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내의 어린이집, 조금 생소하지만 참 신선했다. 요즘은 절뿐만 아니라 다른 어디에서도 아가들을 만날 기회가 드물다. 특히 고령 불자들이 많은 절 안에 어린이집이라니. 내 일처럼 반가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꼴찌라는 것과 맞벌이 부부가 자녀들을 마음 편히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 서로 원인과 결과로 교묘히 순환하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조계사를 둘러싼 종로 지역은 기업체와 관공서 등 사무실이 많아 직장인이 3만 명에 달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직장 다니는 엄마들도 많고,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낯설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오랜 노력 끝에 을유문화사 건물을 사들인 조계사는 건물을 새 단장해서 어린이집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어린이집 건립이 불교 미래를 위한 최고의 불사인 동시에 근처 직장인들에게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제공하는 사회 회향이라는 확신으로 내린 사중의 결론이었다.
주지 지현 스님의 어린이 포교에 대한 깊은 원력은 건물 새단장 과정에서부터 작용했다. 면적 1,222.61㎡의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을 어린이집에 맞게 꾸미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벽에 바르는 페인트를 비롯해서 인테리어 자재와 작은 소품까지, 최고 수준의 친환경 제품을 사용했다. 만 0세 영아에서 만 5세까지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이 먹고 놀고 자면서 거의 하루 종일 머물 공간이며, 미래 불교의 대들보를 키워내는 요람이기 때문이다.
1층부터 3층까지는 만 0세부터 만 5세까지 나이별 보육실을 들였고, 4층은 강당과 실내 놀이터, 암벽등반시설로, 5층은 미술실, 도서실, 음악실, 놀이실로 단장했다. 옥상은 실외 놀이터로 조성했다. 원생 부모와 견학 온 사람들이 침이 마르게 칭찬할 만큼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다.
절 마당에서 뛰놀며 몸도 껑충 마음도 쑥쑥!
2019년 9월 2일, 종로구의 국공립 어린이집으로는 36번째, 종로구 불교계 어린이집으로는 여섯 번째인 선재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계획 단계부터 개원까지 거의 3년이나 걸린 대작불사에 우정순 원장도 함께했다. 보육시설 운영 경험이 풍부한 우 원장의 합류로 선재어린이집 시설은 한 단계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
선재어린이집 정원은 총 97명, 현재 만 0세 새싹반 12명을 비롯해서 만 1세 잎새반, 만 2세 풀잎반, 만 3세 꽃잎반, 만 4~5세 숲속반에 총 76명이 등록되어 있다. 새싹반과 잎새반, 꽃잎반은 늘 대기자가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안타깝게 코로나19로 인해 20명은 등원을 못하는 형편이다.
직장인 부모 위주의 어린이집으로서, 개원 초기에는 오후 10시까지 연장 운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원하는 부모가 없어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문을 열고 있는데, 오후 4시쯤이면 10명~15명 정도 남고 그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귀가하여 6시 30분 정도면 2~3명 정도 남는다.
부모들도 인정하는 선재어린이집 최고의 자랑거리는 최상급 먹을 거리와 조계사라는 정서적 환경이다. 점심을 비롯해서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먹는 간식은 최고 품질의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다. 조계사에서 지원해줘서 가능한데, 성장기 어린이가 먹는 음식은 최고급 재료를 써야 한다는 게 사중의 생각이다.
봄빛 화사한 부처님오신날의 다양한 행사와 여름날 수려한 연꽃축제, 가을의 국화축제는 절 가까이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큰 혜택 중 하나다. 조계사와 함께하는 동승 체험과 연등 만들기, 주지스님의 크리스마스 선물 나눔 행사 등이 불교와 친해지게 만든다. 그 영향으로 원아들과 조계사 유아법회의 인연이 깊어지고 있다.
탁 트인 통유리 창밖의 전통사찰 풍광, 낮잠시간의 은은한 명상음악과 찬불동요, 힘차고 부드러운 타종소리와 낭랑한 독경소리는 정서적 안정을 선물한다. 가끔 혼잡스러울 때도 있으나 이는 피할 수 없는 도심 속 삶의 편린에 불과하다.
선재어린이집 원아들은 하루 1시간씩 꼭 바깥 활동을 한다. 어린이집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뛰어놀기 좋은 흙 마당이 있고, 청계천 산책길도 별로 멀지 않다.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보육 목표에 속하기 때문이다.
▲ 작년 크리스마스에 지현스님이 원생들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어린이, 부모, 교사가 모두 행복해야
‘두 손 모아 행복해요’
선재어린이집 입구에 써 있는 글귀다. 어린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하고, 교사도 행복해야 한다는 게 선재어린이집의 운영 철학이다. ‘두 손 모아’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다.
어린이집의 주인인 어린이가 행복해야 함은 모든 보육시설의 존립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 원생들의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좀더 강조한다. 처음 들어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보통 일주일을 잡지만, 한 달 이상 걸리는 어린이도 있다. 반드시 등원 첫날 부모가 아이 곁에서 지켜보고 혼자 적응하는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도록 도와야 하는데, 우 원장은 이 과정을 특히 중시한다. 이를 소홀히 넘기려는 부모에게는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래야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아이들의 건강을 살펴달라고 당부한다. 단체 생활이므로 조금이라도 이상증세가 보이면 등원을 자제해달라고 하여 지금 부모님들은 100퍼센트 잘 지켜주고 계신다.
어린이집 운영에는 부모와 교사의 행복도 포함된다. 부모와는 ‘키즈노트’를 통해서 활발하게 소통하고, 부모들이 궁금해 하기 전에 먼저 아이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부모들 대부분은 어린이집이 자기들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 잡고 안정되었다며 만족하고 있다.
작년 교사 공개채용 때 제일 중점을 둔 건 ‘인성’이었다. 인성 테스트를 하고, 3년 이상의 보육교사 경력과 영아(0세~1세)를 돌본 경험이 많은 사람을 우선순위로 뽑았다. 선재어린이집 특성상 영아들이 더 많을 것에 대비한 것인데, 예상이 들어맞아 작년 설문조사에서 교사들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왔다.
교사가 행복해야 질 높은 보육이 이뤄지고,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도 행복하다는 우 원장의 지론을 바탕으로 일궈낸 성과다. 선재어린이집식 행복 삼위일체론인 셈이다.
선재어린이집 원훈은 ‘마음이 고운 어린이, 꾸밈이 없는 어린이,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다. 수많은 ‘착하고 솔직하고 마음 넓은 어린이’들이 부처님 도량에서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불자로 자라나 미래 한국불교의 대들보가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