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완료] 가피인연
- 노희순 (자유기고가)
- 2021년 07월호
다만 잘 알지 못하는 걸 알게 하는 것
제26대 신도회 법수향 박영환 자문위원장 2001년경, 제17대 신도회 임기가 시작될 즈음, 신도회 자문위원회가 처음 구성되었다. 신도회 활동을 오래한 전임 임원들 중에서 신심 깊고 덕망 높은 신도들에게 사중 대소사를 자문받고자 함이었다. 한 집안의 웃어른이 많은 연륜과 다양한 경험으로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듯, 신도회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굵직한 사중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 자문위원들의 소임이다. 지난 25대 신도회에 이어 다시 오늘에 이른 여섯 명의 자문위원들. 아주 오래된 도반 사이인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법수향(法秀香) 박영환 자문위원장을 만났다. 제26대 신도회 법수향 박영환 자문위원장 제26대 신도회 자문위원회 신년하례 언뜻언뜻 부는 바람 자락이 아직 매서운 한기를 몰고 다니는 신축년 정초. 부처님께 세배를 드리려는 불자들로 말미암아 경내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삼배만 올리고 바로 나와야 하는 대웅전 앞에는 늘어선 줄이 제법 길었다. 경건하고 간절한 그 마음이 서로에게 닿는 듯, 향 올리고 촛불 밝히는 손길마다 정성이 지극하다. 절집에서는 설날 아침 일찍, 법당에 나아가 부처님께 세배를 올린다. 통알(通謁)이라고 하는데, 삼보(佛·法·僧)의 은혜에 감사하는 새해 의식이다. 불보살님의 가피로 나라와 국민이 평화롭고 평온하기를, 모든 중생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새해 첫 기도인 셈이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사중 어른스님들께 세배를 올린다. 이를 통알과 구별해서 세알(歲謁)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어른스님들께 세뱃돈을 받거나 드리기도 하면서, 서로 덕담을 나눈다. 절집의 오래된 전통이다. 신도회의 자상한 웃어른인 자문위원회 코로나19로 인터뷰조차 조심스러운 시기. 때마침 자문위원들이 주지스님께 세배 드리러 모인다기에 “저도요!” 하고 그 세배단 시간에 맞춰 약속을 정했다. 주지스님과 신축년 첫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긴장할 법도 한데, 역시 백전노장(?)들은 달랐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설날 있었던 일이며 자녀들 이야기, 총무원장스님 신년사 내용 등, 주제도 가지각색이다.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의 찐팬으로 활약한 이야기에 까르르 웃고, 한 암환자의 삼보일배 순례담에 감동받는다. 옷고름을 고쳐 매주고 매무새도 살펴주면서 지루할 틈 없이 화기애애하다. 친정집 거실에 모여 앉은 사이좋은 자매를 보는 것 같다.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신도회 전체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배를 드렸지만, 올해는 단체별로 각각 20분씩, 주지스님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주지스님은 “차 한 잔도 못 내드리는 채로 새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새해 덕담과 함께 올해 할 일에 대한 당부 말씀을 전한다. “신도회 어른인 자문위원님들이 잘 이끌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새해는 코로나19로 조심스런 상황이지만, 주변 건물 정리 문제나 활용방법 등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야 합니다.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그렇게 면담을 마친 직후, 자문위원회는 신도회 사무처로 자리를 옮겨 새해 첫 모임을 가졌다. 제26대 신도회 자문위원회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다만 알지 못하는 줄만 알면, 바로 견성이니자문위원회 출범은 제17대 회장단(2001) 때, 당시 주지 지홍 스님의 뜻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신도회 전임 임원들 중에서 활동기간이 길고 경험이 많으며, 신도들 사이에서 봉사와 신행으로 존경받는, 한 집안의 웃어른 같은 인물이 위촉된다. 제26대 신도회의 자문위원회는 법수향 박영환 위원장을 비롯해서 부위원장 다섯 명(보리심 송영란, 법성심 함정희, 대덕수 고재경, 원불화 변임숙, 자비안 김춘미), 총 여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신도회 수석부회장이나 부회장, 지장법회나 관음전관리팀 등 각 팀 팀장 등으로 활동한, 경력들이 매우 화려하다. 특히 박 위원장과는 24대 신도회에서 같이 활동했거나 같은 단체에서 20~30년간 호흡을 맞춰온 도반들이어서 그 끈끈함이 다른 팀과 비교가 안 된다. 25대 구성원들이 그대로 26대로 넘어온 점도 그 결속의 촘촘함을 넘볼 수 없게 만든다.그런 자문위원들의 마음이 지금 하나로 통하고 있다. “신도회 임원들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잘하고 있으니, 우리는 뒷바라지만 잘하면 된다.” ‘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 박영환 자문위원장은 자문위원회의 할 일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가 할 일은, 신도들이 자기 본분을 알고 수행할 방향을 잘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좀 추상적인가요?”