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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잘못된 것은 없다

  • 입력 2020.05.01

원각경 금강장보살장 말씀에서 

 

 
 부처님께서 목청을 낮춰 조용히 말씀하셨다. 애기처럼 천연덕스러울 때와는 또 다른 얼굴이셨다.
“자,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제 구미에 맞춰 대답하려 애쓰지 말고 평소 생각하던 대로 곧바로 말씀해 보세요.”
아내가 씩씩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가식 같은 것 몰라요. 평소 너무 솔직해 손해 보는 경우가 많지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한강에 유람선이 한 척 떠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그 배에 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가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습니다. 당신은 그 배에서 강가의 수양버들을 바라봅니다. 자, 대답해 보셔요. 당신이 움직입니까? 수양버들이 움직입니까?”
아내가 멈칫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처님께서 다그치셨다.
“조금 전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평소 생각대로 바로 대답하겠다고.”
아내가 주저하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참 대답하기 곤란하네요. 제 눈에는 수양버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배에 탄 제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럼 위치를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이 강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앞으로 유람선이 지나갑니다. 당신이 움직였습니까? 배가 움직였습니까?”
“그거야 배가 움직였지요.”
“그럼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고려해 보지요. 배에 탄 사람의 눈에는 강가에 있는 사람이나 나무가 움직인 것으로 보이고, 강가에 앉은 사람이나 수양버들 입장에서는 배가 움직이는 것으로 관찰됩니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배가 움직인다.’고 해야 옳지요.”
“왜 그렇죠?”
아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잖아요.”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객관적이라…. 그 말은 제3자가 관찰하면 누구나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는 뜻이지요?”
“네, 뭐 대충은….”
부처님께서 찬찬히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런데 사실 제3자에게서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내가 멋쩍은 듯 웃었다.
“철학적인 말씀 말고 좀 쉽게 설명해 주셔요.”
“좋습니다. 그 제3자가 당신과 같은 배에 타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 눈에는 배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까요? 강가 수양버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까요?”
“강가 수양버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겠지요.”
“그럼 그 사람은 ‘수양버들이 움직인다.’는 말을 참이라 하고, ‘배가 움직인다.’는 말은 거짓이라 하겠군요.”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는 제3자가 수양버들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배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까요? 강가 수양버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까요?”
“배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요.”
“그럼 그 사람은 ‘배가 움직인다.’는 말을 참이라 하고, ‘수양버들이 움직인다’는 말은 거짓이라 하겠군요.”
“그렇지요.”
“이번에는 제3자가 강가에서 연인과 함께 오리 배를 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 눈에는 당신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까요? 강가 수양버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까요?”
“저도 움직이고, 수양버들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겠지요.”
“그럼 그 사람은 ‘배가 움직인다’는 말도 참이라 하고, ‘수양버들이 움직인다’는 말도 참이라 하겠군요. 또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거짓이라 하고, ‘수양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거짓이라 하겠지요. 자, 세 명의 제3자가 관찰한 결과가 서로 다릅니다. 이 가운데 누구의 관찰이 옳고 누구의 관찰이 틀린 것입니까?”
아내가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새치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잘 모르겠고요. 하여튼 객관적으로는 배가 움직인 것이지 강가 수양버들이 움직인 것은 아니잖아요. 수양버들이 다리가 있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한바탕 웃으셨다.
“공연히 당신을 헷갈리게 해서 당황하게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맞다 틀리다를 가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현상들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한번 되짚어보자는 것뿐입니다.”
구김살 없는 부처님의 웃음에 불편한 심기가 좀 누그러졌는지 아내가 말을 이었다.
“하긴 ‘배가 움직이고, 강가 수양버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을 두 번 생각할 여지도 없는 참말로 여겼는데, 부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애매한 구석이 있었네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이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그 ‘객관적이다’는 말만큼 애매모호한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관찰, 자신의 경험, 자신의 입장, 자신의 견해를 ‘객관적이다’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내가 뭔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남편을 째려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부처님. 우리 남편이 그래요. 마치 자기가 부처님이나 하나님이라도 된다는 듯이 ‘이렇게 해야 옳지 왜 그렇게 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건 본인만의 생각이잖아요. 세상사람 누구나 자기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마땅하다는 것은 독단獨斷이고 오만傲慢이지요.”
아내는 간만에 편들어줄 사람을 만났다 여겼는지 신이 났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남편은 그렇다 치고, 당신은요?”
멋쩍은 듯 아내가 따라 웃었다.
“저요? 저도 뭐…”
셋이서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고 한 잔의 차를 더 마셨다. 부처님께서 차분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객관적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그 범위 안에 있으면 ‘옳다’고 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틀렸다’고 하지요. 그런 태도와 언행은 보살님의 말씀처럼 독단이고 오만입니다. 독단과 오만은 주변과 충돌을 일으키고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요. 또 자기만 옳다는 사람을 누가 가까이 하겠습니까. 결국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초래하는 짓이지요. 타인에게 아픔을 주고 자신에게도 유익하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까닭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밑바닥에는 이런 ‘잘못된 태도’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왜 ‘잘못된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부처님께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으셨다.
“아시겠습니까?”
아내가 눈빛을 낮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드렸다.
“네,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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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성재헌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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