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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아들이 들려드리는 불교이야기

방편(5)

  • 입력 2020.09.01
  그리운 어머니.
이번 여름은 기록적 폭우로 인해 도로가 파괴되고, 둑이 터지고, 산사태가 집을 삼켜 많은 수재민이 발생한 아픈 여름이었습니다. 비는 만물을 생장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비가 한순간 거대한 폭력으로 변해 많은 이들을 고통에 빠뜨려놓기도 합니다. 발원문에 ‘풍조우순민안락風調雨順民安樂’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바람은 조화롭게 불고, 비는 순조롭게 내려서 중생 모두가 안락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원입니다. 예전에는 이 구절을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번 참사를 겪고 나니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불교의 발원문이란 중생에게 꼭 필요한 것만 꾹꾹 눌러서 압축해놓은 글귀이니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비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변덕스러운 자연의 비가 아니라, 한 결 같이 중생을 조화롭게 생장시키는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인 비 이야기입니다. 

 

법화칠유

어머니, 『법화경』의 ‘불타는 집’과 ‘장자와 거지아들’의 비유에 이어서 ‘법화칠유法華七喩’의 세 번째 비유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재개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우리는 지금 붓다의 설법이 오랜 시간과 다양한 지역,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풍부하고 완숙한 체계를 갖추게 된 대승경전인 『법화경』, 그 가운데서도 경의 골수라 할 수 있는 방편에 대한 일곱 가지 비유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법화칠유의 세 번째는 ‘약초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는 『법화경』의 다섯 번째 품인 약초유품에서 나온 것으로, 이 부분은 이해하기 그리 쉽지 않습니다. 흔히 대승교학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일승一乘의 개념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부분만 잘 파악하면 대승불교 전체를 꿰뚫는 요의要義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선 경의 내용부터 보겠습니다.

“가섭아, 비유하자면 모든 세상의 산과 하천과 계곡과 토지에서 자라난 꽃과 나무와 숲, 그리고 온갖 약초들은 종류가 다양하고 이름과 모양도 각각 다르다. 그때 구름이 빽빽이 온 세상을 덮고 일시에 비가 고루 내리면, 모든 꽃과 나무와 숲, 그리고 약초들의 작고 크고 중간인 뿌리와 줄기, 잎이 그 크기에 따라 비를 받아들인다.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이지만 수목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음이 다르게 된다. 비록 여러 초목은 한 땅에서 자랐고 같은 비로 적셔졌지만, 그 생장에 각각의 차별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 비유가 혼재되어있음을 알 수 있지요. 하나는 차별적 성품과 형상을 지닌 초목과 약초에 관한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무차별적으로 온 세상을 덮은 구름과 거기서 내리는 비의 비유입니다. 우선 구름과 비, 그리고 약초가 무엇에 대한 비유인지 알아야겠죠. 경전을 좀 더 읽어볼까요?

“가섭아,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큰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큰 음성으로 온 세계의 천신과 사람 그리고 아수라에게 두루 외치는 것은 큰 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과 같다.”
“중생은 마치 저 꽃과 나무, 숲과 온갖 약초들처럼 자신의 근기가 상, 중, 하 가운데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오직 여래만 분명히 안다).”

