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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아슬아슬한 행복

  • 입력 2020.12.16

원각경 미륵보살장 말씀에서 

 

  부처님께서 아내에게 물으셨다.
“요즘 여성분들이 명품 가방을 좋아한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럼요. 모임에 가보면 다들 하나씩은 있어요.” 
“그럼, 보살님은요?”
“저만 없죠.”
아내가 입술을 삐죽이며 남편을 흘겨보았다.
“그러게요.”
남편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눈치인지 짐짓 굵직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필요한 물건을 담기만 하면 되지 꼭 그것이 명품이어야 해?” 

부처님께서 곁에서 싱긋이 웃으셨다.
“저는 부부싸움을 일으키려고 이런 말을 꺼낸 게 아닙니다. 또한 두 분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려고 이런 말을 꺼낸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어느 한쪽을 편드는 말로 이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아내가 새치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감정이 앞섰네요.”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럼 보살님께 묻겠습니다. 보살님이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보살님을 제외한 모든 친구가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살님은 그 순간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뭐 … 잠깐 불쾌하기야 하겠지만 … 그래도 오래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인데요. 기쁜 마음도 생기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행복과 불행을 느끼게 되는 상황과 조건들은 매우 복잡 미묘합니다. 이를 일일이 거론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조건과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사고思考 실험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러니 일단 제가 제시하는 조건만 고려하고 나머지는 제외하십시오. 시간을 사흘 즉 72시간으로 제한하고, 매일 2시간씩 세 차례에 걸쳐 친구들을 만났다고 가정하고, 명품 가방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행복한 느낌과 불행한 느낌만 측정해 보도록 합시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명품 가방을 들고 있고 보살님은 시장에서 산 싸구려 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살님은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불행하다고 느끼겠지요.”
“그 모임이 2시간 동안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가방과 관련된 감정만 측정하자고 가정했으니, 보살님은 2시간 동안 불쾌감이 지속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네, 그것만 고려한다면 그렇겠지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그 불쾌감은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요?”
“명품 가방이 없어서 생긴 불쾌감이니 저에게 명품 가방이 생기면 사라지겠지요.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유쾌함이 생기겠지요.”
“그럼, 모임이 끝나자마자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가서 고급 브랜드의 가방을 사면 되겠군요.”
아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 있다면 싸구려 가방을 들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겠지요. 그런 여윳돈이 어디 있나요?”
“그렇다면 보살님의 불쾌감은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지속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보살님의 불쾌감은 어떻게 해야 해소될까요?”
아내가 다시 곁눈질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글쎄요, 이 양반이 덥석 하나 사준다면 모를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보살님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불쾌감이 지속되겠군요.”
“지속되는 정도가 아니라 남편을 보면 그 불쾌감이 점점 더 커질 겁니다.”

부처님께서 깔깔대고 웃으셨다.
“이렇게 가정해 보겠습니다. 거사님이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저녁을 먹고 나서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가 큰맘 먹고 덥석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고 합시다.”   
“만약 그런다면 참 기쁘겠지요.”
“좋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날 밤은 행복하게 보내겠군요.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과의 모임에 다시 참석할 때까지도 그 행복감이 지속되겠지요?”
아내가 싱긋이 웃었다.
“상상만 해도 좋네요. 아마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모임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흥분될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시 이런 가정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가방을 앞으로 내밀고 모임 장소로 들어섰는데, 먼저 온 친구들이 어떤 친구 주위에 모여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왜 저러나 싶어 봤더니, 그 친구가 명품 중에서도 명품이라는 프랑스제 고급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보살님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문을 들어서던 순간까지 지속되던 기쁨이 산산조각 나겠지요. 아마 자랑하려던 가방을 슬그머니 뒤로 감출 겁니다.”
“그럼 다시 모임을 지속하는 2시간 내내 불쾌하겠군요.”
“네, 아마 어제 모임보다 더 불쾌할 것 같아요. 오래간만에 나도 자랑거리가 생겼는데 … 비싼 새 가방을 들고 온 그 친구도, 그 친구에게만 눈길을 주는 다른 친구들도 미워질 것 같아요.”
“그럼 어제처럼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불쾌하고, 어제 큰맘 먹고 명품가방을 선물했는데도 불구하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봐도 전혀 기쁘질 않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남편이 찡그리고 있는 보살님에게 까닭을 묻고, 다시 백화점으로 달려가 카드를 긁어 친구가 가졌다는 그 명품 중의 명품으로 교환했다고 합시다. 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보살님의 기분은 어떨까요?”

아내가 싱긋이 웃었다. 
“행복하겠지요.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남편도 더없이 고맙고요.”
“좋습니다. 그럼 어제처럼 행복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모임에 참석하는 발걸음도 가볍겠군요. 그리고 또 어제처럼 새 가방을 앞에 내밀고 모임 장소의 문을 당당하게 열겠지요.”
“아마 그러겠지요.”
부처님께서 고개를 쭉 내밀고 눈을 동그랗게 뜨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 중 어느 하나도 나의 가방에 눈길을 주지 않고, 가방이 어디서 생겼냐고 묻지도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다면 보살님의 기분은 어떨까요?”
아내가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 그렇게 침묵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기대했던 반응을 친구들이 보이지 않으면 아마 묘한 우울함이 찾아들 것 같아요.”

부처님께서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제가 말씀드리려던 것이 그것입니다. 명품 가방이 원인이 되어 행복한 감정이 발생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아슬아슬한 행복입니다. 그런 행복이 찾아들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게 필요합니다.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가 명품 가방을 살 돈이 수중에 있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아내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할 남편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들고 온 가방을 부러워해 줄 친구도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런 조건들이 제대로 갖춰진다는 것은 사실 현실에서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살님도 잘 아실 겁니다. 게다가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상상 속 72시간 동안 명품 가방과 관련되어 발생한 보살님의 감정을 돌아보셔요. 아마 유쾌하게 보낸 시간보다는 불쾌하게 보낸 시간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보살님의 삶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고개를 들고 빤히 부처님을 쳐다보았다. 
“그런 종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란 무슨 뜻입니까?”
“무언가를 소유所有하면 행복해지리라 여기고, 그 행복의 조건을 소유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로 들은 명품 가방 뿐만이 아니겠지요. 나에게 돈이 많다면, 내가 이런 존경을 받는다면, 나에게 이런 남편이나 자식이나 친구가 있다면 등등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발생하는 행복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은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고, 성취한다고 해도 지속하기가 또한 매우 어렵습니다. 즉 아슬아슬한 행복이지요. 또한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서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처님. 소유로 얻는 행복은 아슬아슬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안정되고, 효율적인 행복을 추구하라고 권합니다.”
아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게 뭡니까?”
“바로 열반의 행복입니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등이 있다.


 

성재헌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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