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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가피가 만난 사람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며, 마을로 들어간 조계사

  • 입력 2021.03.11

조계사 직영 종로구마을자치센터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니, 조계사는 국화꽃 잔치가 한창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중에도, 국화꽃의 고고한 기품과 군자의 절개를 떠오르게 하는 그윽한 향기가 사람들 얼굴에 단풍 빛 웃음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기린을 많이 닮은 브라키노사우루스와 스테고사우르스 등의 공룡과 육바라밀을 결합해서 꾸민 ‘바라밀다이노파크’가 조성되었고, 선재어린이집 어린이들 형상의 장엄물과 탄생에서 열반까지 부처님 일대기를 표현한 꽃무더기가 경내 곳곳에 가을을 풀어 헤쳐 놓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은은한 국화꽃 향기는 주변 마을 골목골목까지 가을바람에 실려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다.


불교계 최초로 
마을자치센터 수탁 운영

종로구 율곡로 89번지, 창덕궁 정문 가까운 곳에 종로구마을자치센터(센터장 박혜영, 이하 센터)가 있다. 마을자치 1번지를 비전으로 내건 이 센터는 종로구 관내 17개동 마을공동체의 활성화와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지원하는 민간조직이다. 조계사는 2019년 1월, 종로구와 위탁협약을 맺음으로써 2021년까지 3년간 센터를 수탁 운영하게 되었다. 
조계사가 마을자치센터를 직영한다는 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몇 년 전 사내 봉사단체 설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주지 지현 스님이 하셨던 말씀과도 통한다.
“그동안 조계사는 안에서는 잘 살아왔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일주문 밖에까지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일주문 밖,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 부처님 법을 전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이 불자의 더 큰 발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전체 25개구 마을자치센터 민간 위탁 법인 중 종교법인은 현재까지도 조계사가 유일하다. 이 종로구와 조계사의 위탁협약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마을공동체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따라 진행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그간 조계사가 서울노인복지센터,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어린이집 운영 등 사회복지시설과 가피봉사단 등의 법인 등을 운영한 경험, 종로와 서울 지역사회에서 쌓아온 튼튼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단위 사찰인 조계사가 불교계 포함 전 종교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마을자치센터 수탁 운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조계사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그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살맛나는 마을, 
아름다운 골목 가꾸기 사업 지원

2019년 새해벽두 센터가 조계사 직영으로 바뀌면서 공모를 통해 채용된 박혜영 센터장과 일곱 명의 직원들이 합류했다. 첫해는 주로 민간위탁 운영 기관으로서 운영의 기반을 다지고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에 집중하였고, 올해는 종로구 관련 기초 자료 조사와 활동가 발굴 작업 등에 집중했다. 
마을자치센터 설립 취지는 주민의 주도로 마을을 가꾸고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며, 주민자치회 사업을 지원하는 데 있다. 구청이나 주민센터의 일방적인 전달이나 지시보다 마을 일은 주민들이 소통을 거쳐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물론 지역 경제 활동의 확대까지 포함된다. 

센터가 심혈을 기울이는 네 가지 사업 중 하나가 마을공동체 주민공모사업이다. 이웃만들기사업, 골목만들기사업, 청년마을만들기사업, 성곽마을사업 등 다섯 분야로 공모가 진행된다. 여기서 ‘마을공동체’란 주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며,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마을 일은 주민이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민 자치 공동체를 말한다. 

센터는 주민공모사업을 1년에 2~3번 실시한다. 주민들이 사업계획안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선정하고, 사업비를 지원하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 주로 4월~10월 약 7개월간 진행하는데, 한 건 당 100만 원~500만 원씩, 연간 7천만 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주민공모사업은 주민 3명 이상이 뜻을 모아야 신청할 수 있다. 작년에는 39개, 올해는 41개 사업이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다. 

이웃만들기사업은 풀뿌리 성격의 사업이다. 이웃과 함께 걷기, 꽃밭 가꾸기, 친환경세제 만들기 등 주제가 다양하다. 또한 가회동 ‘계동길을 피우다’ 계동길 상점 네트워크 사업 같은 골목만들기사업과 ‘신나는 이웃사촌’ ‘구기비봉장’ 같은 이웃만들기사업등이 있다. 청년이 제안하는 ‘골목극장A’, ‘예술로 청춘’, ‘해피투게더’등 다양한 콘텐츠가 돋보이는 청년마을만들기사업과 성곽마을 공동체 공간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하는 성곽마을사업도 공모를 통해 지원한다. 

