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큰 품에 물들어가기에는 삼십여 년 쌓인 이웃 종교에 깊게 들어와 있는 습이 깊고도 깊었다. 나는 자주 발걸음을 멈추며 불교에 스며드는 나를, 나의 선택을 바라보기도 했다.
몇 해전 시간이 생길 때 마다 함께 터를 닦고 모여 사는 친족들과 경북과 충북지역의 사찰순례를 하였다. 조상들의 숨결이 비질이 잘 된 마당에 햇빛으로 내려와 앉아 고요도 멈춘 천년고찰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골짜기마다 절이 있고 싱그러운 냇물과 숲 향기로 발걸음조차도 가벼웠다.
어느 날 충북 괴산의 각연사에 들르게 되었다. 절을 소개하는 안내문을 집어들고 빗자루가 방금 지나간 듯 일정한 線의 물결이 아름다운 마당을 발자욱으로 어지럽히는 줄도 모르고 고즈넉한 공기를 깨뜨리며 경내를 다니다가 괴산군 보호수로 지정된 팻말이 있는 큰 보리수나무 아래에 발길이 머물렀다. 기와가 많이 쌓여 있고 정성 가득한 소원이 여기저기 기왓장에서 소곤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마주치며 우리도 한 번 해보자면서 웃음을 거뒀다. 식구 수대로 기와를 가져왔다. 햇살이 따뜻하게 등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차 한 잔 하고 가시라는 묵직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스님께서 서 계시었다. 흐르는 약수에 손을 씻고 들어선 온돌방 종무소에서 익숙하게 내려주시는 커피와 다과가 어색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대화를 풀어내시는 스님 말씀에 모두가 편해졌다. 스님께서는 절의 역사와 문화재를 설명해 주셨고 다음엔 보계산에 있는 고려초기 왕사이셨던 통일대사 부도탑도 가보라고 하시며 ‘돌거북은 하늘로 오르고’라는 책을 한 권씩 주셨다. 그냥 가져가기엔 소중한 책 같아서 사인을 부탁드렸다. 제목 부터가 낯설고 이해가 어려우나 궁금하기도 했다. 돌거북이 하늘을 날을 수도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웃으시며 다음에 또 오라고 하신다.
원파당 혜정 대종사 법어록인 ‘돌거북은 하늘로 오르고’를 읽기 시작하면서 서문부터 막혔다.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한 달이 더 걸려 읽으면서 전혀 모르고 있던 불교의 샘물에 젖어갔다. 사문유관이며 사성제도 처음 마주한 단어이다 보니 검색한 내용들을 책에다 기록하며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조계사를 만났고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신청했다. 수업 첫날 목탁에 맞춰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합송하는데 예상치 못했던 물살이 휘몰아치는 듯한 소용돌이를 만난 것만 같았다. 생소한 단어와 보고 읽기도 힘든 다라니 등등.
수업이 끝나자마자 불교대학 건물 교육국으로 가서 기본교리를 추가로 신청했다. 기본교리는 특히 나에게는 필수였다. 기본교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에서의 철야 정진은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이다. 나는 법당에서 처음 밤을 새우는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밖은 점점 장맛비가 거세지고 천둥 번개로 주위는 더욱 어두워 회화나무의 불빛은 마당의 빗물을 오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번개도 번쩍이는데 나는 묘하게도 안정감을 얻었고 침묵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조심스럽게 법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웅전 부처님의 큰 품에 들어가는 불교의 문이 내게 열리었고 조계사의 사시 예불과 오후 기도와 기타 여러 행사에 가능한 한 참여하면서 친척들에게 권선도 하게 되었다. 더하여 육법공양 참여는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얼마 전 선림원 12기를 졸업했고 자율선원의 禪에 물들어가는 잿빛 좌복 위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을 가고 있다.
나를 불교로 인도해 주신 ‘돌거북은 하늘로 오르고’ 그리고 나를 이끌어주시는 조계사와 많은 도움을 주시는 도반들과 덕 높으신 스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