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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천년숲 사찰기행

남도의 가을 햇살이 토해놓은 붉은 그리움 햇살과 바람, 사찰이 일군 영광 불갑사 꽃무릇숲

  • 입력 2023.10.01

백제불교의 초전(初傳) 가람 영광 불갑사(佛甲寺). 불갑사라는 이름에는 ‘모든 불교 사찰의 시원(始原)이요 으뜸’

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서기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인도에서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 땅에 불교를 들여와서 처음 지은 절이 불갑사라고 전한다. 다만 불갑사 창건에 관해서는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불교 관련 기록이 거의 사라져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다.불갑사를 품은 불갑산(佛甲山)의 초가을이 짙푸른 녹음과 붉은 꽃무릇에 취해 춤추듯 일렁였다. 단풍보다 먼저 찾아온 꽃무릇이 그 진한 그리움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컥울컥 불갑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을 하늘은 바다처럼 파랗고 깊은데, 가녀린 녹색 줄기 위에 핀 여섯 장의 붉디붉은 꽃잎이 더없이 화사하고 고혹적이다. 어느 누군들 무리 지어 피고 있는 꽃무릇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리오. 

 

불갑사 입구에서 불갑사 부도밭까지 꽃무릇길


국내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 불갑산 불갑사

 

매년 불갑산의 가을은 상사화 축제로 절정을 이룬다. 상사화 축제라고는 하나 사실 꽃무릇 축제로서, 어느덧 영광지역을 넘어서 전국 규모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23회째인 올해는 9월 15일에서 24일까지, 열흘간 열린다고 한다. 그 축제의 중심에 불갑사가 있다. 불갑사 만당 주지스님의 기획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불갑산 주변 약 330만 제곱미터(백만 평)의 꽃무릇 자생지에서 펼쳐져 약 30만 명의 관람객을 영광으로 끌어들인다. 불갑사는 사찰 부지 약 49.5만 제곱미터(15만 평) 규모의 꽃무릇 단지를 확대 조성, 모름지기 불갑산 상사화축제가 국내 최대 규모로 발돋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불갑산 입구 공원에서 시작해서 불갑사 부도밭을 지나 불갑사 옆 저수지 부근까지 이어지는 잘 닦인 꽃무릇길만 걸어도, 마음속 번뇌가 실바람처럼 사라지고 가을 숲의 정기가 온몸을 가득 채우는 데 충분하다. 가을꽃 꽃무릇은 백합목(目) 수선화과(科) 상사화속(屬)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이 석산(石蒜)인데, 알뿌리가 돌에서 난 마늘을 닮아서 생긴 이름이다. 중국 양쯔강과 일본이 원산지다. 꽃과 잎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따로 핀다는 점에서 상사화(相思花)로 뭉뚱그려 불리지만, 꽃무릇과 상사화는 엄연히 다르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먼저 나서 지고 나면 칠석 전후인 양력 8월경에 꽃이 핀다. 반면 꽃무릇은 추석 앞뒤인 백로와 추분 사이(양력 9월 초순~중순)에 꽃이 먼저 피고, 뒤늦게 난 잎은 이듬해 봄까지 간다. 구분하기 쉬운 건 꽃의 색깔이다. 상사화는 연분홍이나 진노랑색이고, 꽃무릇은 붉은색이다. 또한 꽃무릇의 수술과 잎의 길이가 상사화의 그것보다 더 길다. 꽃무릇은 절 근처에서 많이 핀다. 방부 효과가 있는 알뿌리가 절에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알뿌리에서 녹말을 추출해서 불경을 제본하거나 탱화를 그릴 때, 또는 고승들의 진영을 붙일 때 쓰는 접착제를 만들었다. 영광 불갑사와 더불어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등이 대표적인 꽃무릇 군락지다. 불갑사에는 상사화에 관한 애틋한 전설이 전해온다. 먼 옛날 노스님을 시봉하며 수행하는 젊은 스님이 어느 날 절에 온 한 여인을 보고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스님은 여인이 기도를 마치고 떠나자 그리움이 지나쳐 시름시름 상사병을 앓다가 눈을 감는다. 그러자 스님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었고, 사람들이 이를 상사화라고 불렀다.

 

 

구산선문보다 먼저 꽃 핀 선문 도량

 

조선 중엽 백암성총(1631~1700) 스님의 《용천사 숙석루계권문》에 따르면, 불갑사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청원행사(靑原行思, ?∼740) 선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행사 선사는 육조혜능 대사의 상수제자로 이름이 높았으니, 불갑사가 통일신라 말기에 개산한 구산선문보다 훨씬 앞선 785년 이전에 세워진 첫 선문 도량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을 헤아려보면 백제는 384년의 불갑사요, 고구려는 375년(소수림왕 5)에 세워진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가 효시다. 신라의 경우는 아도 스님이 선산지방에서 포교활동을 처음 펼친 모례의 집으로 볼 수도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부른 천경림(天鏡林)의 흥륜사(興輪寺)를 최초의 절로 꼽는다. 불갑사는 고려 때인 1350년 각진 국사(1270~1355)가 불사를 일으켜 크게 번창한다.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의 13세 사주(社主)로 선풍을 일으킨 진각 스님이 왕명으로 불갑사에 주석하게 되자 제자 1천여 명이 몰려

