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카와 슌타로라는 시인이 있다. 이 시인은 1993년 도쿄 출생이다. 일본에서는 국민시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주제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이 노시인의 시와 산문을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신선하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소박한 감동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시들이 있다. ‘나 태어났어요’에서 시인은 “나 태어났어요/ 드디어 여기 왔어요/ 눈은 아직 안 보이고/ 귀도 들리지 않지만/ 난 알아요/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내가 웃는 것을 내가 우는 것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이라고 노래했다. 갓난아기의 음성이 가만가만히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곳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우리 모두가 그 환희를 기억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 한 편의 시 ‘미래의아이’에도 비슷한 생각이 담겨 있다. “오늘은어제의미래/내일은오늘보는꿈/누군가푸른하늘을약속하고있다/초록빛들판도약속하고있다/이제부터태어날노래에맞춰서”라고 썼다.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채 쓴 이 시의 시구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잔뜩 묻어 있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곧 푸른 하늘이요, 초록빛 들판이요, 머잖아 태어날 노래라는 의미일 테다. 미래의 시간에 대한 참으로 부드럽고 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문득 생각한 것이지만, 내가 부정적인 생각에 꽤 많이 휩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곧 일어날 미래의 일에 대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어둡게 전망하고, 어떤 결과를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밝은 날의 장면들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암울한 날들의 장면들도 많았기 때문일 테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잡아함 41권 1136경 ‘월유경(月喩經)’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에 달을 비유로 들어서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음식을 얻기 위해 재가의 집에 가거든 마땅히 달과 같은 얼굴을 하고 가라. 마치 처음 출가한 신참자처럼 수줍고 부드러우며 겸손하게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가라. 또한 훌륭한 장정이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고 높은 산을 오를 때처럼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을 진중하게 하라.”
이 가르침을 읽으면서 나는 평소의 내 얼굴빛과 표정에 대해 생각해보게도 되었다. 내 얼굴이 구겨진 종이처럼 너무 자주 일그러져 있거나, 화냄의 불길에 휩싸여 있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수줍고 부드러운 얼굴은 무엇일까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그런 얼굴이란 아마도 내가 최근에 산길에서 본 노란 복수초와도 같은 얼굴이요, 또 돌담 아래서 피어나기 시작한 수선화꽃 같은 얼굴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은 내가 맞을 미래의 시간에 더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긍정적인 내심(內心)으로부터 맑은 샘물처럼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실로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다.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극도로 염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얼굴이 환하게 활짝 펴질 날이 드물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구실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도 내가 만든 것이다. 스트레스는 알고 보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유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예를 들면 바닷가를 산책할 때, ‘오늘은 바다가 잠잠하다’, ‘물질 나갔던 해녀가 헤엄쳐 돌아온다’처럼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감정을 덧씌우지 않고 말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에 묶이지 않으면 어두운 언어를 구사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내 얼굴빛도 화사해질 것이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말씀이지만, 읽을 때마다 나를 꾸짖게 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에 늘 지니고 살 일이다. 마치 넓고 먼 곳을 멀리 바라보듯이 시간을 길게 바라보면서 기쁨과 웃음을 퍼뜨리고, 내일의 꿈을 퍼뜨리고, 유연함과 상냥함을 퍼뜨리고, 사랑의 노래를 퍼뜨릴 일이다. 그렇게 하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푸른 하늘과 초록빛 들판과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달과 같은 얼굴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공덕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태준(文泰俊)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애지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 제주불교방송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