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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마음이 편치 않은 자신을 보라

  • 입력 2021.01.01

원각경 미륵보살장 말씀에서 

 

 똥그랗게 뜬 아내의 눈이 더 커졌다. 
“열반이 뭐예요?”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단어의 뜻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던 온갖 불쾌한 감정과 복잡한 생각들이 조용히 사그라지는 것입니다.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곧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지요.” 
“마음이 편안해 진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 …” 
주문을 외우듯 같은 말을 반복하며 중얼거리던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바가 성취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건가요?”
부처님께서 눈을 크게 뜨고 박수를 치셨다. 
“네! 바로 그것이 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행복의 길, 즉 도(道)입니다.”
아내가 싱긋이 웃었다.
“요즘 길을 가다보면 ‘도를 아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던데, 부처님도 그런 ‘도(道)’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부처님이 깔깔거리며 웃으셨다. 
“‘도’라는 말을 거창하게들 사용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도란 풀이하면 길 즉 방법이란 뜻입니다. 길은 목적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즉 길이 길이려면 ‘~로 가는 길’이라야 하지요. 보살님이 길에서 만났다는 그 사람이 말한 ‘도’와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도’는 단어는 같지만 내용은 판이하게 다를 겁니다.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일러주시는 길은 열반에 이르는 길, 즉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이겠네요?”
“그렇지요.”
“그게 뭔가요?”
“그 길은 꽤나 긴 여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우선 첫걸음을 떼어야겠지요? 그 길의 첫걸음은 바른 관찰을 통해 바른 앎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엇을 어떻게 관찰하고 어떻게 알라는 말씀이신가요?”
부처님께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그럼, 제가 보살님께 묻겠습니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시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없지요, 그런 짓은 괜한 긁어 부스럼이지요.”
“그렇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을 찾는 사람은 현재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렇지요, 부처님.”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은 사람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의 마음이 편치 못한 상태라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부처님,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게 꼭 애써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건가요?”
부처님께서 고개를 쭉 내밀며 한껏 목소리를 낮추셨다.
“아닙니다. 보살님, 조용한 틈이 생길 때에 제가 드린 말씀대로 찬찬히 한번 돌아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깊은 속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에휴~’하며 길게 한숨을 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냥 그냥 덮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번에 가방 얘기를 했었죠? 친구들은 명품가방을 가졌는데 나만 명품가방이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할까요, 편안하지 않을까요?”
“편안하지 않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이 편안할까요, 편안하지 않을까요?”
“편안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얼굴을 봤을 때 마음이 편안할까요, 편안하지 않을까요?”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밤이 지나고 아침 밥상에서 남편의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할까요, 편안하지 않을까요?”
아내가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부처님, 아침이 되어도 남들처럼 제대로 된 가방 하나 사줄 능력도 없는 남편이 물론 밉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그 미움이 덜하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 눈을 찡긋하며 말씀하셨다.
“아침에 미움이 줄어들었다면 아마 밤새도록 ‘저런 남편을 선택한 내 잘못도 크지’ 하고 자책하거나 ‘그래도 우리 남편이 게네들 남편보다 인간미는 많잖아’ 하고 자위하는 과정이 있었겠지요? 그러고는 ‘그래, 할 수 없지’ 또는 ‘그래, 괜찮아’ 하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명품가방과 관련된 사건’을 잊으려고 애썼겠지요?”
아내가 속마음이라도 들킨 냥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손가락으로 아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그게 바로 미봉책(彌縫策)이고, 눈가림이고, 덮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죠. 이런 끙끙거림도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줄이려는 노력 중 하나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처방법은 칼이나 못에 깊이 찔린 상처에 겨우 빨간 소독약이나 바르고 일회용 밴드 하나 붙이는 꼴이지요. 이렇게 하면 상처는 끝내 덧나기 마련입니다. 언제가 기회가 되면 ‘당신은 남들 다 들고 다니는 명품가방 하나 사주지 못하면서~’ 하며 더 큰 분노를 표출하게 되지요. 따라서 이런 방법은 상처를 감추고 방치하는 것이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처님. 옳으신 말씀입니다. 쫓기던 꿩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낙엽 속에 머리를 쳐 박고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듯, 많은 상처를 속으로 감춘 채 괜찮아지기만 기다리는 삶, 우리네 삶이 꼭 그렇지요.”
부처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본다면 첫 번째 과제를 마친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칭찬으로 들렸는지, 아내가 한껏 쳐졌던 어깨를 폈다. 
“그럼, 부처님 두 번째 과제는 무엇입니까?”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아내가 눈빛을 반짝였다. 
“그 이유야 뻔하지요. 내가 바라는 대로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내가 바라는 대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걸 욕망이라는 말로 바꿔도 되겠지요? 좋습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셨다면 두 번째 과제도 마친 것입니다.”
“그럼, 세 번째 과제는 무엇입니까?”
“그 욕망이 과연 정당(正當)한가를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아내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천천히 말씀하셨다. 
“앞서 보살님과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 만약 욕망을 성취했을 때 정말 바라는 대로 행복해진다면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 행복을 얻는 바른[正] 길이고,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當] 욕망을 추구해야겠지요. 하지만 욕망의 성취로 얻어지는 행복은 매우 불안정하고, 욕망을 추구하는 삶은 매우 고단하며 또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앞서 보살님과 살펴보았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보살님은 제가 앞서 드린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네. 그전 같으면 동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의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과제도 마친 것입니다.”
아내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부처님. 욕심내지 않고 살면 그것이 열반으로 가는 길이겠군요?”
부처님이 싱긋이 웃으셨다. 
“보살님은 스스로 ‘욕심내야지’ 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내지 말아야지’ 하면 욕심이 없어지던가요?”
아내가 멈칫했다. 부처님께서 아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앞서갈 것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묻고,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묻고 확인해야 한다고요? 무엇을요?”
“욕심이 왜 일어날까 묻고, 욕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내가 깜짝 놀라며 부처님께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부처님, 놀라운 말씀이십니다. 저는 왜 늘 욕심 속에서 허덕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요.”

 

성재헌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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