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분주한 곳에서 오히려 적막해지자
높은 나무에는 아름다운 새 깃드는데
사립문으로는 속세의 나그네 찾질 않네
맑게 갠 창가에 적막하게 앉았더니
푸르고 흰 구름만 유유히 떠가는구나
시냇가에서 뜯은 푸성귀 천천히 익히고
자고 일어나면 진하게 차를 달인다네
참선하는 마음 물처럼 맑은데
항하사 같은 경전 어이 읽으리
喬木有佳禽 柴門無俗客
교목유가금 시문무속객
晴窓坐寂寥 只管雲靑白
청창좌적요 지관운청백
煮澗邊 濃煎睡後茶
난자간변속 농전수후다
禪心淸似水 不必誦恒沙
선심청사수 불필송항사
백암성총(栢庵性聰, 1631~1700), 「숨어 살면서(幽居)」
암자의 풍경이 한가하기 그지없다. 나무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연방 방문하지만, 암자의 사립문은 한나절이 지나도 아무도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사가 맑게 갠 창가에 앉아 먼하늘을 바라보니, 하늘도 참 한가하여 푸른 구름과 흰 구름이 전혀 서두르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둥 마는 둥이다.
선사는 시냇가에 나가 푸성귀를 뜯어서 점심을 준비하더니, 푸성귀를 대충 익혀서 맛있게 먹고는 낮잠을 늘어지게 잔다. 자고 일어나 진하게 차를 달여서 진한차 한잔 마시면 머리가 맑아져서, 참선하는 마음이 마치 맑은 물과 같다. 그것으로 오늘 공부는 끝,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경전은 읽을 엄두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참 맑고 한가한 선사의 하루이다. 선시를 많이 쓴 옛 선사들은 이렇게 한가하게 산 경우가 꽤 있다. 그들은 대체로 “한 병의 물에 한 냄비의 차”만 있으면 되고, 목마르면 손수 차를 끓여 마시고, “대지팡이 하나에 부들 방석 하나/ 걸어가도 선이요 앉아서도 선”(복암충지, 「산중의 즐거움(山中樂)」)이었으며,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며,/
무심하여 어떤 대상 만나든 한가하여”(백운경한, 「다시 12수의 송을 짓다(又作十二頌呈似)」) 언제나 여유만만이었다.
출가하여 이런 삶을 꿈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 전혀 없고, 자신의 마음도 고요하니 분주한 세상에 귀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렇게 살지 않으셨다. 부처님의 마음은 늘 한가하셨지만, 몸은 오히려 바쁘셨다. 부처님께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신통력으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를 살피셨고, 필요하면 직접 방문하셔서 도우셨다. 대중들과 함께 탁발을 마치신 후에는 공양을 하셨고, 오후 시간에는 재가자를 위해 법문을 하시고, 낮잠을 잠깐 주무신 후 경행을 하셨으며, 저녁에는 출가자를 위해 법문을 하셨고, 홀로 선정에 드셨다가 자정이 넘으면 천신이나 하늘 사람들의 방문을 받아 가르침을 베푸셨다. 부처님께서 주무시는 시간은 겨우 두 시간 남짓, 그럼에도 부처님의 마음은 언제나 한가하셨기에 바쁜 일상이 전혀 무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그야말로 분주한 도심사찰의 대명사인 불광사에 왔다. 분주한 김에 몸을 더욱 바쁘게 하여 마음이 저 홀로 날뛰지 못하게 묶어두기 위해 천팔십일기도에 들어갔다. 천팔십일이면 보름이 모자라는 삼년이다. 약 삼년 동안 기도하는 기계로 살아보자는 마음이다. 숲속에서만 숨어 살라는 법은 없다. 도심에서도 숨어 사는 방법이 있으니, 오직 기도하는 기계로 사는 것이다. 나는 기도와 더불어 전법과 교육을 추가하여,
아니 교육은 전법에 포함될 수 있으니, 기도하고 전법하는 기계로 살아보련다. 몸이 바빠서 마음이 바쁠 틈이 없게 살아보련다. 그것이 지금 내가 선택한 분주한 곳에서 오히려 적막해지는 방법이다. 광덕큰스님은 일평생을 참으로 바쁘게 사신 분이다. 날마다 금강경을 독송하셨으며, 많은 글을 쓰셨고, 의식집을 정리하셨고, 법문도 많이 하셨다. 불광사를 창건하셨고, 불광유치원을 설립하셨으며, 봉은사 주지, 대각회 이사장, 종단의 총무부장까지 역임하셨다. 총무부장 시절에는 봉은사 땅을 지키기 위해 조계사에서 대각사까지 1인 시위행진을 하시기도 했다. 체력이 좋으셔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신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 결핵을 앓으셔서인지 병약하셨지만, 스님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엄청난 일을 하셨다. 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옛 선사들이 마음을 한가하게 하여 일념으로 화두에만 몰두하면 반드시 견성한다는 믿음을 가졌듯이 광덕큰스님은 ‘마하반야바라밀의 공능’을 굳건히 믿으셨다. 그 믿음이 몸이 바쁠수록 마음은 오히려 한가해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환경이 비록 험악하더라도 그것을 저주하지 말자. 도리어 현재 있는 것에 감사하자. 우리는 그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뛰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에서 굴종이나 불운의 인상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말자. 도리어 끊임없이 염불하며 자신에게 깃든 무한 능력, 성공의 약속을 마음 깊이 새기도록 노력하자. 현재의 불안전한 상태를 저주한다면 그것은 마음에 새겨져 도리어 그것에 속박된다. 그러므로 현재에 주어진 것이 비록 못마땅하더라도 불평 불만하고 저주하느니보다 새로운 성장을 생각하며 감사하자.”(「광덕전집8」, 불광출판사, 2009, 180쪽) 암자에서 홀로 밥을 끓여먹어야 하는 처지도 생각하기에는 불운일 수 있다. 그러나 옛 선사들은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도심에서 분주하게 전법활동을 펼쳐야 하는 상황도 불만이 될 수 있다. 광덕큰스님은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하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다.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 한가하기 그지없는 환경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환경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몸이 아무리 바빠도 마음만은 한가해질 수 있는 능력, 아니, 내게 다가오는 어떤 상황도 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자 크나큰 가르침에 다름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이다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잠실 불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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