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른손으로 턱을 괴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부처님과 남편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부처님, ‘세상에 잘못된 것은 없다’고 인정하니 마음이 참 너그러워지네요. 맞아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죠.”
남편이 거들고 나섰다.
“그럼, 나의 생각과 다를 뿐이지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니야. 생각은 서로 얼마든지 다를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이 이것만 인정해도 엔간한 다툼은 저절로 사라질 텐데….”
아내가 빵긋 웃었다.
“맞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갇혀 타인을 규제하고 통제하려 들지요. 세상은 독재자로 가득해요. 작은 독재자는 작은 공동체를 파탄으로 내몰고, 큰 독재자는 큰 공동체를 파멸시키지요.”
아내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남편을 돌아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지금이야 봐줄만 하지만 당신도 예전에는 독재자 노릇이 만만치 않았어요.”
“뭐, 나만 독재자인가? 당신도 독재자지. 아냐, 저항군의 지도자인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큰 소리로 웃었다.
부부의 알콩달콩한 토닥거림을 한 발 떨어져 푸근한 미소로 지켜보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기 좋군요. 자신의 생각으로 타인을 재단裁斷하려들지 않기만 해도 사람사이의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지지요.”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남편이 부처님께 정중하게 여쭈었다.
“부처님, 예전에 어떤 철학자의 에세이에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란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철학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그것 참 멋진 표현이네요. 저는 그것을 ‘해탈解脫’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해탈요?”
“밧줄에 꽁꽁 묶여 감옥에 갇혔던 죄수가 그 밧줄을 풀고[解]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脫]과 유사한 경험이지요.”
남편이 활짝 웃었다.
“부처님, 그것도 참 멋진 표현이네요.”
곁에 있던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처님, 그 밧줄과 감옥은 무엇을 비유한 것이죠?”
부처님이 환하게 웃었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정성을 다해서 대답하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놓치지 말고 잘 기억하십시오.”
아내가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네 부처님.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밧줄이란 경험을 비유한 것이고, 감옥이란 생각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니 밧줄에 묶이고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경험에 꽁꽁 묶이고 생각에 갇힌다는 뜻이 되겠지요. 경험에 묶여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구속된 죄인처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순간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만합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버둥거렸던 나날이 떠오르네요. 참 멋진 비유이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멈추고 아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셨다. 한참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당황한 아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말씀을 멈추고 그렇게 쳐다만 보시죠?”
“저는 당신의 다음 질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질문요? 제가 뭘 여쭤봐야 하지요?”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왜 ‘밧줄을 풀고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지 않습니까?”
자신을 꾸짖거나 다그치려는 의도가 아님을 알아차렸는지, 아내는 그제야 긴장한 눈빛을 풀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여쭈었다.
“부처님, 밧줄을 풀고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좋습니다. 그 질문에 제가 대답해 보겠습니다. 밧줄을 풀고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그 밧줄이 누가 어떻게 묶은 밧줄인지, 그 감옥이 누가 어떻게 만든 감옥인지를 알면 됩니다. 삶에 고난이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란 말들을 곧잘 합니다. 그건 곧 타인이 만든 밧줄에 묶이고, 타인이 만든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 밧줄과 감옥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밧줄도 감옥도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 갇힌 것이지요.”
“부처님, 자신을 옥죄고 자신을 가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어리석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람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스스로 묶는지, 어떻게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한번 돌아보십시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외친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생각은 만들어진 것임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무엇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가? 경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마치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모아 성(城)을 쌓듯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게 된 경험들을 한 조각 한 조각 모아 생각의 성을 만든 것이지요.”
“그것이 왜 잘못이죠?”
“경험의 조약돌을 모아 생각의 성을 쌓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제가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성안에 갇힌다는 사실입니다.”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말을 꺼냈다.
“앞서 한강의 유람선이 움직이는가, 강가의 버드나무가 움직이는가를 예로 들어 설명했듯이 각자 다른 경험에 근거해 서로 다른 생각을 구축해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리고 문제는 각자 자신의 경험과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고요.”
“바로 그것입니다.”
아내의 진지한 모습에 남편은 깜짝 놀랐다. 늘 개구쟁이처럼 깔깔거리기만 하던 아내에게 이런 진지한 구석이 있었다니, 믿기질 않았다.
아내가 다시 여쭈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의 성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부처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이제야 질문다운 질문을 하시는군요. 잘 들으십시오.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부드러운 부처님의 음성이 향기처럼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