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차례이지만 새끼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새끼를 낳은 뒤에 차례를 지킬 것이니 그때까지 차례를 건너뛰게 해주십시오.” 싸카미가는 거절했지요. “그대의 순번을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 조용히 요리사 앞으로 나아가라.”
암사슴은 싸늘한 대답에 크게 실망하여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인 니그로다미가 보살 사슴을 찾아가서 간청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알았소. 그대 대신 내가 목숨을 내놓겠소.”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요리사의 사냥터로 가서 자신의 목을 내놓고 누웠습니다. 요리사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여겨 왕에게 보고했고, 왕이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찾아와 보살사슴에게 물었습니다.
“사슴왕이여, 나는 황금빛 그대의 안전을 보장했는데 왜 여기에 누워 있는가?”보살사슴이 말했습니다.“대왕이여, 새끼를 밴 암사슴이 와서 자신의 순번을 다른 사슴과 바꿔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의 고통을 다른 자에게 덮어씌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목숨을 그 암사슴에게 주고, 암사슴에게서 죽음을 받아 여기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저 이런 사연 때문입니다.”왕은 크게 감탄하며 말했지요.
“이보게, 황금빛 사슴 왕이여, 이렇게 그대처럼 인내와 자애와 연민으로 가득 찬 자를 사람 가운데서도 본 적이 없소. 그대에게 청정한 믿음이 생겨났소, 일어나시오. 나는 그대와 그 암사슴의 안전을 보장하겠소.”그러자 보살 사슴이 청하였습니다.
“저희 둘의 목숨을 보장해주셔서 고맙지만 남은 사슴들은 어찌 하시렵니까?”
“다른 사슴들도 모두 안전하게 살도록 보장하겠소.”
“대왕이여, 사슴들의 안전을 보장하셨지만, 다른 네 발 달린 동물들, 두 발 달린 동물들, 물에 사는 동물들은 어찌하시렵니까?”
“그들 모두의 안전도 보장하겠소.”
이리하여 보살사슴은 왕에게 모든 생명을 지켜줄 것을 청하여 약속을 받았으며, 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왕에게 다섯 가지 계행을 일러준 뒤 마지막으로 당부했습니다.
“대왕이여, 정의롭게 행하십시오. 부모와 자녀, 성직자와 장자들, 시민과 백성들을 정의롭고 평등하게 대하면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로 갈 것입니다.”
보살인 니그로다미가는 이렇게 왕에게 부처님의 위엄을 갖추고서 가르침을 설한 뒤 사슴 무리에 둘러싸여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암사슴은 연꽃 봉오리 같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새끼 사슴이 놀다가 싸카미가에게 다가가자 어미인 암사슴이 말리면서 시를 읊었습니다. 니그로다미가를 섬기고싸카미가에게는 다가가지 마라. 싸카미가 곁에서 사느니니그로다미가 곁에서 죽는 것이 낫다. 부처님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서 말했습니다.
“당시 싸카미가는 지금의 데바닷따, 그를 따르는 무리는 데바닷따의 무리이고, 암사슴은 장로비구니, 암사슴이 낳은 새끼사슴은 장로비구니의 아들인 꾸마라 깟싸빠, 왕은 아난다였으며, 니그로다미가 보살 사슴은 실로 나였다.”(본생경 12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