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보통 사람들의 깨달음에 대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불자들은 깨달음도 그렇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 속에서 적용하는 것, 그러니까 실천하는 것은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욕심의 절제도 어렵습니다. 더욱이 스님들의 두타행 같은 수행은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두타(頭陀)행은 고행(苦行)인데, 부처님 당시 출가수행자들의 먹고 입고 거주하는 의식주(衣食住)의 원칙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잠깐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의(衣), 옷에 관한 것입니다. 분소의(糞掃衣)와 삼의지(三衣支)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분소의는 버려져 쓸모없게 된 천이나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어야 하는 것으로 요즘 표현으로는 누더기의 옷이지요. 삼의지는 상의(上衣)와 하의(下衣), 그리고 바깥에 입는 옷 등 세 가지 옷만을 소유하는 원칙입니다. 옷에 관한 이러한 가르침은 옷의 최소 쓰임새를 강조하는 수행입니다. 수행자들을 옷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추위를 피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두 번째가 식(食), 먹는 것에 관한 부분입니다. 다섯 가지 항목이 있는데 주로 탁발(托鉢)에 관한 내용입니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의 삶의 유지 방식은 탁발이었습니다. 오관게(五觀偈)에도 등장하지만, 수행자들에게 음식은 수행 생활을 해내기 위한 기본 체력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맛이나 배부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는 주(住), 사는 장소와 생활하는 장소에 관한 항목입니다. 주거에 관련된 내용은 여섯 가지 정도가 있는데, 주로 선정(禪定)을 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 것입니다. 소란하지 않고 조용한 곳,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체득할 수 있는 곳 등을 찾아 집에 대한 집착 없이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두타행은 출가수행자들에게는 일상생활의 의식주 전체에서 집착하고 탐내는 욕망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의 상징이었지요.
그러면 우리 재가불자들은 이러한 두타행의 모습과 정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면 어떨까요? 가끔 주위에서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밥 먹을 때도 옷 걱정, 어디에 앉을 때도 옷 걱정입니다. 옷이 사람을 위해 쓰이거나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옷을 지키는 웃지 못할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음식은 어떻습니까? 어리석은 중생들은 식탐으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먹고,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소화제 같은 약을 먹습니다. 코미디 같은 일이지요. 음식이 건강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음식으로 인해 병을 얻습니다. 또 골고루 나누어야 할 음식이 버려지는 사례들이 너무 많습니다. 깊이 반성해야 할 모습들입니다.
주거의 문제는 집이 사는 곳이 아닌, 재산의 큰 요소로 자리 잡은 현대인들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기에 적당한 장소로 집을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크고, 좀 더 넓은 집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평생을 일해도 필요한 곳에 집 한 채 얻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은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불자님께서 질문하신 것처럼 불교는 의식주의 절제를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마찬가지로 두타행은 일상생활의 기본 욕구를 다스려야 가능하지요. 의식주에 얽매이지 않고 또 거기에서 일어나는 번뇌에 흔들리지 않아야 수행이 될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이 우리를 어리석게 하고, 어리석은 삶은 곧 불행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불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두타행의 수행이 주로 출가수행자들에게 적용되는 가르침이지만, 재가불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만족할 줄 아는 무소유(無所有)의 정신과 소욕지족(少欲知足) 하는 삶은 우리에게도 언제나 적용될 수 있는 가르침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