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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가피가 만난 사람

따뜻한 자비 나눔으로 이주민들에게 희망과 꿈 선물

  • 입력 2020.12.24

조계사와 함께하는 공익법인 ‘일일시호일’ 

 

  통계청이 실시한 201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살고 있는 해외 이주민의 수가 무려 250만 명에 다다랐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4.9%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 분야 전문가들은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사회로 분류한다. 
서울시 영등포구의 경우 외국인의 비율이 15%에 가깝다. 서울 금천구를 비롯해서 구로구와 중구, 경기도 안산시와 포천시 및 시흥시, 충북 진천군과 음성군, 전남 영암군 등도 그 비율이 10%를 넘어서는 지역이다. 더불어 다문화 지원센터도 227개소에 달해 대한민국은 어느덧 피부색도 인종도 다양한 다문화사회에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의식은 이 다양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결혼이주민 여성이나 이주노동자를 함께 살아야 할 이웃보다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강하다.


이주노동자 돕기 캠페인으로 출발, 
2016년 사단법인 ‘일일시호일’ 설립

사단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공익 법인이다. 교계 언론사인 법보신문(대표 김형규)이 2008년 1월부터 ‘이주민에게 희망을 보시합시다’라는 나눔 캠페인을 펼치면서 태동이 되었다. 언론의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고, 국내외 사회 소외계층이 우리 사회 및 세계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게 하고자 함이었다.
일일시호일 심정섭 대표는 “일터에서 다치거나 병이 난 이주노동자의 절박한 처지에 관심을 갖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처음 6개월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후원자들이 법보신문 구독자들뿐이었다. 신문에 사연을 소개하고 한 달간 후원금을 모아도 100만 원을 채우기 힘들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캠페인을 계속하고 인연 닿는 사찰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후원자 수가 늘기 시작했다. 2008년에 총 11명의 이주노동자를 도왔고, 2009년에는 12명의 이주노동자와 평창 다문화가정 10가구에 장학금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라다크 수해 복구와 캄보디아 학교 화장실 건립 등 해외 구호활동에도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는 가운데 2016년 8월 30일, 100회째 지원금 전달식과 기념법회를 연 자리에서 사단법인 ‘일일시호일’로 정식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이 희망이고 미래라는 믿음으로 서로 이웃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나눔 운동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계사는 2015년 3월에 ‘일일시호일’과 업무협약을 맺고 그 자비 행렬에 동참했다. 조계사와의 업무협약은 법인에게도 커다란 전환의 계기였다. 조계사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만남으로써 좀더 안정된 분위기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고, 나아가 조계종단 차원의 공익 법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을 얻은 것이다.   
그 뒤부터 조계사는 매달 음력 초삼일마다 대웅전에서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주노동자에게 후원금을 직접 전달하고 있다. 지자체 추천을 받아 일일시호일 이사회 심사를 거친 대상자가 이 자리에서 약 삼사백만 원의 후원금을 전달받는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병원비로 쓰기에는 넉넉하지 않지만, 불의의 사고나 병에 걸려 절망에 빠졌던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만난 격이고 다시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힘을 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일시호일은 2008년부터 올해 9월까지 약 13년간, 150명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매달 10가구 지원)에 총 7억이 넘는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 중 조계사가 지난 5년간 전달한 후원금은 매달 300~400만 원으로, 2억여 원에 달하고 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날마다 좋은 날’이란 뜻이다. 이웃과 우리 모두에게 나날이 좋은 날이기를 기원하며,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정도 우리와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므로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함께 정토를 일구자는 다짐으로도 이해한다. 
공익 법인은 정부 지원과 관리를 받는 단체이므로 설립 인가가 나오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절차도 까다롭다. 그런데 일일시호일은 신청서를 제출하고 한 달 만에 인가를 받았다. 담당 공무원이 그간의 수입 지출 내역과 활동을 기록한 서류 한 보따리를 받아보고는 그 꼼꼼함과 투명한 운영방식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 

일일시호일은 사찰과 단체 및 개인후원자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서울지역(조계사, 봉은사, 호압사, 노원사암연합회, 전국비구니회)과 강원도 평창군(월정사), 전남 영광군(불갑사), 경남 울진군(불영사)과 마산 창원 지역(정법사), 부산시(미소원) 등에서 열 곳의 사찰과 단체가 가입해 있다. 개인회원은 자동이체로 후원하는 100여 명과 CMS 정기회원 3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2017년부터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되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후원금의 80%는 직접 기부에 쓰고, 20%는 법인 운영비로 충당한다. 
이 가운데 조계사는 80여 명의 불자들이 CMS 계좌로 후원하고 있다. 심 대표가 2017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지역모임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홍보하고 후원신청서를 돌린 덕분이다. 

