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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 정도는 괜찮다지만
부처님에게 사가타라 불리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게 수행해서 웬만한 신통력은 갖추고 있었지요. 어느 날 사가타 스님이 강가 외딴 오두막을 찾았습니다. 이 오두막에는 맹독을 가진 큰 뱀이 살고 있습니다. 당시 불을 섬기던 수행자들이 그 불을 지키기 위해 넣어둔 뱀으로, 경전에서는 용이라고 부를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지요. 이 뱀이 있는 한 그 오두막은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가타 스님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경악하며 말렸지만 스님은 자기 집인 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준비한 풀로 자리를 마련하고 그 위에 참선 자세로 앉았지요. 낯선 이의 침입이 달가울 리 없는 뱀은 머리를 빳빳하게 치켜들고서 스님을 노려보았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뱀은 연기를 쉭 쉭 뿜어냈다고 합니다. 스님도 똑같이 연기를 뿜었습니다. 그러자 뱀은 입에서 불을 내뿜었고, 사가타 스님 또한 불을 뿜어냈습니다. 뱀의 불길은 스님을 태우지 못했지만 스님이 내뿜는 불길은 뜨거워서 뱀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뱀은 온갖 기세가 다 꺾여 스님에게 귀의하고 계를 받았습니다. 사가타 스님이 독한 뱀을 교화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스님에게 몰려가서 절을 올리며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사람들은 사가타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꼭 가지고 싶은데 구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말씀하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서 스님께 올리겠습니다.”
정작 사가타 스님은 사람들의 들뜬 숭배를 덤덤하게 대했지만, 이때를 틈타 자기 이익을 보려던 이들이 나섰습니다. 여섯 명이 무리지어 다니며 늘 말썽을 부려서 경전에서는 ‘육군비구’라 불리는 수행자들입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비둘기 빛깔의 술을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같은 출가자들은 그 술을 아무리 구하려 해도 좀처럼 얻지 못합니다. 이 사가타 스님을 존경한다면 이 분을 위해 맑은 비둘기 빛깔의 술을 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즉시 술을 준비하고 사가타 스님을 다음 날 아침 공양에 초대했습니다. 모두가 자기들 집에 스님을 모셔서 그 비싸고 귀한 술을 대접하였지요. 사가타 스님은 거절하지 못하고 집집마다 들러서 술을 마셨고, 그 결과 크게 취해버렸습니다. 공양을 마쳤으니 마을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만 성문 근처에서 쓰러졌습니다. 술에 취해 뭐라 중얼거리며 말이지요. 때마침 마을에서 탁발을 마치고 돌아 나오던 부처님이 그 광경을 보셨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사가타를 데려 가자.”
제자들이 간신히 그를 데리고 절에 도착해서 머리를 부처님 발 있는 쪽으로 눕혔습니다. 하지만 술을 이기지 못한 그는 몸을 뒤척이다 자신의 발을 부처님 머리 쪽으로 향하게 하고 잠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사가타는 내게 지극한 공경심을 품었었다.그런데 나를 향해 품었던 그 마음이 과연 지금도 그에게 있는가?” 제자들이 답했습니다.
“사가타 장로가 예전에 세존을 향해 품었던 그 공경심이 지금의 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또 물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강가 오두막에서 사나운 뱀을 교화한 자가 대체 누구였는가?”
“사가타입니다.”“그런데 지금의 이 사가타는 물뱀 한 마리라도 교화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행승들이여, 마셔서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의, 그와 같은 것을 마시는 일이 과연 올바르겠는가? 독한 술을 마시는 일은 참회해야 할 죄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술에 대한 계율조항을 마련하여 제자들에게 이르신 뒤에 전생에도 출가자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음을 들려주셨습니다.
먼 옛날, 보리살타는 숲 속 수행자(仙人)가 되어 히말라야 지방에서 제자 오백 명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보리살타는 제자들에게 선정의 경지로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였고, 제자들은 성실하고 열심히 수행하였지요. 이윽고 우기가 되자 제자들이 스승인 보리살타에게 허락을 구하며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희는 마을로 가서 짭짤하고 신 음식을 먹고 돌아오겠습니다.”
“마을로 가서 몸을 잘 돌본 뒤 우기가 끝나면 돌아오너라. 나는 이곳에서 우기를 지내겠다.”
