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연재완료] 기획칼럼

앞에서 끌려고 하지 말아라

  • 입력 2020.07.01
 오랜만에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니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느낌보다는 온전히 홀로 선 느낌입니다.
큰 창문 밖에는 한 여름의 나무 가지들이 잎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내리는 비가 닿는 것이 간지러운지 움찔거리기도 하고 살랑살랑거리기도 합니다.

가끔 혼자 있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런 것 같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고요함이 찾아오는 것처럼 내게도 태풍이 지나갔나 봅니다. 조용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어 집니다.

부산에 온지가 15년이 되어갑니다.
40에 왔으니 지금 보면 참 철없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상태였습니다. 의욕이 넘치니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말할 수 있었고 함께 그 길을 가자고 권할 용기도 참 많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함께해온 여러 식구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0여 년을 그렇게 달리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쉬고 싶기도 했고 몸에도 무리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관리를 잘 하지 못한 것이니 신도님들에게 알릴수도 없었습니다. 몰래 병원 다니면서 고민하다가 무작정 쉬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훌륭한 도반스님을 모셔서 4년을 주지스님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제 임기가 다 되어서 제가 다시 소임을 본지 열흘 정도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맞아서 뭔가 준비해야 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신도님들과 주변 식구들은 저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을 하자고 할지 어디로 가자고 할지 “한 번 들어봐야지!” 하시겠지요.

그리고 아마도 생각해 볼 것입니다. “내 맘에 들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이 번 기회에 다른 인연을 이어가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은 사찰이라도 모두 역할이 있습니다. 집안에도 누군가는 방향을 결정하고 책임져야할 짐을 지고 있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흔히 결정장애라고 하듯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힘겹게 합니다. 식당에 가면 “무엇을 드실래요!”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들어 합니다.

그러니 사찰의 방향을 결정하려면 얼마나 생각해보고 또 검토해보고 하는지 아마도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흔히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생각하다가 오히려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그런 소임을 하게 되니 여러 가지로 검토하는 습관이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결정하는 방식을 공부한 게 있습니다.

어느 소년이 소를 데려가기 위해서 앞에서 아무리 당겨도 소는 꿈쩍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이렇게 실강이 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그 방법을 일러줍니다. “앞에서 끌려고 하지 말아라 소의 눈 뒤로 가서 소의 옆에 서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라! 그러면 소가 그 방향으로 먼저 걸어 갈 것이다.” 소년은 할아버지 말대로 소의 곁으로 가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주시하고 소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더니 소가 앞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제 방식은 제가 먼저 가서 고랑을 파고 물길을 만들어서 가자고 설득하고 졸라서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소를 앞에서 끄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서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기다리는 만큼 신도님들은 움직이고 싶어합니다. 제가 어디로 가자고 말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기다리면 아마도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오히려 물어올 것 같습니다. 제가 주의를 두고 집중해야 할 일은 어디로 가야 우리가 행복으로 안락으로 가는 삶인지를 계속 살피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중이 언젠가는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전에는 함께 움직이느라 바빠서 이리 저리 해매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저도 넘어지면 곧 바로 일어나 다시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그리고 길이 보이면 과감하게 살아가는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용히 내리던 비가 지금은 바람 친구들을 불러온 모양입니다. 약간은 요란스럽기 시작합니다. 비에도 바람에도 방해받지 않고 이렇게 지켜보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장소가 더욱 평화롭게 다가옵니다. 부처님은 법문도 잘 하시지만 침묵도 참 잘 하셨다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바쁘고 지칠 때에는 홀로 있어 보십시오.

창가에서 비바람을 바라보듯이 내 마음 안에서 내 삶을 바라봅니다. 그 침묵과 고독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수행인 것 같습니다. 평온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하림스님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명상 상담센터)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