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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백성호의 국수가게

보드가야의 보리수와 깨달음의 새벽별

  • 입력 2021.01.01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싯다르타는 29세 때 출가했다. 갓 태어난 아들과 새댁인 부인을 뒤로 하고, 왕궁을 떠나 머리를 깎았다. 인도에서 이름 높다는 스승을 세 명이나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으나 깨달음에 닿지는 못했다. 이후 홀로 숲으로 들어가 6년간 고행을 했다. 거의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갔다. 그 길의 종점에도 깨달음은 없었다. 우유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숲 속의 보리수 아래 홀로 고요히 앉았다. 그때 싯다르타는 35세였다. 

 

나는 보드가야의 보리수로 갔다. 2600년 전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다. 당시 싯다르타에게는 ‘마지막 승부’였다. 그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좌선해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며, 세상의 이치를 뚫기 시작했다. 

 

출발점은 인간의 생로병사였다. “늙음과 죽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태어남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업의 결과물인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존재는 어디서 오는가? 집착에서 온다. 그럼 집착은 어디에서 오는가?…” 싯다르타의 물음은 뿌리를 향했다. 도무지 풀 수 없는 생로병사의 문제, 그걸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를 찾아서 그는 내면으로 계속 파고들었다.

 

결국 우리 앞에 서 있는 담벼락의 이름은 ‘유아(有我)’다. 눈에 보이는 사과가 있고, 그 사과를 만질 때의 촉감이 있고, 그 사과를 한 입 베어먹을 때 밀려오는 단맛이 있고, 불러오는 몸의 포만감이 있고, 만족스러워하는 나의 마음이 있다. 그 모두를 보고 알고 느끼는 내가 있다. 그래서 ‘유아(有我)’다.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나는 있다. 

 

싯다르타는 ‘나’를 구성하는 모든 걸 하나씩 쪼개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가? 몸과 마음이다. 그 몸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가. 감각이다. 무엇에 대한 감각인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 작용에 대한 감각이다. 그런 감각의 뿌리는 어디인가. 그런 감각들은 어떻게 쌓이는가. 그럼 그것들은 과연 실재하는가. 정말 있는 것인가. 

 

싯다르타는 그런 식으로 승부를 걸었다. ‘나(我)’를 구성하는 퍼즐을 하나씩 뚫어지게 궁리하며 그 정체를 밝혔다. 그랬더니 결국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고, 맛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지는 존재였다. 본질적으로 그들 모두가 비어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작용만 할 뿐이었다. 그걸 우리가 “있다”라고 착각할 뿐이었다. 

 

그 모두를 뚫어버린 싯다르타는 ‘내가 없음(無我)’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던 ‘유아(有我)’의 담벼락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없음의 바탕 없는 바탕에서 세상의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또 짐을 깨쳤다. 그렇게 무아(無我)와 유아(有我)가 하나의 속성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터져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고개를 들어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침 새벽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을 보면서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우주의 이치를 관통했다. 

 

싯다르타는 비로소 붓다가 됐다. 인도에서 ‘타타가타(여래)’라고 부르는 깨달은 이가 됐다. 출가한 지 6년 만이었다. 목숨을 걸고서 고행을 거듭해도 이루지 못한 깨달음을, 우유죽을 먹고서 기운을 차린 뒤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좌선하다가 이루었다. 그는 여전히 보리수 아래 앉아있었다. 

 

깨달음의 눈으로 봤더니 세상의 존재 방식은 참 묘했다.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안에 들어가 돌고 돌았다. 아무리 돌아도 그 자리가 그 자리다. 그래서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다. 태어난 바도 없으니 죽을 바도 없다. 생로병사의 문제는 그렇게 절로 풀렸다. 

 

나는 깨달음의 보리수 앞에 앉았다. 아직 새벽이라 공기에 찬 기운이 돌았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캄캄한 하늘에 딱 하나의 별이 떠 있었다. 새벽별! 쿵쾅 쿵쾅, 나는 가슴이 뛰었다. 26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밤새 정진하던 붓다가 문득 깨달음의 눈을 얻고서 바라봤던 새벽별. 그 별이 바로 저 별이다. 새벽녘, 보드가야의 하늘에는 달리 다른 별이 없으니까.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새벽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유일하게 떠 있는 하나의 별. 깨달음을 이룰 때 붓다가 바라봤을 새벽별, 사진에는 희미한 점으로 박혔다. 저 먼 우주의 별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닿기까지는 수백만 광년이 걸린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수백만 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2600년의 새벽별이나 지금의 새벽별이나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감흥이 새로웠다. 마치 붓다가 바라본 그 날 그 시의 새벽별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산뜻한 새벽 공기 속에서 나는 보드가야 대탑을 돌았다. 깨달음의 보리수 뒤에 웅장한 규모의 대탑이 있다. 붓다의 깨달음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그 안에는 붓다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대탑 주위의 불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사경을 하기도 하고, 경전을 낭송하기도 하고, 만다라를 펼쳐 놓기도 하고, 오체투지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향하는 지향점은 똑같았다. 그건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우주의 이치였다. 

그 이치를 뚫을 때 싯다르타는 붓다가 됐다. 불교의 역사는 여기서 출발한다.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 왕자가 태어날 때 불교가 시작된 게 아니다. 보리수 아래서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룰 때, 비로소 불교의 역사가 출발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싯다르타의 탄생일보다 깨달음을 이룬 성도일(成道日)을 훨씬 더 값진 날로 여긴다.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서두르지 않았다.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숲에서 일곱 그루의 나무 아래서 7일씩을 보냈다. 그건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된 이치에 대한 되짚음이었다. 그렇게 49일을 보냈다. 앞으로도 짚어보고, 옆으로도 짚어보고, 뒤로도 짚어봤을 터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이 법은 너무 깊고 오묘하다. 설령 사람들에게 내가 이 법을 설한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터이다. 내가 열반을 말해도 사람들은 어렵게만 여길 것이다. 아무리 말을 해도 번거롭게만 여길 것이다.” 

 

붓다는 세상에 이 법을 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있음이 없음 속에 있고, 없음이 있음 속에 있는 이 묘한 이치를 누가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붓다는 스스로 침묵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세상에 불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경전에는 힌두교 최고의 신 브라흐마(범천)가 다가와 간청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붓다이신 여래께서 침묵을 지키고 법을 설하지 않으니 세상은 망했구나!” 

 

브라흐마는 붓다에게 간곡히 청했다. 세상을 위해 법을 설해 달라고 말이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이도 있지만,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위해 법을 설해 주십시오.” 어쩌면 브라흐마의 소리는 붓다 내면에서 올라온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고민과 망설임을 경전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을까. 붓다는 결국 법을 설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세상을 위해, 중생을 위해, 우주를 위해서 말이다.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저서 『생각의 씨앗을 심다』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이제, 마음이 보이네』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나무와 달 사이에 새벽별이 하나 떠있다.

보드가야 대탑과 안에 모셔진 불상.



보드가야 대탑과 안에 모셔진 불상.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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