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침 발러/쏘옥, 쏙, 쏙,/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문풍지를/쏘옥, 쏙, 쏙,//아침에 햇빛이 반짝.”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쓴 동시이다. 문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올까 봐 문짝 주변을 종이로 발랐는데, 아이는 그 종이에 작은 구멍을 낸다. 아주 작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더 작은 구멍을 낸다. 그 구멍으로 바깥을 본다. 아이는 장에 가는 엄마를 보려고 한 것이지만, 그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은 반짝이는 아침의 햇빛이다.
하루가 바뀌고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바뀌어 새로운 시간을 맞을 때마다 나는 이 동시가 생각난다. 우리가 맞는 새로운 시간은 마치 작은 종이 구멍을 통해서 만나게 된, 반짝이는 아침의 햇살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새로운 시간에는 신선함만이 들어 있다. 거기에는 이미 이루어진 것은 없다. 설렘이 있을 뿐이다. 상품으로 치자면 그야말로 신상품인 셈이다. 곡식으로 치면 햇곡식인 셈이다.
새로운 시간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해를 맞게 되면 큼직하고 대담한 계획과 소소한 계획을 함께 세운다. 나는 대체로 큼직한 계획을 세울 때 법당을 찾아간다. 법당에 가서 혼자 가만히 앉아 이러저러하게 펼쳐진 생각을 한 군데로 가지런하게 모은다. 법당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보다 단단하게, 마치 움직이지 않는 네모의 돌처럼 마음을 먹기 위함이다. 이러한 나의 행동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래서 마음을 굳게 정해야 할 때면 절을 찾으셨다. 절에 가시기 전 며칠 동안에는 드시는 것을 가려서 하고, 적게 드시고, 몸을 깨끗하게 씻으시고, 묵언을 하신 후에야 가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새해를 맞으며 나는 새해에 내가 갖고 살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게’ 살겠노라고 작정을 했다. 이 내 결의의 문장은 김용택 시인의 시구에서 빌려온 것인데, 마을 뒷산의 능선처럼 마음씨가 온화하고 양순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또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만물과 다투지 않고, 물은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낮은 곳으로 위치한다. 그 물의 성품을 나도 닮고자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해 여름부터 제주도에 와서 살면서 자주 들르는 곳이 제주도 곳곳에 있는 오름이다. 제주도에는 이 오름이 360여 개 정도 있다. 이름도 참 각각이 고유하고 예쁘다. 제지기오름, 바굼지오름,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아부오름, 백약이오름, 돝오름, 거문오름, 큰사슴이오름, 물영아리오름 등등. 이 오름들은 대체로 완만한 외관을 갖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 선이 매우 부드럽다. 실제로 오름의 정상에 이르는 길도 아주 가파르지 않다. 나는 이 오름을 오르면서 내가 가꿔야 할 성품에 대해 생각해보곤 하는 것이다. 오름의 정상에는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다. 그야말로 시원하다. 오름의 이 탁 트인 이 시야도 우리가 갖출만한 것일 테다.
“시간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누어주시네/ 햇볕, 입술 같은 꽃, 바람 같은 새, 밥, 풀잎 같은 잠을// 나는 매일 아침 샘에 가 한 통의 물을 길어오네/ 물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내 앞에는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 갈림길과 건널목, 1월과 3월 혹은 9월 혹은 눈송이, 첫 번째, 분수와 광장, 거울/ 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는 만남/ 당신이라는 귀/ 당신이라는 열쇠”
이 시는 내가 쓴 ‘아침을 기리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맞는 새로운 시간에 대한 얘기다. 시간이 주어지는 데에는 차별이 없다. 이 시에서도 밝힌 것처럼 나는 물의 성품 가운데 다투지 않음과 겸손 외에도 잠잠한 수면의 평화와 물이 흘러갈 때 생겨나는 그 율동의 음악과 햇살을 받을 적에 반짝이는 그 미소와 깨끗한 맑음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또 다른 시에서 “(나를) 흐르는 물속에 암자의 풍경 소리 속에 밤의 달무리 속에 자라는 식물 속에 그날그날의 구름 속에 저 가랑비와 실바람 속에 당신의 감탄사 속에 넣어줘”라고 쓰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작은 암자의 풍경 소리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금씩 위로 자라나는, 푸른 혈관을 가진 식물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잘 감탄하고 잘 호응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법구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의 인과관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살고, 지금 우리가 맞는 이 새로운 시간에 의해 우리의 내일이 열린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살았으면 한다. 어쨌든 이 순간에도 새로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문태준(文泰俊)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애지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 제주불교방송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