“조계사 주지 지현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매달 전달식에 참석해서 후원금을 직접 전달하고, 신도들에게 동참을 권하는 등 관심이 각별하시다. 주지스님은 특별히 후원 대상이 어린이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대상자인 경우, 별도로 지정해서 후원해주신다. 비밀로 해달라셨지만 이번 기회에 꼭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심 대표가 잊지 못하는 조계사 불자가 있다. 조계사에서 10년 넘게 봉사해온 원명심 보살인데, 500만 원을 지난 2019년 2월, 흔쾌히 보시했다. 본인의 가업이었던 공장의 외국 노동자들이 다쳤을 때가 생각나서 속상하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봉사하면서 막연하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쓸 생각으로 몇 천 원씩 모았다는 말에 더 큰 울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후원금은 80% 이상이 직접 기부하는 데 쓰이고, 20%가 직원 월급과 운영비로 충당된다. 
법보신문 파견 형식으로 직원을 고용, 급여 지출을 줄이고 있다. 후원금 수입과 지출 내역은 법보신문과 일일시호일 법인 홈페이지(igoodday.co.kr)에 투명하게 공지한다. 


다문화 지원 시설 가장 적은 불교계

불교계의 다문화 인식과 지원 시설은 어떤 수준일까? 지원 시설은 2013년 8월 조사 당시 불교계가 29곳으로, 개신교(600곳 이상)의 20분의 1, 천주교(146곳)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불교사회연구소가 발간한 《다문화 사회와 한국불교의 역할 보고서》의 내용이어서 오래된 점이 아쉽다.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 책에서는 불교계의 다문화 인식도가 가장 낮아서 이주민들을 ‘가까이 못할 사람들’로 여긴다고 했다. 
이런 인식과 현실이 결혼이주여성들의 결혼 후 종교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주로 불교권 국가 여성들인데도 불구하고 불교의 하락세(24.4%→14%)가 가장 눈에 띄었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가장 큰 상승률(5.8→15.1%)을 보였고, 가톨릭은 조용한 증가세(19.8%→23.3%)를 유지했다. 인드라망처럼 세상의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이 조사에서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심대표는 자비의 선순환을 눈으로 확인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젊은 스리랑카인이 일일시호일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다. 그는 자기가 도움을 받은 만큼 자신도 남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한국어 공부에도 더 열성을 바쳤다. 결국 그는 유창해진 한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어려운 처지의 동료들 통역을 돕는 등, 주변을 위한 좋은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일일시호일’, 자비의 선순환이 이처럼 나와 남의 하루하루를 정토로 만든다.    
가끔은 “왜 굳이 외국인을 도와주느냐?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불쌍한 사람 많다”라는 이들을 만난다. 심 대표는 이렇게 대꾸한다.
“이주민들은 며칠만 살고 돌아갈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처럼 이곳에 뿌리 내릴 우리 이웃이다. 이주노동자는 본국에 귀국하면 한국을 홍보할 사람이다. 좋은 인연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민을 차별하는 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서 그 화살이 곧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작년 12월 1일, ‘한국다문화불교연합회’가 창립되었다. 심 대표를 중심으로 스리랑카, 네팔, 캄보디아, 미얀마, 몽골, 태국, 베트남, 줌머족 등 8개국 9개 법당 대표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공동사업을 추진 중이다. 법당을 중심으로 자국민의 정착을 돕거나, 이주노동자들이 귀국 후에도 서로 연결되도록 국가별로 연대해서 정보 공유 등의 시너지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심 대표는 또한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운영해볼 계획이다. 더 가까이에서 다문화가정의 일상생활을 지원할 필요를 느낀다. 한글 보충 교육, 법률 지원, 노무 상담, 학부모의 학교생활 돕기 등의 구체적인 도움이 더 절실하다는 뜻도 된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글 중에 “실천하지 않은 어짊과 예는 어짊과 예가 아니고, 어짊과 예를 실천하지 않은 선비는 선비가 아니다.”(《다산》 서언 중 ‘다산비결’)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바꿔 읽어본다.
“실천하지 않은 자비는 자비가 아니고, 자비를 실천하지 않은 불자는 불자가 아니다.”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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