오백 명의 수행자들은 바라나시로 가서 왕의 정원에서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탁발에 나서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기꺼이 음식을 내주었습니다. 이 소식은 왕에게 전해졌지요.“폐하, 히말라야 지방에서 수행자 오백 명이 내려와서 동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치열하게 고행을 하여 감각기관을 잘 다스렸고 계율을 잘 지키는 분들입니다.” 수행자들의 높은 덕을 찬탄하는 소리를 들은 왕은 동산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우기 넉 달을 자신의 정원에서 편히 머물며 왕궁에서 공양하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수행자들은 왕궁에서 식사를 하고 왕의 정원에서 머물며 우기를 순조롭게 지내고 있었지요.
어느 날, 도시에 술 축제가 열렸습니다. 온 도시에 술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평소 쉽게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맛보고 한껏 술과 흥에 취하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왕은 이 즐거운 축제를 맞아 수행자들에게도 특별한 것을 공양 올리고 싶었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는 사람에게 술은 구하기 어려운 것일 테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좋고 귀한 술을 올려야겠다.’ 과연, 왕이 공양 올린 술은 지상의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맛과 향이 훌륭했습니다. 오백 명의 수행자들은 한 잔씩 마시다 그만 만취하고 말았지요. 술에 취해 왕의 정원으로 돌아온 그들은 평소처럼 조용히 선정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펄쩍 펄쩍 뛰어 오르며 춤을 추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등 평소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술에 취해 날뛰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들어 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수행자들은 전날 밤 엉망으로 취해 마구 흐트러진 모습으로 곯아떨어진 자신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경악했지요.
“우리는 출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스승과 떨어져 지내다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깊은 후회가 밀려오자 그 길로 왕의 정원을 나와 히말라야의 수행처로 돌아갔습니다. 스승은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제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물었습니다. “사람들 사는 동네에서 탁발하느라 피곤하지 않았느냐? 다들 안락하게 지냈으며, 서로 사이좋게 지냈느냐?” 제자들은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스승님, 저희는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으며, 바른 생각(正念)을 지니지 못한 채 술에 취해 춤추고 노래하고 웃다가 흐느끼다가 하며 마치 원숭이와 다를 바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스승인 보리살타는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 말했습니다. “스승과 함께 지내지 않으면 이런 일을 겪게 된다. 오늘부터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제자들은 스승의 엄한 꾸짖음을 달게 받으며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용맹정진하며 남은 생을 마쳤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전생의 일을 현재에
잇대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그때 숲속 수행자 무리는 지금의 그대들이고, 그 무리의 스승은 바로 나였다.”
오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꼭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정말 부처님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말라고 하셨나요? 정말 딱 한 잔도 안 됩니까?” 질문하는 분들의 얼굴은 자못 진지합니다.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켜야 할 5계에 굳이 술 먹지 말라는 불음주계를 넣으신 게 불만이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 오계에서 불음주계는 빼고 받을 순 없나요?”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위의 『본생경』 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술에 대해서 부처님이 어떤 입장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불음주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술을 마시지 말라’라는 문장 앞에는 그 술을 수식하는 내용이 꼭 달려 있습니다.
첫째, 취하게 만드는 음료인 술.
둘째,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술.
바로 이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한 분에게 좋은 술을 대접하려는 마음은 2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설령 그 술을 대접받는 사람이 수행자여도 말이지요. 사람 사는 세상에 술은 딱히 금기 식품이 아닙니다. 술은 체온을 올리거나 스트레스를 낮추고 흥을 돋워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합니다. 사실 술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술을 마시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거대한 뱀을 제압하는 도력을 지녔어도 도수 높은 술 몇 잔에 취해버리니 물뱀 한 마리도 제압할 수 없게 되었고, 그토록 깊이 존경하던 스승을 향해서도 함부로 행동합니다.
술을 마시면 마음에 품었던 고귀한 품성이 흩어지고 가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자신이 부끄러워 그걸 잊으려고 또 술을 마십니다. 술을 마신 게 부끄러워 또 술을 마신다는 『어린왕자』 속 술주정뱅이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술을 마셔야 할까요? 마시지 말까요?”이런 걸 묻는 것도 우습지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자신과 남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허락이 왜 필요할까요?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니 바깥에서 제지가 들어갈 수 밖에요. 술의 가장 큰 단점은 술 마시는 이로 하여금 절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런 술, 마셔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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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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