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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정은우의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

나주의 건칠불상 3구 놀라운 심향사, 불회사, 죽림사의 건칠여래좌상

  • 입력 2023.10.01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136cm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 128cm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114cm

현재,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백암산 백양사>가 개막되어 성황리에 전시 중이다. 이 전시에는 제18교구 본사 백양사만이 아니라, 말사의 성보들도 다수 포함되어 다양하고 풍요로운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나주에 위치한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 각 법당에 모셔졌던 3구의 건칠불이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이 건칠불상들은 모두 사찰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어 그동안 법당을 나와 외부로 나온 적이 거의 없는 귀한 작품들이다. 따라서 한 곳에 전시된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이는 다른 박물관과 차별된 조계종 산하 불교중앙박물관의 건립 목적이자 특성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주 건칠불 3구는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조형적 특징은 물론 좋은 보존 상태. 제작 기술적 측면과 시대적 특징이 잘 담겨 있다. 제작 시기는, 심향사 건칠불은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고려시대, 불회사와 죽림사는 조선전기 15세기로 추정된다. 고려부터 조선에 걸쳐 제작된 시기성 외에도 전라도를 대표하는 건칠불상이자 나주라는 같은 지역에서 제작된 점, 그리고 서로 다른 제작 기술과 내부까지 공들인 특별한 건칠불이라는 상징성과 가치를 보인다.

