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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길은 많다

  • 입력 2021.05.01

원각경 위덕자재보살장 말씀에서 

 

 아내가 고개를 쭉 내밀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그럼 저희도 수행자(修行者)가 되어야 하는 건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갖가지 복잡한 생각과 불쾌한 감정과 경직된 몸짓, 그리고 그 결과가 초래하는 더 복잡하고 더 불쾌하고 더 경직된 몸짓, 그런 악순환의 삶을 지속할 것인가 그런 삶과 단절을 고할 것인가는 보살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아내가 잠시 침묵한 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제부터 수행자가 되어야겠군요.”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수행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니, 보살님은 오늘부터 저의 벗입니다. 저도 보살님에게 좋은 벗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벗이라 불러준 것이 꽤나 좋았는지 아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부처님. 그럼 제가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먼저, 변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변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요?”
“네. 당신의 마음마당이 깨끗하다면 굳이 수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 그 마당의 풍경이 너저분하다면 청소를 해야겠지요. 그럴 때, 첫걸음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청소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부처님. 지저분한 마당처럼 마음의 상태가 엉망인데도 그냥 손 놓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나는 어쩔 수 없나봐’ 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누가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었어’ 하고 분노하며 원망의 대상을 찾는 경우도 있고, ‘그래 난 본래 이렇게 산다. 어쩔래.’ 하며 세상과 맞서고 뻗대는 경우도 있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맞습니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청소기나 걸레를 찾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청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저앉아버리거나 원망하거나 악다구니를 쓰며 더 어지럽힌다면 그의 마당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 수행자라면 ‘그래 얼마든지 깨끗이 청소할 수 있어’ 하고 먼저 다부지게 마음먹어야 합니다.” 
아내가 눈빛을 반짝이며 조막손을 쥐었다.
“저는 청소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부처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좋습니다. 그 청소방법을 두고 저는 ‘도(道)’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니 수행자는 곧 도인(道人)이고, 다른 말로는 마음을 청소하는 사람이 되겠지요. 마음을 청소하는 방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아내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수없이 많다고요? 저는 그 도라는 것이 남들은 알지 못하고 부처님만 아는 그런 비결이 아닐까 짐작했는데요?”
부처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방법은 많습니다. 비유를 들어 얘기해 볼까요? 대구에 사는 사람이 서울로 오는 방법이 몇 가지나 될까요?”
“많지요. 기차를 타도 되고, 비행기를 타도 되고, 직접 자동차를 몰고 와도 되지요. 이도 저도 형편이 안 되면 까짓것 걸어서 가도 되지요. 시간이 좀 걸려서 탈이긴 하지만.”
부처님이 깔깔대고 웃으셨다. 
“맞습니다. 그럼 직접 자동차를 몰고 서울시청까지 온다면 그 길이 몇 가지나 될까요?”
“그 길도 많지요. 뭐 경부고속도를 타고 강남을 거쳐도 되고, 청주쯤에서 빠져 동서울 톨게이트로 들어와도 되고, 아님 빙 돌아 광명을 거쳐 구로 쪽으로 들어가도 되고, 까짓것 바로 가건 모로 가건 서울만 가면 되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의 마당을 청소하는 것도 그와 비슷합니다. 그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방법들의 공통된 특성을 따져보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보살님을 위해 그 세 가지 방법을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보살님도 부디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겠다’며 정성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에 감동했는지 아내가 공손히 합장하였다.
“네, 부처님. 마음을 활짝 열어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깊이 마음에 새기고, 항상 숙고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마음을 청소하는 첫 번째 방법은 마음의 고요한 바탕에 집중하는 사마타(奢摩他, samatha)이고, 두 번째 방법은 모든 마음작용이 환상(幻想)처럼 자성(自性)이 없음을 관찰하는 삼마발제(三摩鉢提, samapatti)이고, 세 번째 방법은 사마타 수행에 의해 터득된 고요한 마음에도 집착하지 않고, 삼마발제 수행에 의해 터득된 지혜로운 마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텅 빈 종에서 울린 소리가 어디에도 걸림 없이 널리 퍼지듯, 그 마음이 번뇌에도 걸리지 않고 열반에도 걸리지 않고 모든 현상 온 세계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나(禪那, dhyana)라고 합니다.”
아내가 갑자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기미를 알아차린 부처님께서 말씀을 멈추셨다. 
“왜요? 제가 드린 말씀에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아내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께서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저는 여태 마음공부에는 관심조차 가져본 적 없고, 또 부처님과 오랜 기간 교류하며 그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방금 일러주신 말씀은 매우 낯선 이야기들입니다. 사용하시는 단어도 생소하고, 논조의 전개도 제가 이해하기에는 매우 숨 가쁜 속도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어여삐 여겨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천천히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처님께서 은은한 미소를 보이셨다. 
“미안합니다, 보살님. 제가 급했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비유를 들어 천천히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친절함에 감동했는지, 아내가 다시 공손히 합장을 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성재헌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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