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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하림스님의 마음여행

잠시 멈추면

  • 입력 2020.06.01
 책상에 앉아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투두둑 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무슨 일인지 싶어서 나가보았더니 굵은 빗줄기였습니다. 비도 굵어지니 요란스럽고 사람을 놀래키고 움직이게까지 합니다.
오늘은 일로 움직이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떨어지는 비 소리를 노래 소리처럼 감상하고 싶어집니다. 꼭 음악을 들으러 멀리 가서 좋은 앰프로 들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없습니다. 앰프를 통해서 듣는 소리는 내가 듣고 싶을 때 듣는 장점도 있지만 기다림만으로 멈춤만으로도 그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자연의 소리 그대로를 들을 수 있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조금 지나니 이젠 소리가 달라집니다. 누가 지휘를 하는지 가느다란 줄기 소리로 바뀌면서 쉴새 없이 난간을 두드려 댑니다. 마치 비노래의 절정을 알리는 듯합니다. 절정이 있으면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겠지요. 마침 그러네요. 다시 투두툭거리는 변화가 찾아옵니다. 이렇게 늘 겪는 일상에서 놀람도 만나고 고요함도 만나고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머물고 싶어집니다.

여러분도 잠시 멈추어서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눈을 감고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 다른 세상을 만날 것입니다. 일에서 벗어날 것이고 생각에서 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요와 평화로움은 잠시 멈추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가끔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 오늘은 쉬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하시는지요? 아니 어떻게 해 왔는지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일 다 해놓고 쉬어야지! 몇 년 후에 쉬어도 될 만큼 준비해 두고 쉬어야지! 더이상 삶의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해두고 쉬어야지! 라고 해 왔습니다. 제가 늘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늘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절에 살면서 게으르면 안돼!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그것보다 더 최선을 다해야 뛰어난 사람이고 시주하는 신도의 밥값을 하는 사람이야! 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마다 나는 많이 부족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다 성장한 지금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가 최선을 다하면 보통사람이고 그것보다 더 최선을 다할 때라야 그 사람을 칭찬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사람도 보통 때는 그저 그런 사람일 텐데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치고 힘들게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나도 힘들고 그들도 힘드니 우리는 다같이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다시 바라보기를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다시 나를 보니 하루 종일 실제로 일에 관계된 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아마도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도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 종일 일한다고 생각하고 쉴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특히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힘든지 말입니다. 물론 육체적인 노동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절에서는 육체적인 움직임이 더 많았습니다. 쌍계사 큰 절에 살 때에는 새벽 3시부터 서둘러 일어나 세수하고 뛰어다녀야만 했습니다. 말사에 살 때는 새벽 4시였습니다. 커서는 한동안 육체적 노동을 하는 시간을 일부러 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손에 붓기가 있는 상태로 몇 개월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차라리 육체노동을 할 때는 마음이 편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생각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니 우리가 하는 수행에 설명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을 일러주신 염처경에는 먼저 몸 느낌을 대상으로 연습하게 합니다. 반야심경에도 오온을 관찰할 때 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먼저 나옵니다. 몸의 감각기관에 주의를 두면서 그 경험들을 알아차리고 머물러서 그것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 우리를 고요와 평온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또 멀리 여행을 가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들리는 소리나 감각기관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힘들었던 마음은 잠자고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하면 여행을 줄이게 되고 좋은 물건 좋은 집과 높은 권력에 대한 인기가 줄어들 것이니 그것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에겐 걱정도 됩니다. 필요한 만큼만 누린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행복의 조건은 훨씬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평온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하림스님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명상 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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