이 건칠불상의 공통점은 경계가 완만한 육계와 중간계주, 그리고, 눈에는 수정이나 유리로 눈동자를 감장하고 나발은 나무나 흙으로 하나씩 만들어 정교하게 붙인 점 등이다. 단면 두께는 부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cm 전후이고 가장 두꺼운 경우도 2cm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가벼운 무게감이 특징인데 이러한 기술은 우리나라 건칠불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제작기술이다. 건칠불(乾漆佛)이란 삼베나 모시 등의 직물과 옻칠을 10번 내외로 층층이 겹쳐 바른 다음, 내부의 점토를 제거하여 만든 상을 말한다. 따라서, 건칠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칠과 포를 붙이기 전에 점토로 그 원형을 제작해야 한다. 이렇게 제작된 원형은 완성된 불상의 형태에 가깝도록 불신(佛身)의 모습이나 옷주름의 선을 비롯한 세부적인 부분까지 표현하게 된다. 실제로 상이 완성되고 난 뒤, 안쪽의 내형토를 제거한 모습을 보면 옷주름 뿐만 아니라 결가부좌한 다리의 형태까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원형 제작 단계부터 상을 세밀하게 조형하는 것은, 일본의 경우와는 다른 우리나라 건칠상의 특징이다. 이러한 기법은 옷주름 사이에 포와 옻칠층이 달라붙어 그 상태 그대로 건조되므로 대강 만든 원형 위에칠과 포를 두껍게 쌓아 세부적인 모양을 만드는 것보다 형태가 일그러질 위험성이 적으며 가볍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이다. 내부가 마치 표면을 조각한 듯 신체와 그 선이 살아 있으며, 그 위에 연분을 섞은 호분으로 정성스럽게 바름하였다.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의 내부 역시 절금박을 붙여 화려함과 장식성이 뛰어나며, 심향사 건칠상은 내부까지 금으로 도금한 유일한 작품이다. 이러한 내부 처리는 다른 건칠불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매우 드문 경우이다. 당시, 불상 제작을 기획한 사찰과 상을 만든 조각승, 시주한 불심깊은 후원자들이 이 상에 들인 노력과 정성스런 마음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예외적으로 엑스레이 촬영 조사에서 단면에 삼베를 사용한 여러 겹의 층이 확인되지 않아 새로운 기술로 작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창의적인 기술로서 삼베를 층층이 바른 것이 아니라 삼베와 옻칠을 섬유질 덩어리로 만든 다음 표면에 붙이는 새로운 시도로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효과를 가지는데, 비슷한 작품이 1395년경의 영덕 장륙사 건칠보살좌상과 1501년에 만들어진 경주 기림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이다.건칠불의 주재료인 漆(칠)은 뛰어난 방부성과 광택을 지닌 천연도료이나 생산량이 적어 예전부터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으며, 이를 이용한 칠공예품 역시 오랫동안 특권층의 사치품으로 여겨져 왔다. 제작 비용만이 아니라,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건칠상은 약 20여구 정도에 불과하다. 즉, 주재료인 옻의 가격이 비싸고 습도를 필요로 하는 옻칠의 마르고 다시 칠하는 반복과정에 날씨가 크게 좌우되는 까다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또는 사찰에서 재료나 그 어려운 제작과정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건칠상의 표면이 금으로 도금되어 있어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다른 불상과는 차별된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볼 수 있다. 특히 심향사 건칠여래좌상의 경우 주름 표현에서 다른 재료의 불상과는 다르게 능숙하게 처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옷자락의 늘어짐이나 무릎에 접힌 옷주름을 보면 그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에 놀라게 된다. 왼쪽 어깨에 여러 겹으로 접혀진 조밀하고 복잡하게 늘어진 옷 주름이라든지, 왼쪽 팔꿈치에 표현된 삼각형 꼴로 잡은 맞주름, 왼쪽 무릎에 드리운소매자락,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의 자연스러움은 사실적이면서도 조화롭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에 다부지고 근엄한 종교적인 위엄, 편삼 위에 대의를 걸친 단정한 변형통견식 법의 그리고 편평한 가슴에 내의와 이를 묶은 띠 매듭은 부드럽고 유려한 옷 주름과 달리 평면적이어서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심향사 건칠여래좌상의 손 모습은 두 손이 다르고 무엇인가 약간 어색하다. 즉, 오른손은 들어 어깨높이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무릎 위에 얹은 손모습을 취하였다. 왼손은 원래의 것이 아닌 새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원래는 오른손과 같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을 취하였을 것이다. 재료가 같은 나주 건칠불상 3구는 만든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신체 비례나 얼굴 모습에서 차이점이 느껴진다.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눈꼬리가 올라간 눈, 콧등이 편평한 날카로운 코, 꽉 다문 작은 입으로 다부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반면,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어 부드럽고 유머가 있는 인상에 관람자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듯 인간적인 표정이 정겹게 느껴진다. 반면,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의 선비같이 잘 생긴 수려한 얼굴이다. 이 불상들은 13세기 후반경부터 15세기경까지 이어서 만들어졌으며, 이는 나주의 옻칠생산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지역적 생산물을 응용하여 재질의 특수을 반영하고 부드러움과 정교한 조형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삼베와 칠을 한겹 한겹 층층이 올려 만들거나 혹은 섬유질 덩어리로 만든 새로운 건칠기법의 등장 및 나주지역의 지역적 특수성이 강조된 우수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나주 건칠불상의 추가적인 감상 포인트는, 밝은 불빛 아래 결가부좌한 건칠불을 볼 수 있는 전시 환경, 바로 근접하여 정면에서 부처님과 눈을 마주치고 바라보며 시간을 초월한 순간을 경험하는 체험이 아닐까 한다. 또한, 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은 사찰과는 달리 가깝게 다가가서 예배대상으로서가 아닌 예술적인 측면으로 고요히 감상하기 좋은 조건을 가진다. 하나 하나 정성껏 붙인 서로 다른 크기의 나발들, 흘러내리고 접혀지면서 리듬을 타는 옷자락과 옷주름의 부드러운 조형성을 비교하면서 감상해 보길 권한다. 

특별전 <백암산 백양사>는 불교중앙박물관에서 12월 10일까지 전시된다. 

 

 심향사, 불회사, 죽림사 간츨불상의 얼굴 부분




정은우 (부산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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