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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하림스님의 마음여행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데로

  • 입력 2020.09.01
 조용한 아침입니다. 창가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려니 뜰 앞의 감나무에 햇살이 비춥니다. 바람이 한 점도 없어 감나무는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내 마음도 이렇게 흔들림 없이 고요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 전, 은사스님 절을 관리하시는 보살님에게 큰 소리를 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은사스님 요사채를 준비하면서 마당의 담을 없앴습니다. 좁은 골목이라 골목 안에 서로 차를 대려니 이웃집 차가 나가려면 앞에 있는 차의 주인이 자다가도 나와서 차를 빼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들이 골목에 들어오기 편하도록 우리 쪽 담장을 헐어서 쉽게 들어오게 했습니다. 골목 안 차주들이 너무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보니 그분들의 차가 우리 땅에 주차가 되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지? 골목도 비었는데 어떻게 남의 땅에 주차를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편의를 봐주지 않았으면 그분들은 차를 골목 밖으로 뺐다가 다시 주차해야 하는 상황인데 불편할까 봐 우리 쪽 담을 헐어서 서로 차를 비껴갈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이젠 아예 안방에 들어와서 주차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도 모르고 보살님에게 화부터 냈습니다. 어떻게 자기 집도 지키지 못하냐고 하면서. 보살님 말씀은 차를 빼달라고 전화했더니 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우리 차가 지금 나가 있으니 빈 시간에 차를 대어도 좋다고 했다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픕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날은 일부러 절에 있는 봉고를 몰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 집에 연락을 했는가 물어보았더니 그 이웃에 보낸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밤 우리 절에 차가 들어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분들의 상황을 살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절에 도착해서 보살님을 보자마자 지금 당장 그 분에게 전화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립니다. 주변 동네 분들에게 친절하게 해야 하고 절은 공공개념이니 우리가 안 쓸 때는 이웃이 쓸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하시지 않았냐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말은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웃과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말하지 말고 그분들이 스스로 알아차려서 주차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아! 누가 수행하고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에는 너무 답답해서 오늘은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내려가시라고 하고는 밤사이 다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왜 힘들어하고 있는지 살펴보니 배려할 때는 흔쾌히 하지만 내 기준을 침범하거나 벗어나면 화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한계 있는 배려심이었습니다만 이 모호한 배려심이 다시 불편함으로 돌아오고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상황이 더 예민하고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웃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갈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중에 밤늦게 왔을 때도 걱정이고 은사스님과 다른 분들에게도 설명이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집에 차를 대면서도 오는 내내 걱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나의 권리를 침해당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괜히 배려했다가 관계가 나빠졌던 경험이 생각나고 이렇게 두면 나중에는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기지도 않은 미래 걱정까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면서 망상은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뜰 앞의 감나무에 내리쬐는 햇살을 보고 마음이 차분하게 진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꼭 나빴던 과거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려해 주었을 때 그분들이 기뻐하고 그 기쁨은 저에게도 전해왔었습니다. 그분들은 늘 살피며 우리 사정을 알고 있었고 고마워했습니다. 그 권리(?)를 빼앗을 생각까지 하진 않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내가 배려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쁨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나중에도 그분들은 우리가 주차할 때를 보면 스스로 미안해하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주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늘 이 절을 고마워하고 칭찬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불편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구름 걷힌 하늘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맑기만 합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데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세상의 주인은 내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웃 간에 한 식구처럼 서로 믿고 살아야겠습니다. 이렇게 진작 보았더라면 이런 번뇌가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림스님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명상 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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