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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문태준의 세상사는 이야기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고

  • 입력 2021.02.01
 스페인의 시인 가운데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라는 시인이 있다. 언제가 나는 그가 쓴 시 ‘카스타에게’를 읽고 노트에 옮겨 적어 둔 적이 있다. 그 시는 이렇다. 

 

 

네 한숨은 꽃잎의 한숨
네 목소리는 백조의 노래
네 눈빛은 태양의 빛남
네 살결은 장미의 살빛
사랑을 잃은 내 마음에
생명과 희망을 던져준 너
사막에 자라는 꽃송이 같이
내 생명의 광야에 살고 있는 너

 

비교적 짧은 시이지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 사람의 숨결과 목소리와 눈빛과 살결을 아름답고 강렬하고 부드럽고 고운 것들에 빗대고 있다. 심지어 그 한 사람은 자신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었으며, ‘나’라는 존재의 넓고 막막한 땅에 꽃처럼 살고 있다고 멋지게 썼다. 

이 시를 읽으면 우리의 내면에 늘 사랑의 감정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의 밭에 심어야 할 씨앗은 다름이 아닌 사랑의 씨앗이었으면 어떨까 싶다. 이 사랑의 씨앗은 사생육도(四生六道)의 뭇생명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이 모두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사랑하듯이 무한한 자비심을 베푸려는 마음이다. 나와 다른 존재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존재로부터 내가 도움을 받고 있으며, 또한 내가 다른 존재들에게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밭에 심어야 할 또 다른 씨앗은 무엇일까. 나는 정진의 씨앗을 말하고 싶다. ‘우보만리(牛步萬里)’라는 말이 있다. 우직한 소의 성품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 리를 간다는 뜻이다. 자신을 신뢰하면서 뚜벅뚜벅 미래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 이것을 씨앗으로 삼았으면 한다. 묵묵하게, 의지를 잃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너무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살았으면 한다. 이렇게 소의 걸음으로 걸어가다 보면 행복과 기쁨이라는 빛의 땅에 우리는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숫타니파타’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에 좋은 결과를 바란다면 인간으로서 짊어진 삶의 무게를 받아들여라. 참고 견디어 살다 보면 언젠가는 기쁜 일이 생긴다.”라고 가르치신 뜻도 인내하며 정진하라는 것에 있을 것이다. ‘화엄경’에서도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수행하라”고 이르고 있다. 부지런히 정진하는 일은 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돌을 뚫는 일에 비유되기도 한다. 

경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떤 사람이 보석을 갖고 바다를 건너다가 보석을 바닷물 속에 빠뜨려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목두(木斗), 즉 곡식이나 액체의 분량을 재는 데 쓰이는 그릇인 말을 갖고 바다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바다의 신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 “언제 바닷물의 바닥을 낸다는 것이오?” 그 사람이 바다의 신에게 대답했다. “죽고 사는 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어요.” 바다의 신은 그 사람의 뜻을 알고 보석을 내어 돌려주었다. 경전에서는 이 이야기를 들어서 정진에 대해 강조해 가르치고 있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는 그림이 있다. 동지 무렵에 81송이의 매화꽃 밑그림을 미리 그려놓고 하루에 한 송이씩 붉은 색을 칠해 나가는 방식인데, 그렇게 81일이 지나면 매화꽃 전체 그림이 완성될 뿐만 아니라 그 때에 창문을 열면 매화가 피고 봄이 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옛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진 그림이라고 하겠다. 엄동설한을 견뎌내는 방식으로 꽃을 그렸다는 것이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고, 또한 매일매일 조금씩 한 송이의 매화꽃 그림을 채색하는 그 마음은 다름 아닌 정진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마음에 좋은 씨앗을 심는 이유는 모든 것이 마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다. 머리 위에서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이라고 했다. 칸트는 우주적인 존재에 대한 사유와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았던 것이다. 봄에 씨앗을 파종하면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게 된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얻는다. 


새가 왔다
탄생하려고 빛을 가지고.
그 모든 지저귐으로부터
물은 태어난다.
공기를 풀어놓은 물과 빛 사이에서
이제 봄이 새로 열리고,
씨앗은 스스로가 자라는 걸 안다
화관(花冠)에서 뿌리는 모양을 갖추고,
마침내 꽃가루의 눈썹은 열린다.
이 모든 게 푸른 가지에 앉는
티 없는 한 마리 새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 ‘봄’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태어났고, 남미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인이었다. 이 시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심어두었던 씨앗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뿌리의 모양새를 갖추고, 눈을 뜨면서 봄의 시간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노래한다. 우리도 마음에 심을 씨앗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문태준(文泰俊)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애지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 제주불교방송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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