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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동명스님의 선禪심心시詩심心

여섯 마리 원숭이나 잘 단속하여라

  • 입력 2023.11.01



그대 한남사에 너무 오래 머물렀는가 

관서지방 최고의 명승지를 외면하고

바야흐로 언덕에 단풍이 물든 날

성근 비는 가을 강을 건너는데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멀리 천 개의 산을 떠돌겠다 하는데

쏘다녀서 이익될 것이 무에 있다고

여섯 마리 원숭이나 잘 단속하여라


久住漢南寺 關西一勝遊

구주한남사 관서일승유

岸楓初染日 疎雨過江秋

안풍초염일 소우과강추

隻影歸何處 千山遠欲浮

척영귀하처 천산원욕부

周流無所益 須 六

주유무소익 수쇄육미후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민스님에게 주다(贈敏禪子)」


만해스님의 님은 단풍이 한창일 때 떠났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라는 문장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일까? 단풍은 묘하게 이별과 어

울리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서산대사가 관서의 명승지 한남사에서 기거할 때였다. 바야흐로 단풍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할 때, 마침 성근 비가 강을 건너오는 시점이었다. 젊은 수행자 민스님이 서산대사를 찾아와 엎드려 고했다.“큰스님, 오늘 한남사를 떠나려고 합니다.”“그래, 왜 떠나려 하는고?” “일천 산을 돌아보기 위해 만행을 떠나려 합니다.”나는 언젠가 벽송지엄(碧松智嚴, 1464~1534) 선사의 “천개 산의 눈을 다 밟고 나서야/ 돌아와 흰구름에 누웠네(踏盡千山雪 歸來臥白雲)”(「의선소사에게(示義禪小師)」)라는 시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다. 천 개 산의 눈을 밟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떠돌아야 하나? 벽송선사는 참선을 공부하는 초학자인 의선소사에게 한 곳에 안주하지 말고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떠나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부처님의 생애가 바로 그러했다. 부처님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으셨고, 한 곳에 눌러 계시면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을 경우에 더더욱 길을 떠나셨다. 부처님께서 첫 교화를 시작한 이래 60명의 아라한을 배출한 직후였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른바 전법선언(傳法宣言)을 하시고는, “나도 이제 우루웰라의 세나니로 가리라”라고 말씀하신 후 홀로 길을 떠나셨다. 60명의 아라한 중에서 첫 가르침을 받은 다섯 비구를 제외하면, 그들은 모두 바라나시의 재벌2세 아니면 바라나시 유력인사들의 아들이었다. 따라서 바라나시에서 눌러 살게 되면 부처님의 도량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고, 부처님의 전법활동 또한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안정보다는 변화와 발전, 확산을 구했다.민스님도 부처님이나 벽송지엄 선사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산대사는 “쏘다녀서 유익할 것이 없다”고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서산대사야말로 평생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묘향산, 지리산, 금강산 등 전국의 크고작은 산을 두루 유람한 운수납자(雲水衲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쏘다니는 것이 유익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유행(流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수행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산대사는 젊은 후학에게 “여섯 마리 원숭이나 잘 단속하여라”라고 당부한다. ‘여섯 마리 원숭이’는 눈·귀·코·혀·피부·의근(意根) 등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원숭이[獼猴]로 비유한 이유는 원숭이는 인간의 뜻대로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행자의 감각기관도 열심히 정진하고자 하는 수행자 본래의 뜻과는 달리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서산대사는 수행은 날뛰는 감각기관을 잘 통제하는 데 있지,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부처님 시대에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사미승 상낏짜가 5백명의 도둑을 교화한 일이 있다. 5백명의 도둑들이 희생제를 지내기 위해 비구스님 한 명의 목숨을 바치기로 했다. 당시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든 상낏짜가 자원하여 제물이 되기로 했다. 도둑의 수장이 날카로운 칼을 높이 들어 상낏짜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그런데 목에 닿기도 전에 칼이 두 동강이가 나버렸다. 도둑의 수장은 새로운 칼로 다시 내리쳤지만, 그 칼도 두 동강이가 되어버렸다. 이에 도둑의 수장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용서를 빌면서,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겠다고 결의한다. 상낏짜가 5백명의 새로운 비구들을 데리고 스승 사리뿟따에게 인사한 후 부처님을 찾아가 문안을 올리자 부처님께서 법문을 베푸신 후에 게송을 읊으셨다.감각기관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부도덕하게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라도 계행을 지키며 마음을 고요히 닦는 것이 훨씬 낫다. 「법구경」 제 110송서산대사의 가르침은 중요한 것은 감각기관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이므로 천 개의 산을 유행하는 데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벽송대사가 젊은 초학자에게 천 개의 산을 유행하라고 가르친 뜻은 무엇일까? 부처님처럼 아무리 좋은 곳일지라도 절대로 안주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서산대사는 유행에 집착하는 민스님에게 유행보다 중요한 것은 감각기관을 다스리는 것이니 오직 수행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친 것이고, 벽송대사는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수행처에 집착하는 의선스님에게 한 곳에 안주하지 말고 만행하면서 시야를 넓히라고 가르친 것이다.우리는 흔히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가르침에 집착하여 그것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부처님은 “나의 설법은 뗏목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금강경」)라고 말씀하셨다. 뗏목이 강을 건너는 데 유용했다고 해서 강을 다 건넌 다음에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단풍이 아름답다고 해서 단풍잎을 박제로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단풍은 나뭇잎이 나무를 떠나겠다는 이별의 통보이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이별을 통보한 민스님은 그때 서산대사를 떠났을까? 그때 떠났든 떠나지 않았든, 민스님은 이 시를 통해서 크게 변화했을 것이다. 지금은 서산대사도 민스님도 없다. 그들이 없다고 해서 진정으로 없는 것인가? 지금도 그때처럼 가을이면 단풍이 이별을 통보한다.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잠실 불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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