보시듯 초목과 약초가 중생을 비유한 것이라면, 큰 구름과 비는 부처님의 한없는 공덕과 진리의 비유입니다. 큰 비는 대지를 적시며 거기서 자라나는 각각의 존재를 생장시키지요. 여기서 ‘아, 중생은 자신이 지닌 그릇대로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말이로구나.’ 정도로 짐작하고 넘어가버리면, 코스요리를 먹으러 갔다가 전채요리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리는 격입니다. 아직 메인메뉴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다시 말해 진리나 경전에 대한 존중이나 경외가 없으면 경전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전을 읽을 때마다 ‘나는 모른다. 오직 부처님만 모든 것을 분명히 아신다’라는 지극히 낮고 겸허한 마음으로 시작해야하는 것입니다.
비는 초목들에게 동일한 모습으로 생장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법法의 비雨는 사과나무에서는 사과를 맺게 하고, 배나무에서는 배를 열리게 합니다. 비는 초목의 성품에 맞추어 생장을 돕습니다. 그래야만 진리의 법이자 방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초유품은 이러한 차별적 성장이 중생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일체지혜와 방편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성품대로 올바르게 생장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왜냐면 중생은 자신이 약초인지 꽃인지 수목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래는 이때 각각의 중생의 근기가 예리하고 둔한 것을 살피고, 정진하고 게으른 것을 살펴서 그들이 감당할 수 있게 법을 설하여 모든 이들을 환희롭게 하여 큰 이익을 얻게 한다.”
“부처님의 법에 따라 읽고 외우거나 수행하지 않고서는 중생은 스스로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직 여래만이 중생들의 종류와 형상과 성품의 실상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화경』 약초에 관한 비유를 ‘중생은 제 근기대로 법을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요약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중생의 깜냥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지혜’나 ‘공덕’과는 거리가 먼 ‘망념’이 됩니다. 우리가 본연의 성품대로 푸르른 수목과 울긋불긋한 꽃, 그리고 풍성한 과실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선지식의 방편을 따르는 것이 필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중생의 성품에 따라 다양한 방편과 다양한 결과를 불러오는 진리의 법이 실은 한 모양이고, 한 맛이라고 선언합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옵니다.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고 했다가, 또 무차별이라고?’ 어머니, 발길을 내딛은 김에 약초유품의 마지막 부분까지 따라가 보지요. 

“여래가 설하는 법은 하나의 모양一相이자 하나의 맛一味이니 소위 해탈하는 형상解脫相, 번뇌를 떨친 형상離相, 번뇌가 소멸된 형상滅相으로 마침내 일체의 모든 지혜一切種智에 다다른 것이다.”
“여래는 하나의 모양과 하나인 법을 알고 있으니, 소위 해탈하는 모양, 번뇌에서 떠난 형상, 번뇌가 소멸한 형상, 구경열반으로 항상 적멸한 형상으로 끝내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것을 잘 아시니, 중생의 마음이 바라는 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보호하여 곧바로 일체종지를 말하지 않는다.”
 
경에서 부처님은 일체에 대한 지혜(일체종지)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머리로 짜내거나 어디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공空에 대한 깨달음이자 체득이지요. 공은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제법의 실상이자, 중도이고, 연기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실상을 꿰뚫은 부처님이 펼치시는 지혜의 법은 결국 ‘공’이라는 하나의 맛과 형상 말고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공’의 도리를 처음부터 들이대면 장자와 거지아들의 비유에서 보듯 중생이 거부하거나 도망쳐버릴 것을 부처님이 잘 알고 있기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차별적, 단계적 방편을 쓴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 다양하고 차별적 방편 또한 일체종지란 공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기에 개별적 실체가 아닌 공이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어머니, 우리는 ‘진공묘유眞空妙有’란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텅 빈 공의 도리로 말미암아 걸림이 없는 방편이 빗물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중생의 근기에 딱 맞춰진 그 방편은 중생의 본연의 성품대로 생장시켜 다시 공(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제 처음에 인용한 약초유품의 비유를 다시 음미해보시죠.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이지만 수목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음이 다르게 된다. 비록 여러 초목은 한 땅에서 자랐고 같은 비로 적셔졌지만, 그 생장에 각각의 차별을 지니게 된다.”

글귀가 주는 의미가 처음과는 사뭇 달라지셨나요? 내용을 알고서 보면 이 평범한 구절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하나가 곧 여러 개이고, 여러 개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라는 일승교학의 깊은 의미와 연결됨을 알게 됩니다. 만약 이런 깨달음이 조금이라도 오셨다면 다행이고, 아니라면 제 설명과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어려운 이야기를 따라오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 평온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시길 아들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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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이야기』 외



 

강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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