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연재완료] 정운스님의 경전이야기

유마힐소설경

  • 입력 2023.10.01

1. 『유마경』은 어떤 경전인가? 

『유마경』의 온전한 이름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다. 『유마힐소설경』은 범어로 말하면, 『비말라킬티 니르데샤 수트라(Vimalak rti-nirdesa-su- tra)』이다. 비말라킬티(Vimalak rti)는 유마維摩로서 무구칭無垢稱 혹은 정

명淨名·이구칭離垢稱으로 의역된다. ‘명성이 자자한 (거사)’ 혹은 ‘때가 묻지 않은 (사람)’ 등 청정한 이미지를 뜻한다. 니르데샤(nirdesa)는 설법·법문의 뜻이 담겨 있다. 곧 『유마경』의 전체 경전 명을 보면,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유마거사의 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마경』의 성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반야계 계통이다. 『반야경』이 반야·공사상의 이론적·논리적인 학문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면, 『유마경』은 반야 사상의 마지막 완성 단계로서 현실적·실천적 측면에서 반야·공사상이 전개된다. 이 경은 바이살리(Vaisa- li)를 배경으로 재가신자인 유마거사와 부처님의 제자들 그리고 수많은 보살들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유마경』의 구성

이 경은 3회 14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 분 : 1품∼4품으로, 바이샬리에 계시는 석가모니부처님과 10대 제자들을 위시한 수많은 비구들이 함께 하는 법회. 정종분 : 5품∼10품으로, 유마거사 방장에서의 법문. 

유통분 : 11품∼14품으로, 다시 바이샬리 부처님 법회. 제5 「문수사리문질품」∼제9 「입불이법문품」이 『유마경』의 주요 핵심 부분이다. 특히 제5 「문수사리문질품」 제6 「부사의품」은 부사의한 법문으로 본경을 ‘부사의경’이라고도 하는데, 「촉루품」에서 ‘불가사의해탈법문’이 있어서다. 『화엄경』의 ‘부사의한 해탈경계’와 같은 뜻이다. 또한 제9 「입불이법문품」은 선禪에 영향을 미쳐 『유마경』을 ‘선경禪經’이라 칭한다. 그것은 유마의 일묵一黙을 선종에서는 우레와 같은 침묵이라고 표현하며, 유마의 침묵이 불입문자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승되기 때문이다. 

 

3. 『유마경』이 편찬된 성립배경

『유마경』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부파불교 수행자들이 법(法, dharma)에 천착함을 비판하는 데서 내용이 시작된다. 대승불교를 일으킨 보살들은 300여 년간 지속되었던 기존 교단의 승려들을 소승[h naya- na, 聲聞·緣覺]이라 비판·폄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대승(maha- ya- na)’이라고 지칭하면서 대승불교 경전을 결집하였다. 또한 『유마경』은 대승교도 입장에서 이전 교단 성문승들의 자리적自利的인 측면을 비판하며 중생에 대한 염

원과 이타적利他的인 자비를 주제로 한다. 더 나아가 자비도 집착하지 않는 공사상적인 측면[無住心]의 바라밀

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보살승’이라고 자청했다. ‘보살’이라는 호칭은 석가모니불의 과거 전생에 선업善業을 닦으며 정진했던 행자行者를 지칭한다. 대승불교 보살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보살로서의 길을 닦은 인행因行으로 부처가 되었듯이 자신들도 석가모니부처님을 롤모델로 삼았다. 

 

4. 『유마경』의 설법자, 유마거사는 어떤 분인가?

유마거사는 대승불교의 종교적 이상인 재가신자의 본보기로 존경받는다. 유마거사는 어느 곳에 처해 있든 동화되지 않고, 청정한 마음으로 번뇌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유마거사는 선수행자로도 인식되는데, 당나라와 송나라 때 재가자들의 수행참여 의식을 높여주는 롤 모델(Role model)이 되고 있다. 유마거사와 비견해 중국의 방거사(?~ 808), 우리나라의 부설거사(신라시대)를 불교의 3대 거사라고 한다. 북위 시대, 용문석굴과 운강석굴 불상에 영감을 준 것도 『유마경』의 영향이며, 서역의 여러 석굴의 변상도에도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나라 석굴암에도 유마거사가 모셔져 있다. 

 

5. 경전 내용 1 : 우리가 살고 있는 질척한 현실세계가 그대로 정토

「불국품」에서 장자의 아들 보적이 ‘어떻게 하면 불국토가 청정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처님께서 다음의 세 가지 요점으로 답변하셨다. 

첫째, ‘정토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에 ‘모든 중생들이 사는 곳이 그대로 보살의 불국토이다.’라고 답하신다. 모

든 중생들이 사는 곳이 그대로 보살의 불국토이다.

