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이도 있습니다.
마당에 중간 정도 크기의 감나무가 있습니다. 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있더니 이제 하루 하루 아직 짙어지지 않은 새끼 강아지 털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연두색 같은 잎이 자라납니다. 그게 신기해서인지 크고 작은 새들이 날아듭니다. 지금은 씩씩해 보이는 까치가 어디에선가 날아들었습니다. 부리를 나무 줄기에 칼 갈 듯이 이리저리 쓱쓱 갈더니 희고 검은 날개쭉지들을 잘 다듬고는 쉬었다가 무언가를 보고는 휙하고 바람처럼 날아갑니다.
새에게는 이 나무가 도심속에서 쉬었다가 자신을 정비하고 가는 쉼터가 되기도 합니다. 이 감나무를 볼 때마다 나도 닮아가고 싶어집니다.
제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혜를 일러줍니다.
우선 감나무는 그 자리를 지킵니다. 무언가를 위해서 찾아가거나 쫓아가지 않습니다. 누가 좋아할까 싫어할까 싶어서 애쓰지도 않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싹을 피우고 추운 북쪽 바람이 불어오면 잎을 떨굽니다. 인연의 흐름에 따라 순응하면서 지내지만 한 해 한 해 나무는 자라가고 뿌리는 깊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움직이는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문구가 적힌 이철수씨 판화작품을 문앞에 걸어두었읍니다. 그 글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움직이지 않고 싹을 틔우는 씨앗이 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자신을 살펴봅니다. 왜 나는 좀 바쁘다고 느낄까! 저를 바쁘게 하는 것은 생각들을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꼭 해야만 하는 생각으로 성장합니다. 더 자라면 지금 꼭 그 일을 해야만 해! 라는 생각으로 자랍니다. 이제 제 몸과 마음은 멈춰지지 않습니다.
그 일을 해야하는데 누군가가 반대하거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짜증이 올라옵니다. 몸에서는 열이 나기도 하고 얼굴이 경직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내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손발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바쁘게 살아지는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무 빠르면 부딪혔을 때에 상처도 크게 됩니다. 그 전에는 조금 불편한 상황도 내가 마음이 바빠지고 하고자 하는 마음의 속도가 빨라지면 강하게 부딪히고 맙니다. 나도 상대도 큰 상처들이 남고 맙니다.
언제부터 이 마음이 시작되었나 돌이켜 보면 아주 작은 생각이었습니다. 아! 이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야! 라는 “좋은 생각”, “옳은 생각” 이놈이 주범이었습니다. 특히 그것이 결과가 좋을 경우나 그 생각대로 되었을 경우는 너무나 뿌듯하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근히 치적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음에 그런 생각이 일어날 때에 덥석 물게되는 습관이 되고 맙니다. 그리곤 그것을 반복하고 반복합니다. 이것이 이어지면 그 사람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저는 안전에 대해서 늘 걱정이 많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안전에 대해서 지나치게 예민하다보니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도 옆에서 가만있지 못합니다.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혹시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것이 있는지 내가 더 살피고 만에 하나 살피지 못해서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고 더 주의를 줍니다.
나중을 위해서 좀 더 상세하게 주의를 둔다는 것이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아예 제가 운전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해서 웬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제가 하려고 합니다. 그 일만이 아닙니다. 절 일에도 비슷하게 대처합니다. 미리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며칠, 몇 달 후, 몇 년 후를 대비해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준비하고 그 시기가 오면 잘 대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다보니 몸도 마음도 바쁘게 되고 쉴 시간이 주어져도 쉴 수 없습니다. 이런 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이 어디 있는 곳을 알아야 군대를 보낸다’고 하는 경전 내용이 생각납니다. 내 마음도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알면 이제 대처가 가능해 집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는 마음이 집착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요즘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직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이 찾아와도 조금 덜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 마당 앞에 감나무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매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 스승은 마당 앞에 늘 그 자리에서 일 년 내내 제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말없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스승이십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