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광릉보다 더 오래 숲을 지킨 봉선사광릉 숲은 본디 조선 왕실의 사냥터였다. 1468년 세
조의 능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사방 15리(6킬로미터)가 능림으로 지정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출입을 통제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31배(3만 8,000여 헥타아르)나 되는 숲이 나무를 베거나 나물을 캘 수 없는 곳,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되었다. 덩달아 능침사찰 봉선사 주변의 숲도 포행하는 봉선사 스님들 외에는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보존림으로 지정되어 계속 보호받았다. 그렇게 550여 년간 왕실과 국가의 보호를 받은 광릉 숲은 훼손되지 않고 천연 자연림을 지킬 수 있었다. 그 숲은 식물 946분류군, 조류 180종, 포유류 32종, 곤충류 3,986종의 서식처가 되었다. 대표적인 희귀종 식물인 광릉요강꽃을 비롯해서, 하늘다람쥐와 장수하늘소, 까막딱따구리 등 20여 종의 천연기념물도 깃들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이 사는 곳이 광릉숲이다. 그 식물 다양성 때문에 2010년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선정했다. 설악산, 제주도, 신안 다도해에 이어 국내에서 넷째 번으로 선정된 것이다. 광릉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이므로, 광릉을 품은 광릉숲은 세계적인 생물권보존지역인 동시에 세계문화유산이다.많은 이들이 광릉숲이 광릉 덕분에 지켜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광릉보다 앞서서 그 숲을 지켜온 건 운악사, 즉 사찰과 그곳 스님들이다. 그 한가운데 낭혜 스님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 봉선사에 진을 쳤던 왜군이 퇴각을 앞두고 봉선사와 주변 숲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당시 주지였던 낭혜 스님은 대웅전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고 소리 높여 독경을 시작했다. 대웅전과 함께 불타 죽을 결심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독경이 끝나지 않자 왜군들이 할 수 없이 물러갔다.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탔으나 대웅전은 화를 면했다. 주변의 숲도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봉선사 광릉숲길과
템플스테이 포행 길 ‘비밀의 숲’
봉선사 광릉숲에 지난 2019년 산책길이 생겼다. 광릉숲의 둘레길로, 봉선사 입구에서 광릉 입구를 거쳐 국립수목원 입구까지 이어진다. 총 2.9킬로미터에 달하는 나무데크 길인데, 천천히 걸어도 1시간 40분가량이면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전에는 광릉숲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통제도 심했고 길 또한 좁은 왕복 2차선 찻길뿐 인도가 따로 없어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테마별로 열 개의 작은 정원이 만들어져 난간안으로 걸으면서 편하게 주변의 나무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숲속정원, 돌담정원, 습지정원, 쉼터정원, 그늘정원 등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테마에 따라 달라지는 작은 정원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에는 왕실 가족들에게만 허락된 길이었다. 작년까지는 여름과 겨울, 아침과 저녁시간 등이 제한적이었다. 동식물들을 쉬게 하려고 가로등도 달지 않
았었다. 그런데 올해 4월부터 나머지 부분까지 완전히 개방되어 난간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광릉숲을
마음 놓고 기웃거리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광릉숲 못지않게 아름다운 봉선사천이 걷는 내내 숨었다가 다가오기를 반복하면서 시원한 물소리와 탁 트인 풍경을 선물한다. 광릉숲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봉선사 비밀의 숲이다. 봉선사 연못 위쪽의 연수당 앞마당을 가로질러 개울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숲 산책은 봉선
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그것도 반드시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봉선사 비밀의 숲은 조선시대에는 왕실 가족들만 출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468년부터 지금까지 555년간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던 만큼, 자연림, 천연림 그 자체였다. 스님들만의 포행 길이었던 비밀의 숲이 이제 템플스테이의 걷기 명상에 포함되면서 참가자들의 출입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고맙게도 봉선사에서 활동하는 조계종 포교사단 불교문화해설 3팀의 안내로 비밀의 숲을 만날 수 있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을 걸으면서 천혜의 자연림에 흠뻑 빠져보는 체험, 봉선사 템플스테이만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