둘째, ‘어떻게 하여야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정토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직심直心·심심深心·보리심菩提心·6바라밀·4무량심四無量心[자·비·희·사]·4섭법四攝法[布施·愛語·利行·同事] 등을 닦은 중생들이 태어나 머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셋째, ‘어떻게 하여야 정토가 건설되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이렇게 답변하신다. “정토가 건설되려면, 보살은 직심을 갖고 있으므로 좋은 일을 행하고[發行], 좋은 일을 행하므로 깊은 마음[深心]을 얻으며, 심심을 따르므로 생각이 조복되고, 생각이 조복되므로 말한 대로 행하며[說行], 말한 대로 행하므로 지은 공덕을 회향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정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유심 정토설과 타방 정토설이다. 『유마경』은 ‘유심唯心 정토’를 강조한다. ❶ 타방他方 정토설은 아미타불과 극락세계가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보고, 오로지 아미타불 명호를 칭념稱念함으로써 아미타불의 내영來迎에 힘입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실재론적 정토관이다. 이 정토관은 내 몸밖에 실재하는 아미타불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과 귀의이다. ❷ 유심唯心 정토설은 정토종에서 내세우는 타방정토설과 반대로 선종에서 내세우는 사상이다. 타방이 아닌 현세의 현실 세계가 극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 자리가 정토임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행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마음을 청정히 하여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바로 서 있는 자리가 정토라는 점이다. 에픽테투스(Epiktetos;55~135년경) 철학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나에게 행복이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고난이나 역경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다.” 『유마경』은 현 우리가 살고 있는 질척한 현실세계가 그대로 정토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정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청정케[淨心]한 사람이란 바로 보살이다’라고 하였다. 경전에서는 심청정心淸淨 국토청정國土淸淨이라고 하는데, 내 마음이 청정한 현실의 시공간을 불국토로 건설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밝아야 세계가 밝아지는 것이요, 내 마음이 행복해야 주변 환경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6. 경전 내용 2 :그대, 마음 청정하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인가?

사리불 존자는 ‘세존께서 보살행을 하실 때 마음이 청정했을 터인데, 어찌하여 이 사바세계는 왜 청정하지 못할까?’라는 의구심을 갖는다. 이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마음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와 달이 청정치 못해 눈먼 장님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장님의 허물이지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사리불아, 중생이 죄업 때문에 여래의 국토가 청정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허물이 아니다. 사리불아, 나의 이 국토는 청정하지만 네가 보지 못할 뿐이다.”

「불국품」 내용이다. 여래의 불국토는 청정하지만, 중생이 청정한 불국토를 보지 못하는 것은 여래의 잘못이 아니라 중생의 번뇌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일음一音으로 가르침을 주지만 중생들은 자신의 그릇대로[능력]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중생의 마음이 청정치 못해서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지혜가 부처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만큼 근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7. 경전 내용 3 : 연꽃은 맑은 고원이 아니라 진흙 밭에서 꽃을 피운다.

“부처의 해탈 가운데서 62견을 구할 수 있고, 부처의 해탈은 일체중생심一切衆生心의 행行 가운데서 구할 수 있다” 「문수사리문질품」유마거사가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여래의 종자種子입니까?” 문수보살이 답변하였다. “62견과 일체 모든 번뇌가 모두 부처되는 종자이다. 왜냐하면 출세간법出世間法으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못한다. 마치 높은 육지에서는 연꽃이 나지 못하고, 낮고 질척한 진흙탕에서만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불도품」“연꽃은 맑은 고원의 물에서보다는 오히려 진흙 밭에서 꽃을 피운다.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 없다. 불도는 굳이 깊은 산골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전개하면서 불법을 버리지 않는 곳에 있다.” 「불도품」위의 내용은 3독의 성품이 곧 해탈의 자리라는 뜻이다. 바로 깨달을 수 있는 본 성품, 즉 불성은 번뇌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말한다. 『유마경』에서는 ‘불성’이라는 단어 대신 여래종如來種·불종성佛種性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곧 해탈과 깨달음이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심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차안즉피안此岸卽彼岸이라고 한다. 

 

8. 경전 내용 4 : 한 개의 등불로 수천 등에 불을 밝히다.

그 회중會衆에 천녀들이 있었는데, 천녀가 유마거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들이 비록 마魔의 궁전에 살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머물러야 합니까?”“그대들이여, ‘무진등無盡燈’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는데, 그대들이 배워 실천해야 합니다. 무진등이란 마치 한 등불이 다음 등불에 불을 붙여주고, 이어서 백천 등에도 똑같이 불을 밝혀주어 어두운 곳을 다 밝혀 온 천지를 밝게 해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 보살이 백천 중생을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發하게 할 수 있지만, 원래의 보리심을 처음 발한 등불은 꺼지지 않으며 그 설법에 따라 좋은 법을 더할 수 있으니, 이것을 무진등이라고 합니다.” 위의 내용은 「보살품」에 있는 ‘무진등 법문’이다. 하나의 등불이 수천 등에 등불을 밝혀 줄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신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심을 키워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진등은 한 사람의 원력과 신심으로수많은 사람을 구제해줄 수 있다는 이타 사상에 근원을 둔다. 