그 외 종로구 특화된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학교 운동장 활용 물놀이사업, 어린이 거리 축제 등 어린이를 위한 마을사업도 인기가 높고, 도시농업을 주제로 한 채소 가꾸기와 양봉사업, 성곽 탐방코스 및 골목길 해설사 등의 한양 도성 성곽마을사업은 골목길 카페 운영과 같이 일자리 창출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도 있다. 
종로구에는 2020년 10월 현재, 17개동의 행정구역에 15만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나날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인구 유지 및 살기좋은 도시를 위한 연구와 공동체 사업 등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궁궐과 성벽, 한옥 등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성곽마을 6개) 다른 지역에 비해 성곽마을이 많은 지역으로 문화와 역사의 가치를 보존하며, 도심속에서 삶의 질이 향상되는 마을이 되도록 주민 주도적인 공동체 활동과 사업 활성화가 필요하다. 


주민 활동가 조사 자료 기반으로 
마을 공동체 지도 제작

그 밖에 주요사업으로, 마을공동체 일꾼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주민역량강화사업, 마을 네트워크 활성화사업, 홍보 및 아카이빙 등이 있다. 첫 해 활동의 결과물로 내놓은 〈2019 종로구 마을공동체 공간지도>는 마을 관련 조사 자료를 데이터화한 것으로, 마을자치센터 홍보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종로구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인 공공시설, 각종 도서관, 복지시설, 공공한옥, 공동이용시설, 공유주방 등을 자세히 안내해놓은 종로 마을지도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박혜영 센터장을 비롯해서 센터 직원들은 올해 4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주민참여 공모사업과 코로나 극복 체험수기 공모전(8월)을 무사히 치러내고 한숨을 고르는 중이다. 코로나 극복 체험수기는 25명이 응모했고, 12명에게 최우수상과 우수상 등이 주어졌다.

센터는 요즘 ‘서울형 주민자치회’ 확대 및 운영 지원 방안을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상대적으로 종로구는 변화를 따라가는 데에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를 확대시켜 주민들의 마을공동체 참여도를 높이고,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민주적 주민 조직이다.

더 넓어진 조계사의 품

센터의 올해 목표는 조직의 안정이다.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선임 활동가들과 사업을 연계하며, 직원들과 소통이 원활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센터는 조계사와 연계된 활동도 구상 중이다. 조계사청년회와 가피봉사단, 어린이법회 등과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싶다. 예를 들어 조계사청년회와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제를 짚어보는 포럼, 가피봉사단과는 죽음준비학교 등 주민 대상 교육을 함께 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코로나19의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국화축제 행사인 ‘나는 화가다’, 여름철 ‘물놀이 풀장’ 등 조계사 정기행사에 마을 어린이들이 함께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얻는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센터 수탁으로 인해 조계사의 품은 더욱 넓어졌다. 지역사회에서 그 위상이 한껏 높아졌고, 지역 주민들에게 봉사하고 기여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 다른 민간 법인에 비해 안정된 조직력을 갖춘 조계사가 센터와 손잡고 지역 복지활동 및 주민 대상 사업을 함께한다면, 종로지역에서 조계사의 입지와 이미지는 그 어떤곳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고, 더불어 불교에 대한 인식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2007년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과장으로 입사한 박혜영 현 센터장은 2014년 동 복지관 무악센터 총괄운영과장으로 발령받은 뒤, 2019년 2월 센터 센터장에 취임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박 센터장은 주민공모사업이나 주민역량강화사업, 네트워크 파티 등에서 주민들과 소통할 때 가장 설레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함께 걸림돌을 해결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새내기 센터장이어서 직원들과 소통하는 게 아직도 어려워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배우면서 나아가고 있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조계사와 더 긴밀하게 연계해서 조계사의 품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박혜영 센터장. 조계사 직영 종로구마을자치센터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참 믿음직하다.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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