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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출가는 왜 ‘위대한 포기’인가
싯다르타의 출가는 상처를 남겼다. 신혼의 아내였던 야소다라에게, 태어난 지 1주일밖에 안 된 아들에게, 졸지에 왕위 계승자를 상실한 아버지에게,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이모 마하빠자빠띠 고타미에게 두루두루 상처를 남겼다. 싯다르타는 그런 상처를 감수하고서 궁을 떠났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에게 안겨준 그 모든 상처의 무게보다, 훨씬 더 큰 간절함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싯다르타의 출가였다.
버스를 타고 인도의 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인도에는 산이 드물다. 들판이 많다. 그래서 나무도 귀하다. 간혹 보이는 숲은 울창하기 그지 없다. 요즘도 인도의 숲에는 호랑이가 산다. 2600년 전에는 어땠을까. 고대 인도에서는 온갖 맹수가 우글거리는 곳이 숲이었다. 그런 위험천만인 숲을 향해 싯다르타는 더 깊이 들어갔다. 당시 인도의 숲은 수행자의 공간이기도 했다.
▲ 인도 중부에 있는 아잔타 석굴.
▲ 아잔타 석굴의 불상. 아침에 햇볕이 들어오면 불상에 생기가 돈다.
▲ 바퀴가 셋 달린 인도의 택시와 운전사들.
싯다르타 당시 인도의 종교는 브라만교였다. 브라만교에서는 태초에 유일자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 이름이 ‘푸르샤’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였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재自在하는 자였다. 반야심경에도 ‘관자재觀自在 보살’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스스로 있는 신’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구에 의해서 창조된 게 아니라, 스스로 있는 진리처럼 말이다. 싯다르타도 브라만교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브라만교 경전인 베다를 달달 외울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숫도다나 왕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식도 잃고, 왕국의 계승자도 잃을 참이었다. 그래서 팀을 꾸렸다. 숲으로 들어간 싯다르타를 설득해서 데려올 팀이었다. 우선 왕의 스승격인 왕사王師와 신하의 자제들을 골랐다. 똑똑하게 지혜를 갖춘 싯다르타의 동년배 친구들로 뽑았다. 왕사와 친한 친구들이 가서 설득하면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 퇴근 시간대 인도의 교통정체.
그들은 숲으로 갔다. 수소문 끝에 싯다르타를 찾았다. 친구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설득했다. 카필라 왕국의 운명이 달린 일이었다. 경전의 기록은 이렇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달라. 부왕께서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신다. 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모두 포기하는 게 아니다. 진리를 찾는 일이 어떻게 산이나 숲에서만 가능하겠는가.”
틀린 말은 아니다. 진리가 어떻게 산이나 숲에만 있을 터인가. 싯다르타는 대답했다. “재가在家의 삶은 답답하고 번잡하다. 맑지 않은 일들이 어디에나 먼지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출가出家는 드넓은 공간에 사는 일이다.” 팔리어 경전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버스가 멈추었다. 인도에는 휴게소가 별로 없다. 화장실도 마땅치 않다. 버스가 길에서 멈추면 들판에서 볼 일을 봐야 한다. 버스 왼쪽은 여성 승객, 버스 오른편은 남성 승객. 그렇게 양쪽으로 나뉘어서 각자 볼일을 본다. 그래서 여성 승객들은 넓은 보자기를 미리 준비한다. 치마처럼 허리에 둘러서 사용한다. 어찌 보면 참 인간적인 광경이다. 그런 풍경도 인도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움이다.
나는 잠시 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재가와 출가. 그건 공간적 개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궁이냐, 숲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싯다르타가 지적한 ‘재가의 답답함’과 ‘출가의 광활함’은 우리의 마음을 일컫는다. 싯다르타는 ‘답답한 마음’을 떠나 ‘광활한 마음’을 얻고자 한 것이다. 그게 그가 말한 출가였다. 그러니 싯다르타의 대답은 우리에게 ‘출가’의 의미를 되짚게 한다.
단순히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됐다고 출가의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머리를 깎은 출가자의 신분으로, 성직자의 신분으로, 목회자의 신분으로 ‘재가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또 머리를 기른 채 지지고 볶는 세속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출가의 여운’을 풍기는 이들도 있다. 재가와 출가는 집 안에 있느냐, 집 밖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머리를 깎느냐, 깎지 않느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싯다르타는 왜 굳이 머리를 깎았을까. 그리고 친구들의 설득을 거절했을까. 나는 거기서 ‘절박함’을 읽는다. 그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절망이자, 그 절망의 바닥을 뚫고자 하는 절박함이다. 그걸 넘어서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그걸 위해 이번 삶을 걸어보겠다는 각오다.
결국 왕사만 궁으로 돌아갔다. 싯다르타의 다섯 친구들은 숲에 남았다. 그들도 왕자와 함께 수행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들이 훗날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펼쳤던 다섯 비구다.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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