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말로 선업을 지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
좋은 말도 한두번이지, 길어지면 병이 되거늘
하물며 좋지 않은 말을 여러번 함이랴
만약 남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면
내 입으로 옮기지 말고 입 다물어 침묵하라
好言一二長爲病 況是多番不好言
호언일이장위병 황시다번불호언
如或聽人言不好 莫移吾口默無言
여혹청인언불호 막이오구묵무언
해담치익(海曇致益, 1862~1942), 입을 경계하라(誡口)
사람의 혀를 뽑아 길고 넓게 펴서 만든 밭이 있다. 혀를 뽑아 늘린들 얼마나 넓을까 싶은데, 그 밭에서 농부가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고 커다란 나무가 자라오르기도 한다니, 우리의 혀를 최대한
길게 뽑고 넓게 펴서 광활한 벌판을 만드는가 보다. 혀를 뽑아 늘릴 때의 고통도 말로 표현할 수 없거니와 혀를 쟁기로 갈아 만든 밭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오르고, 또 그것들을 거칠게 뽑을 때의 고통은 또 얼마나 극심하겠는가? 이 지옥의 이름은 발설지옥(拔舌地獄), 말로 짓는 악업을 많이 지은 이들이 가야 하는, 염라대왕이 관장한다는 그 지옥이다.요즘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한 시대에는 구업을 짓는 것이 훨씬 쉬워져서 발설지옥에 인구가 넘쳐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만 대화할 수 있었고, 또 한때는 전화를 통해서만 대화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채팅 등 다양한 통신수단을 통해 대화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져서 구업(口業) 짓는 것이 참으로 쉬워졌다. 발설지옥의 공무원들이 업무가 너무 과중하여 아우성이라는 웃지 못할 소식이 들리는 듯하다. “A가 너(C)를 두고 못된 놈이라고 욕하더라!”A가 친구 C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A의 말을 C에게 전하지 말아야 한다. 이 시는 이간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너무 직접적이어서 시답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선시는 시적이어야 한다는 관념으로부터 자유롭다. 가끔 선시가 예술작품의 향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예술작품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선시 속에서 아름다움보다는 삶의 교훈을 얻는다.‘좋은 말(好言)’은 충고하는 말이나 타이르는 말로서 남을 가르치는 말이다. 충고는 한번 들으면 고맙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꾸 듣게 되면 누구나 짜증난다. 선사는 좋은 말도 길어지면 병이 되거늘, 좋지 않은 말을 자꾸 하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 선사도 “내가 남을 헐뜯으면 남도 나를 헐뜯는다(毁人人亦毁)”( 「사람 때문에 느낀 바 있어(因人述懷)」)라고 노래했다. 남이 나를 헐뜯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남을 헐뜯는 것도 삼가야 한다.나도 한때는 비판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멋지게 비판하는 사람을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잘 나가는 사람의 단점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을 재미있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태도였다.부처님 시대에 웃자나산니 비구는 항상 다른 비구들의 결점을 찾아내어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다른 비구들이 그를 부처님께 데리고 갔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어 그에게 바른 길을 일러주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고 욕한다면 그는 번뇌만 더욱 늘어날 뿐 선정에 이르지 못하며 부처님의 가르
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없게 되느니라.”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면 부드럽게 충고하는 것은 좋지만,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고 욕하는 것은 자신의 수행에 큰 장애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이의 결점을 찾아내어 공개하고 욕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서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말씀이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아내어 그들을 자꾸 비난하는 자는 번뇌가 더욱 늘어나리니 결코 열반의 경지에 들지 못하리「법구경」 253송만해용운(卍海龍雲, 1879~1944) 스님이 뽑은 채근담에서 “남의 나쁜 점을 탓할 때는 엄하게 지적하지 말고/ 잘못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적해야 한다(攻人之惡無太嚴 要思其堪受)”는 문장에 밑줄을 쳤다. 우리는 남의 나쁜 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만해스님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지라고 충고한다.인간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금하광덕(金河光德, 1927~1999) 스님은 “말은 위대한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사온 바 저희들은 참된 말을 바로 써서 말의 위력을 실현하겠습니다”( 「보현행자의 서원」)라고 서원했다. 인간에게 말이 없었다면, 오늘의 찬란한 문명도 없을 것이며, 부처님의 위대한 사상도 없을 것이다. 구업(口業)에는 악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창조의 힘을 발휘하는 구업은 선업이다. 통신수단이 발달되어 구업을 짓기 쉽다고 했는데, 말로 짓는 악업만 짓기 쉬운 것이 아니라 말로 짓는 선업도 짓기 쉬워졌다. ‘참된 말을 바로 써서 말의 위력을 실현하는 것’도 쉬워졌다는 뜻이니, 지금이야말로 말로 선업을 지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일조해야 하리라.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잠실 불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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