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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허구(虛構)의 성

  • 입력 2020.07.01

원각경 금강장보살장 말씀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각의 성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의 생각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멈추고 혼자서 깔깔대셨다.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라니, 말장난 같지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찬찬히 되짚어보자는 것입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우선은 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셔요. 우리의 생각은 ‘말’ 즉 언어言語를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소통하기 위해 간단하게 표상表象한 것입니다. 즉 ‘경험’을 언어로 정리한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 경험이 일시적一時的이고 부분적部分的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언어는 항시적恒時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실제 경험한 대상과 생각의 대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부처님, 솔직히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과는 크기가 얼마나 되지요?”
아내가 주먹을 내어 보이며 말했다.
“대략 요 정도 되지요?”
“색깔은?”
“빨간색이지요.”
“맛은?”
“새콤달콤하지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보살님은 ‘사과는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간색이고 새콤달콤한 것이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군요.”
“제가 뭘 잘못 말씀드렸나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살님, 우선 차부터 한 잔 드셔요.”
부처님의 권유에 따라 아내는 앞에 놓인 녹차에 손을 뻗었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취조 받는 죄인처럼 움츠러들 것 없습니다. 긴장하지 마셔요. 저는 당신을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고, 당신 생각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그 생각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자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그저 평소 생각하던 그대로 편안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부처님의 나긋나긋한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는지 아내가 싱긋이 웃어보였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사과가 무슨 색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빨간색이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이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빨간색에 새콤달콤한 어떤 과일을 먹어본 ‘경험’, 그리고 그 과일을 가리켜 많은 사람들이 ‘사과’라는 말 즉 ‘언어’로 부르는 것을 들었던 ‘경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네.”
“당신이 서울에서만 살았고, 농사일이나 식물의 생태에 대해 완전 무지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사과를 가게에서 사먹은 경험밖에 없다고 합시다. 아마 봄철에 ‘사과가 어떤 것이냐?’고 물어도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간색이고 새콤달콤한 것이다.’고 대답하고, 여름철에 ‘사과가 어떤 것이냐?’고 물어도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간색이고 새콤달콤한 것이다.’고 대답하고, 가을철에 ‘사과가 어떤 것이냐?’고 물어도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간색이고 새콤달콤한 것이다.’고 대답하고, 겨울철에 ‘사과가 어떤 것이냐?’고 물어도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간색이고 새콤달콤한 것이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네.”
“어떤 기회가 생겨 한 여름에 사과밭에 놀러갔다고 합시다. 굵직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새파란 열매를 보고 농부에게 ‘저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농부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사과라고 대답하겠지요.”
“그것을 따서 먹어보았습니다. 맛이 어떨까요?”
“떨떠름하겠지요.”
“크기도 주먹만큼 크지 않고, 색깔도 빨갛지 않고, 맛도 새콤달콤하지 않으니, 서울 가게에서 사과를 사먹은 경험밖에 없는 당신은 아마 ‘이게 무슨 사과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내가 뭔가 생각난 일이 있는지 웃었다.
“맞아요. 아마 그럴 겁니다. 예전에 처음 외국을 여행을 갔을 때 호텔에서 파란색 사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시퍼런데 이게 무슨 사과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먹어보니 맛만 좋더군요.”
“자, 이제 정리해 봅시다. 사시사철 주먹만 한 크기를 가진 사과는 실제로 존재합니까?”
“아니요.”
“사시사철 빨간색을 가진 사과는 실제로 존재합니까?”
“아니요.”
“사시사철 새콤달콤한 사과는 실제로 존재합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 속 사과’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가 뭔가 미심쩍은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바로 대답을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항상 빨갛고 항상 새콤달콤한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빨간 색깔에 새콤달콤한 맛을 가진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갛고 새콤달콤한 맛을 가진 사과는 실재합니다. 그런 특성을 가진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현상계에서 사과의 일주기를 직접 관찰해 보면 사과가 그런 크기와 그런 색깔과 그런 맛을 가지는 시기는 매우 짧고, 또 모든 사과에게서 똑같이 그런 특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로 규정되는 사과, 생각 속 사과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상관없이 항상 그런 특성을 가진 것처럼 여겨집니다.”
아내가 깊이 공감되는 바가 있는지 또렷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처님께서 한층 목소를 높이셨다.
“그럼 예를 사람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성재헌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거친 말을 하고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합시다. 그럼 당신은 그 성재헌이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불쾌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요.” 
부처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누군가 ‘성재헌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그 사람 버르장머리가 없어’라고 대답하겠지요. 시간이 흐르고 공간을 달리해도 아마 당신은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내가 입을 가리고 호호거리며 웃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성재헌이라 불리는 사람이 당신에게 불쾌한 말을 하고 무례한 행동을 한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불쾌한 말을 하고 항상 무례한 행동을 하는 성재헌은 실재로는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당신의 머릿속, 생각 속에만 있을 뿐입니다. 항상 빨간 사과처럼.”
아내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부처님. 저도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되물으셨다.
“아시겠습니까?”
“네, 부처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순간의 경험에 사로잡혀 존재하지도 않는 생각의 성을 쌓고, 그 허구의 성 속에 스스로 갇혀 괴로워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성재헌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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