‘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은 보조지눌 국사의 〈수심결(修心訣)〉에 나오는 글이다. 풀어서 쓰면 ‘다만 알지 못하는 줄만 알면 바로 견성’이라는 뜻이다. 한 단체의 자문위원이라고 하면, ‘그저 (수동적으로) 의견을 내고, 후원금을 조금 더 내는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박 위원장의 아주 신선한 신념이다. 신도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수행에 게으르지 말라는 당부뿐이라고 한다. 어머니께 물려받은 불심법수향, 박영환 위원장은 서울 토박이다. 중구 을지로 3가에서 태어나 그 동네에서 자랐다.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 덕분에 배 속에서부터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 여섯 남매 중 셋째 딸인 박 위원장은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칠월칠석 하루 전에 절에 가서 밤새 기도하는 어머니를 지켜본 기억이 또렷하다. 어머니는 방대한 양의 경전을 술술 외워서 주변 신도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머니의 기도에는 늘 여섯 남매가 있었다. “너희들이 내 맘 안에 있다. 육남매 모두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기도한단다.”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박 위원장은 그 깊은 사랑을 갚지 못한 것을 평생 마음 아파한다. 어머니의 가장 큰 은혜는 모태신앙이다.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준 것도 감사하다. 맏며느리로서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때, 북적거리는 게 좋다면서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셨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피하지 않고 잘될 거라는 밝은 믿음으로 당당히 마주했다. 맏며느리가 힘든 줄 몰라서 박 위원장도 맏아들과 결혼했다. 친정과 시댁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별다른 굴곡도 없었던 덕분에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별로 없다. 조계사를 찾아온 것도 기도보다는 불교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서였다. 불교대학만 마치면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그만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기도하고 법문하는 스님들 모습을 보고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았어요. 불교의 에너지가 느껴졌고, 교리 공부에 환희심이 났어요.” 불교대학(44학번) 주간반에 다니면서 얼떨결에 학생회 부회장을 맡았다. 남편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공동 경영자였고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였다. 신도회 활동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신도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그 알 수 없는 조화로, 일 년 뒤에는 제17대 신도회 수석부회장이 되어 있었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둘째 아들네로 가셨어요. 저희 집이 45층이었는데, 어지러워서 못 계시겠다고……. 부처님 일 제대로 하라는 가피 같았어요.(웃음)” 그렇게 시작해서 쭈욱, 공백기 몇 년을 빼고는, 신도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자문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그 20여 년간 가슴 벅찬 가피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피는 조계사에서 만난 ‘도반들’이었다. 그 소중한 인연들이 그의 사업과 삶의 위기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조계사 신도라는 자긍심이 나날이 높아졌고, 나날이 단단해져가고 있다. 지금은 ‘액티브 시니어’시대나이를 물으면 박 위원장은 ‘액티브 시니어’라고 대답한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는 활동적인 노년층이라는 뜻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와 소비를 적극 즐기면서 활동하는 노인세대라는 신조어다.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세대로서, 인터넷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그야말로 능력 넘치는 어르신들이 주인공이다. 그 대답에서 박 위원장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지. 주변을 돌아보고 사회에 회향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의 멋진 삶을 박 위원장과 자문위원들에게 기대해본다.제26대 신도회 임원 부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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