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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
한 그릇
독일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숙소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숲 속으로 난 도로를 몇 시간째 달렸습니다. 동행하던 사람은 “지금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기업이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 IBM 등이다. 그런 회사에서 직원 세미나를 할 때 선택하는 숙소다. 가장 고급스러운 숙소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은근, 궁금해지더군요. ‘얼마나 멋지고 화려한 곳이면 그런 초일류 기업에서 회사의 세미나 숙소로 정하는 걸까?’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런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수백 년 전에 지은 듯한 커다란 저택이 한 채 있었습니다. 저택 주위는 온통 나무와 숲뿐이었습니다. ‘내부는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할까?’ 안으로 들어가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이었습니다. 방은 아주 심플했습니다. 1인용 작은 침대와 작은 책상, 간단한 옷걸이. 그게 전부였습니다. 커다란 벽걸이 TV요? 아니요, TV가 아예 없었습니다. 전화기도 없고, 인터넷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외부와 연결이 거의 차단됐습니다.
숙소 카운터에 갔더니 “숙박자는 핸드폰을 모두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이 숙소의 운영 콘셉트였습니다. 그렇게 다 맡기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순식간에, 심심해졌습니다. 방안에서 별로 할 게 없더군요.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방과 벽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더군요. 그냥 흰 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전등 하나가 천장에 대롱대롱 달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 그릇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숙소”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와서 보니 제 예상과 딴판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게 왜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숙소일까?’ 그 이유를 찬찬히 짚어봤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저는 “아~!”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전날 밤, 저는 처음에 아주 무료했습니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일에 대한 사색과 명상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건 숙소의 작고 소박한 방이 저에게 소리 없이 건네는 선물이었습니다.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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