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차가운 느낌은 감자 줄기처럼 예전의 추억들도 따라서 올라옵니다.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꼭 이때쯤이면 추위를 피할 곳도 없는 산에서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때의 싸늘하고 서글픈 감정이 다시 올라옵니다. 이렇게 나의 기억들은 내 몸의 촉감들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 느낌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서글픔이나 슬픔, 우울이나 기쁨, 즐거움들도 함께 엮여 있습니다. 그 몸 느낌 아래에 깔린 정서들이 만나기 싫은 기억들이라면 그 몸 느낌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느낌을 싫어하거나 피하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언제 어떤 마음을 경험하는지 들어본다면 그를 이해하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나 자신의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하동 쌍계사에 살았습니다. 절에 스님들이 적으니 아이들이 3명에서 많을 때에는 6명까지 살았습니다. 작은 방 하나에서 함께 살았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데워야 했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나뭇가지들을 주워왔습니다. 때론 주변에 도토리나무가 많았는데 그 낙엽이라도 많이 주워옵니다. 그런데 부피만 크지 불을 지펴도 잠시 화르륵 하고는 벌건 재가 되어 날리고 맙니다. 1평 남짓했던 방에 온통 이불을 깔고 우리끼리 몸의 열을 의지해서 자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서글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함께 살았던 제 동생은 그 이야기를 하면 기억도 잘 못하고 그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상황이 같더라도 경험하는 마음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4살 적은 동생의 친구 또래였기 때문입니다. 또, 겨울이면 물이 데워지지 않아서 양말을 빠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며칠이면 양말이 쌓여서 방에서 슬슬 악취가 올라와 냄새를 참을 수 없게 되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빨래를 했습니다.
제가 질 때면 찬 겨울 물을 양동이에 채우고 양말을 담아서는 작대기를 잡고 휘휘 돌리면서 한 번씩 발로 눌러줍니다. 그러면 때 구정물이 조금씩 나오는데 그렇게 한 두 번 하고는 작대기로 양말을 하나씩 들어서 빨랫줄에 널곤 했습니다. 동해안 마을에 명태를 널어놓은 모습처럼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며칠 하고 나면 양말이 말라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찬물을 만나고 양말을 빨려고 하면 그 생각이 나서 피하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상황은 달라져도 그때 경험한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것은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경험으로 그 느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제가 15년 전 처음 우리 절에 왔을 때에 쌀도 사먹어야 하고 기름 값 아낄려고 방에 불을 거의 넣지 않았습니다. 내 방에 오는 사람들마다 추워서 못 있겠다고 금방 나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이불을 둘러쓰고 추위를 버티었습니다. 다행히 부산의 기온이 많이 춥지 않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산의 중심에 안정된 사찰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과가 좋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때의 춥게 떨며 자던 기억이 이젠 어려움을 이겨낸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힘들다고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조금만 힘내서 버티어 보라고 말합니다.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내라고 말할 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운 느낌은 서글픔이 올라왔다면 15년 전의 추위는 자긍심으로 올라옵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을 살펴보면 결국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느낌을 만들어가는 핵심인 것 같습니다.
원효스님의 경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전날 밤 목마를 때에는 해골바가지의 물이 꿀물 이었는데 아침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보고는 더럽고 먹을 수 없는 물이라고 생각하니 토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물이지만 어떻게 바라보는 가가 자기에게 펼쳐지는 세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법문이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주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와닿는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