲ 불자들이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이날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 전에 팥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안거기간에는 스님들이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 정진하는 기간이므로 대중공양(불교신도가 여러 스님들께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일)이 필요한 때다. 조계사에서는 동짓날 팥죽으로 대중공양을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자비로 나눔의 법을 실천하고자하는 것이다. 불자들의 많은 동참을 바란다.맑은빛 청정계율 등불삼아 차가운 얼음좌복 도반삼아적막한 겨울침묵 스승삼아 부처님 보리방편 찾아나서끝없는 모든중생 제도위해 수행에 여념없는 스님들께마음의 자비나눔 실천하면 청정한 우리스님 정진하네.<선원대중공양>이날 입재한 동지기도는 동짓날까지 3일간 진행되며, 회향법회는 12월 21일(금) 오전 10시 30분에 봉행된다. 회향날에는 ‘팥죽 대중공양’이 진행되며, ‘새해 달력’ 및 ‘동지헌말’ 무료 배포가 있을 예정이다.* 동지의 유래동지[冬至]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동지[冬至]는 원래 상고시대에는 새해의 기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즉, 중국 주(周)나라와 당(唐)나라 때에도 동지를 설로 잡고 달력의 시작으로 삼았으니 이는 태양의 운동이 시작되는 날을 동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중국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지불공(冬至佛供) 의미신라와 고려에서는 동지를 전후하여 팔관회(八關會)를 지냈는데, 이를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라고 한다. 불교는 24절기의 하나인 동지를 불공의례로 수용하면서 민간신앙의 요소도 흡수하게 되었다. 사찰에서도 동지불공을 할 때 팥죽을 쑤어 불전에 공양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불공의례는 헌공(獻供), 정례(頂禮), 참회(懺悔), 발원(發願), 회향(回向), 시식(施食)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특히 동지불공에서는 지난해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해의 희망을 발원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가 있다.* 불교에서의 동지우리나라에서는 동지를 귀한 날로 여기고 있으나 언제부터 그래왔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옛날 중국 총림(叢林)<대중 스님들이 모여 사는 선원>에서는 동재라 하여 절의 주지 스님이나 일반 신도가 시주(施主)가 되어 동짓날에 대중을 위하여 베푸는 재회를 봉행하였다.총림의 4절은 결하(結夏): 여름결제·해하(解夏): 여름해제·동지(冬至)·연조(年條)를 말하며, 그 중 동지를 동년이라 하여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여 왔으며 동지의 전야를 동야(冬夜)라 하여 성대하게 치러 왔다. 불교에서 동지(冬至)의 전야(前夜)를 크게 중요시한 것은 연말연시(年末年始)를 맞아 젊은 스님들이 은사(恩師)스님이나 스승님을 찾아뵙고, 일 년 동안의 가르침에 감사함을 회향(回向)하는 뜻에서 인사를 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동지팥죽의 의미동지에는 절식(節食)으로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이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 오랜 풍속이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쓸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팥떡·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지가 초승(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다 한다.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이미 동짓날에 액운을 막는다 하여 쑤어 먹었다는 기록이 『목은집(牧隱集)』, 『익재집(益齋集)』 등에 있다. 이들 서적에 의하면, 팥죽을 삼복(三伏) 중에서도 더위를 먹지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하여 퇴서피사(退署詖辭)의 뜻으로 먹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참고문헌] 韓國民俗大觀3, (1981) 東國歲時記, 三國遺事, 易經. 荊楚歲時記불교와 세시풍속(안길모1993) 韓國의女俗 (張德順,培英社,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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