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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잊는다고들 했다. 잊어버릴 것이라 했다. 그런데 왜 잊혀지지 않을까? 세월이 그만큼 지났으면 잊을 수 있을 텐데 왜 또렷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 그는 건강치 못했고 병약해서 한 줌의 볏 집같이 힘없고 가녀린 사람이었다. 내가 보호해 주고 돌봐야 할 사람이었는데도 지금은 내 가슴속을 꽉 채운 그리운 사람이 되었다. 삼십여 년의 병 치다꺼리가 귀찮지 않았느냐고 하면 그것이 행복이었노라고 이제는 답할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힘들었던 일상들이 지금은 행복의 딱지로 남아있다. 잊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고. 지금의 삶이 행복해서도 아니다. 채워지지 않는 고픔이 있고 시리게 아픈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노라면 크고 작은 흔적들을 가슴속이나 육체에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그 흔적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즐거움도 슬픔도 묻어 나온다.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에 못 이겨 차라리 죽어버리자 하는 순간에도 흔적은 있다. 누구나 고통을 가슴에 지니고 살고 싶지는 않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아우르고 달래며 살지 않으면 세상살이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심재화 (정선화, 수필가, 27대 신도회 사회본부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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