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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백성호의 국수가게

평생 쫓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비법

  • 입력 2021.02.01

한 그릇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의 공부량은 살인적입니다. 오죽하면 “하버드대 졸업 후에는 인생이 아주 쉬워진다(After Havard, life is so easy)”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매주 몇권의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발표를 하고, 시험까지 치러야 합니다. 시험 기간에는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면서 18시간 이상 공부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버드대에서는 공부만 잘 한다고 ‘최고’가 되지 않습니다. 클럽 활동이나 봉사 활동까지 아주 활발하게 하면서, 공부까지 잘 해야 우등생 취급을 해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쟤는 공부 좀 한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살인적인 일정의 공부까지 소화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 과외 활동까지 잘 할 수가 있을까요?

 

 

 

 

 

두 그릇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교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학우들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그는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사감으로 일했습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숙사에는 많은 학생이 생활합니다. 사감은 이들 학생들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궁금했습니다. “이 기숙사에도 우등생이 있다. 걔들은 공부도 잘 하고, 클럽 활동도 잘 한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는 거지?” 평소에는 설렁설렁 노는 것 같은데, 성적이 기가 막히게 좋은 학생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는 그 친구들의 공부하는 방식을 아주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공부의 비법’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비밀이었습니다. 비단 공부뿐만 아닙니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일처리 비법’이기도 했습니다. 

 

 

  

세 그릇

 

인터뷰를 하던 최재천 교수는 “아~, 이건 정말 맨입으로는 안 되는데”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만큼 ‘비법 중의 비법’인 겁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직장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에게도, 가정에서 살림하는 주부에게도 말입니다. 누구나 일을 하게 마련이니까요. 아무리 많은 일이 쏟아지고, 또 그 일에 쫓기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거뜬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궁금하더군요. “얼른 좀 알려주세요”했더니 최 교수는 그 비법을 귀띔해줬습니다. 다름 아닌 ‘예정보다 10일 먼저 해치우기’입니다. 다시 말해 일정을 열흘 앞당겨서 일을 해나가는 겁니다. 읽어야 하는 책, 써야 하는 에세이, 발표 준비 등을 모두 10일 앞서서 처리하는 겁니다. 

 

최 교수는 “물론 처음에는 힘이 든다. 열흘 분량의 진도를 미리 빼야 하니까. 예전의 습관 때문에 잠깐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진도를 미리 빼서 열흘 먼저 일을 해치우기 시작하면 생활의 사이클이 달라진다. 그때부터 새로운 삶이 펼쳐지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네 그릇

 

실제 제 삶에 ‘10일 먼저 해치우기’를 적용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우선 마감에 쫓기며 일 할 때 받는 스트레스 강도가 100이라면, 이건 20~3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마감은 아직 열흘이나 남아 있으니까요. 훨씬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일을 할 수 있더군요. 

 

그것뿐만 아닙니다. 열흘 먼저 일을 해 놓았으니, 남아 있는 기간 동안 계속 다듬을 수 있게 됩니다. 커피를 마시다가도,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거든요. 그럼 이건 이렇게 고칠까, 저건 저렇게 고칠까 하면서 자꾸 다듬게 됩니다. 그럴수록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가고, 결과물은 더 정교해지더군요. 

 

무엇보다 큰 효과는 역시 ‘심리적 여유’였습니다. 그게 스트레스의 강도와 직결되니까요. 결국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도, 훨씬 더 적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군요. 인터뷰를 할 당시 최 교수의 책상에는 여기저기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습니다. 청탁받은 각종 원고와 해야할 일들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열흘 먼저 살고 있었으니까요. 

 

 

 

다섯 그릇

 

저는 ‘10일 먼저 해치우기’라는 일처리 비법을 곰곰이 짚어봤습니다. 거기에는 ‘생각의 이치’가 담겨 있었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습니다. 결국 내 마음의 밭에 생각의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감 1시간 전에 쫓겨서 심은 씨앗과 열흘 먼저 심은 씨앗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달리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이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감에 쫓겨서 1시간 전에 심은 씨앗은 싹이 트자마자 ‘싹둑’ 잘라야 합니다. 거기에는 기다리는 과정도, 다듬는 과정도, 익어가는 과정도 모두 생략해야 합니다.  

 

열흘 먼저 생각의 씨앗을 심어두면 어떻게 될까요. 싹이 일찍 틉니다. 그럼 계속 깎고, 다듬을 수 있습니다. 열흘간 아이디어의 싹이 계속 올라오니까요. 결국 마감이 가까울수록 결과물은 점점 ‘완성’에 가까워집니다. ‘악성(樂聖)’으로 추앙받는 작곡가 베토벤도 그랬습니다. 악상이 떠오르면 스케치를 먼저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수년에 걸쳐서 깎고 다듬었습니다. 실제 그가 쓴 악보는 하도 고쳐 쓰느라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늘 쫓기면서 살았다면 이번에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해법은 ‘10일 먼저 해치우기’입니다. 그걸 통해 남들보다 10일 먼저 살아보기입니다. 혹시 아나요? 이렇게 말하게 될지 말입니다. “10일 후에는 인생이 아주 쉬워지더라(After 10days, life is so easy).”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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