 

9. 경전 내용 5 : 불이법문 

「입불이법문품」에 문수보살이 31명의 보살들에게 불이不二[상대와 차별을 넘어선 절대평등의 경지]에 대해 묻는다. 31명의 보살들은 차례 차례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불이 사상에 대해 언급한다. 생·멸, 청정함·더러움, 선·악, 세간世間·출세간出世間, 유위有爲·무위無爲, 생사生死·열반涅槃 등 이 세계에 존재하는 대립 개념을 차례대로 말한다.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불이 사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체법에 대해 언어도 없고, 말할 것도 없으며, 드러낼 것도 없고, 인식할 것도 없어 일체 모든 문답을 여윈 것이 절대 평등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문수보살이 자신의 답변을 마치고, 유마거사에게 불이법문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묵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문자도 없고 언어까지도 없는 그 자리가 참된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이법문은 『유마경』의 최고조의 사상이 담긴 부분이다. 불이不二는 산스크리트어로 아드바야(a-dvaya)라고 하며 중성명사로 쓰일 때는 통일성(unity)·동일성(identity)·궁극적 진리(ultimate truth)라는 뜻이다. 유마의 일묵一黙이 담겨 있어 선사상에 매우 중시하며, 유마의 침묵이 불입문자不立文字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승되고 있다. 


10.『유마경』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사람들 

❶ 승조(僧肇, 374∼414)는 『유마경』을 읽고, 승려가 되었다. 승조는 중국의 역대 번역가로 유명한 구마라집의 제자였다. 승조는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책을 필사하는 직업으로 생업을 삼았다. 필사 일을 하다 보니 고전과 역사에 지식이 풍부했고, 노장사상에 깊이 심취되어 있었다. 승조에게 있어 도교의 노장 사상 이외 다른 것은 시시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유마경』을 접한 뒤 환희심을 얻어 승려가 되었다. 승조가 지은 『조론』은 공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 수준 높은 저서로 알려져 있다. 

❷ 영가 현각(永嘉玄覺, 665∼713)은 어려서 출가해 경율론 삼장을 두루 섭렵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선사가 ‘남방에 혜능 큰 선지식이 있으니, 찾아뵐 것’을 권했다. 현각이 조계에 가서 혜능에게 인가를 받고, 하룻밤만 묵고 왔다고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고 한다. 현각은 혜능과의 선문답으로 인가를 받은 뒤, 홀로 수행하며 『유

마경』을 읽고, 확철대오를 하였다. 이후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했는데, 바로 이 책이 「증도가證道歌」이다. 

❸ 왕유王維(700∼761)는 당나라 때 시인으로 중국문학사의 대표 인물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자연을 주제로 한 서정 시인이요, 화가로 한 시대 이름을 날린 분이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의 유명한 큰 스님들을 모셨고, 왕유도 선사들과 교류가 매우 많아 비문을 써주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성 왕王 씨에 유마힐의 ‘마힐’을 따 스스로 왕마힐王摩詰이라고 자청하며, 『유마경』을 독송하였다. 그는 문학 작품 속에 경전의 사상을 많이 인용하여 중국문학사에서 그를 ‘시불詩佛’이라고 부른다

❹ 장상영(1043∼1121)은 송나라 때 정치인으로 무진거사無盡居士인데, 간화선 수행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장상영은 원래 불자가 아닌 유학자였다. 과거 입제 후, 서적과 관련된 일을 했는데, 하루는 사찰을 방문해 경전의 방대한 목록을 보며, ‘나의 공자 성인의 책들이 오랑캐 책보다 못하구나.’라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가 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책상 위에 놓인 『유마경』을 읽게 되었다. 그는 ‘유마거사의 병은 지대地大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또한 지대를 여읜 것도 아니다. 수·화·풍대도 또한 이와 같다.’는 구절에 탄식하고, 경전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장상영은 훗날 매우 신심 깊은 불자가 되어 무불론이 아닌 「호법론護法論」을 지었다. 이 「호법론」은 유교·불교·도교, 3교의 일치를 논한 저술로 높은 평가를 받아 대장경에 입장入藏되었다. 

 

11. 경전 수지한 공덕 

“어떤 이가 경전을 수지·독송·해설한다면, 마땅히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가 이 경권을 사경한다면 마땅히 그 집에는 부처님이 계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전을 듣고 따라 기뻐한다면, 이 사람[사경하는 사람]은 일체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법공양품」에 다섯 가지 수행 방법에 대해 설하고 있다. 수지受持 독讀 송誦 위인해설爲人解說 사경寫經[=書寫]이다. 이 점은 대승불교 경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지만, 『유마경』 또한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를 실천할 때, 반드시 큰 공덕이 있다고 하였다.

 

정운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