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완료]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 남전스님 (조계사 선림원장)
- 2020년 06월호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질문> 칠불통계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는데, 이 게송에서 칠불은 과거 일곱 분의 부처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이렇게 부처님이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부처님을 믿는 것은 다신교의 입장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중국 당나라 때의 문인이었던 백거이白居易(백낙천)와 조과 도림(鳥窠 道林)선사의 문답으로 유명한 게송이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입니다.“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면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라는 내용 이지요.과거 일곱 부처님을 포함한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가르침으로 제시된, 쉽지만 깊은 지혜가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칠불(七佛)은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에 계셨던 여섯 분의 부처님(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과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한 일곱 분의 부처님들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칠불 이외에도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에게 수기(授記)를 하신 연등부처님을 비롯하여 24분의 과거불이나 53분의 과거불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또 서방정토에 계신다는 아미타부처님, 미래세에 출현하실 미륵부처님도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칠불통계의 게송으로 알려진 일곱 분의 부처님인 것이지요. 부처님의 정확한 숫자나 명칭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스스로도 불교의 가르침은 오래된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서 번성했던 옛 도시를 찾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던 것입니다. 다만 실재(實在)했던 석가모니부처님에 의해서 발견되어 우리에게 설해졌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은 공부의 자세입니다. 불교에서 여러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을 모신다고 해서 불교가 다신교(多神敎)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잘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많은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세계관은 오히려 다신의 입장이 아닌 일원적(一元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원불멸하고 보편타당한 진리가 그것입니다. 진리는 부처님이 계시든 아니든 본래부터 존재하고, 부처님은 그런 진리를 몸소 깨달으신 분입니다. 우리도 부처님같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존재, 생명의 존재로 수 많은 부처님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수에 제한을 받을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진리(眞理)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라고 부처님이 강조하셨듯이 우리가 귀의해야 할 대상은 부처님의 육신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몸소 구현했던 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보다 폭넓은 중생구제를 표방하는 대승(大乘)의 불교가 성립하면서 부처님의 원력(願力에) 의한 구원이 강조되었습니다. 각각 특색 있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실천행이 설해졌고, 그에 따라 불자들과 사찰에서는 여러 부처님을 모시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부처님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진리를 표방하는 분들이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목적을 지닌 분들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의 숫자나 이름보다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속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부처님은 영원하고도 보편타당한 최고의 진리를 깨달으신 분이며,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와 같은 진리를 깨달음으로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 진리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시든 안 계시든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진리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그것을 깨닫는 분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여러 부처님이 계심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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