들어 총림을 이루었고, 31개의 산내 암자에 5백여 칸의 전각, 사방 십여 리에 절 토지가 있었다고 한다. 절 입구 부도밭에 진각국사자운탑(1355)이 남아 있고, 대웅전 옆쪽에 귀부와 비신만 남은 진각국사탑비(1359)가서 있다. 부도밭에는 이 밖에도 화엄종주 설두 대사 기념비(940), 회명당 처묵 대사 부도(1680), 청봉당 부도, 서산당 부도, 만암 대종사 부도 등 여섯 기의 부도와 다섯 기의 탑이 불갑사의 옛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불갑사는 정유재란(1597)의 한복판에서 전일암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린다. 1608년 법릉 선사가 네 번째 중창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등을 복원했으나, 조선 말 훼불기에 20여 년간 비어 있다가 1870년 설두유형(1824~1889) 스님이 전각을 보수하고 고창 연기사 터의 사천왕상을 모셔와 봉안했다. 일제 강점기에 종정을 지낸 만암(1876~1957) 스님이 보수불사를 했지만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대가 산내 암자를 불태웠다. 이후 1974년과 1976년에 지선 스님과 수산지종(1922~2012) 스님이 각각 불사를 이끌었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오른쪽으로 보리수나무와 명상체험공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이국적인 건축물인 탑원이 눈길을 끈다. 탑원은 간다라 지역의 사원 건축 양식의 표본인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 탑원을 본따 조성한 것이다. 간다라는 백제 때 법성포로 들어와 불갑사를 창건한 마라난타 존자의 고향이다. 이 탑원의 작은 공간들은 승려들이 수행하던 굴이라고 한다.

 

 

국내 최대 불갑사 사천왕상과 대웅전


남방불교 양식의 대웅전과 국내 최대의 목조 사천왕상

 

불갑사 대웅전은 17세기 초에 지어진 팔작지붕의 다포 양식 건물로 서향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기와 명문으로 1764년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안에 모신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마타불), 불복장 전적 등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삼존불 조상기(造像記)에는 1635년에 이 삼존불을 조성했음을 밝혀 두었다.불갑사 대웅전에는 독특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불단이 건물의 정면 대신 측면을 향한 것도 그렇고, 지붕 한가운데의 툭 튀어나온 보탑도 예사롭지 않다. 측면으로 앉은 불단 배치 양식은 지붕 용마루 중앙의 보탑과 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 남방 불교권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연꽃과 국화 무늬를 조각해 끼워 놓은 어칸 창호도 아름답다.특히 이채로운 건 삼존불 옆 기둥에 조각된 용과 족제비의 모습이다. 용 한 마리와 족제비 두 마리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왼쪽 기둥과 오른쪽 기둥의 조각이 조금 다르다. 서로 자신들 놀이에 정신이 팔린 듯한 분위기가 익살스럽다. 더불어 석가모니불 대좌 아래에서 목을 빼고 이빨을 드러내 난간을 문 용들의 모습도 불갑사 대웅전에서만 볼 수 있어서 신선하다. 꽃무릇 길을 따라 산책길을 오르다 보면 마침내 불갑사 금강문이 나타난다. 금강문 계단 위로 경내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중문격인 ‘천왕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천왕문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는데, 국내 목조 사천왕 중에서 규모가 가장 웅장하여 높이가 450센티미터나 된다. 이 사천왕상은 1876년 설두 스님이 전북 무장 연기사에서 옮겨왔다. 설두 선사와 고창군수의 꿈에 나타난 사천왕들이 자신들이 비를 맞고 있으니 불갑사로 옮겨주면 사찰을 잘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신기하게 여긴 설두 선사와 군수가 사천왕을 배 네 척에 나눠 태우고 법성포를 통해 불갑사로 모셨다. 이후 사천왕이 약속한 대로 불갑사에는 한 번도 불이 나지 않았고, 특히 한국전쟁 중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불갑사 세 가지 보물 중에는 2006년에 지정된 불갑사 불복장 전적(보물 제1470호) 3종 259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천왕 복장에서도 적지 않은 전적들이 나왔는데, 이들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동종 등 기타 문화재들과 함께 수다라성보관에 보관되어 있다. 불갑사는 이 밖에도 일광당, 만세루, 무량수전, 천왕문, 팔상전, 칠성각, 범종루, 대법고 등 귀중한 문화재들을 품고 있다. 

 

 

참식나무 군락지와 불갑사 향로전


 

천연기념물 112호 참식나무 군락지

 

불갑사에는 꽃무릇 버금가는 귀한 식물이 있다. 천연기념물 112호인 참식나무인데, 700년 넘은 보호수 수준의 참식나무도 사찰 주변에 자생하고 있다. 불갑사는 또한 참식나무 자생 북방 한계선으로, 절 뒤편 산 중턱을 중심으로 3,034,016 제곱미터에 불갑사 참식나무들이 분포되어 있다.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교목으로, 키가 10미터에 달하고, 울릉도와 남쪽의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 대웅전 뒤쪽, 향로전 앞에도 참식나무 몇 그루가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식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일화도 애틋하다. 삼국시대에 불갑사 정운이란 스님이 인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려는데, 스님을 남몰래 흠모해온 인도 공주가 붉은 열매를 건넸다. 정운 스님이 그 열매를 절 뒤편에 심고 정성껏 가꿨는데, 그것이 퍼져서 불갑사 참식나무 군락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징표인 이 참식나무를 비롯해서 꽃무릇까지, 불갑사는 이래저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절인 것 같다. 참식나무 열매는 향기가 좋아 향수 재료로 쓰이고, 목재도 질이 좋아 가구재와 완구재 등에 쓰인다. 가을에 익은 열매를 따서 말리지 않고 즉시 심어야 싹이 튼다고 한다.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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