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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문태준의 세상사는 이야기

참 좋은 사람

  • 입력 2021.05.01
나는 가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는다. 이 음악을 요요마의 첼로 연주로 듣곤 한다. 요요마는 이 모음곡의 연주로 인해 세계적인 명성의 연주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요요마가 이 여섯 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 때였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이 모음곡을 “우주의 광희와 시상을 분출하는 곡”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아무튼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곡이 아닐 수 없다. 요요마는 이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첼리스트이다. 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첼리스트 요요마. 뉴욕으로 이주해 다섯 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했고, 케네디 대통령 앞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요요마의 소식을 외신을 통해 접했다.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의 버크셔 커뮤니티 칼리지 체육관에서 요요마가 첼로를 연주했다는 소식이었다. 요요마는 이곳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1번과 다른 한 곡을 연주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러 왔다가 직접 챙겨온 첼로로 연주를 한 것이었다. 무대라고 할 수도 없을 만한 곳에서, 체육관 한 구석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백신 접종을 하러 온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작은 연주회를 연 것이었다. 

한 시민은 요요마의 음악을 듣는 순간 “건물 전체가 얼마나 평화로워졌는지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라며 감동했다고 한다. 평상복을 입고 첼로를 연주하는, 사진 속 요요마는 평범한 시민이요, 인자한 아저씨요, 선한 마음의 소유자 그 자체였다.

사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이런 선한 마음을 사용하는 우리 이웃들의 미담은 수시로 들려온다. 불교 경전 ‘잡보장경’에서는 재산이 없더라도 타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가 있다고 했다. 화색을 띤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 자애로운 눈길로 사람을 대하는 것,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것,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몸을 사용해 봉사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것, 자리를 양보하는 것, 묵을 방을 제공하는 것 등이 그것이라고 했다. 

이 무재칠시(無財七施) 가운데 요요마가 실천한 것은 심시(心施), 즉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이해하고 마음을 쓰는 것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소한 실천이 세상을 밝고 훈훈하게 만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 1월에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노숙인에게 자신의 점퍼와 장갑을 벗어주는 장면이 한 일간지에 실려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고 몹시 추운 날이었다. 한 노신사가 서울역 광장에서 자신에게 다가온 노숙인에게 입고 있던 방한 점퍼와 장갑을 벗어주고, 또 돈 5만원을 쥐어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장면이 한 신문사 기자의 카메라에 우연히 잡혔다. 그 노숙인은 노신사에게 ‘너무 추우니 커피 한잔 사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후한 대접을 받고선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서 나는 마치 내가 따뜻한 외투를 하나 새로이 입은 것 같은 온기를 느꼈다. 비록 나 혼자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일 테다.

곽재구 시인의 시 가운데 ‘채송화’라는 시가 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웃고 있군요
샌들을 벗어 드릴 테니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세요

짧은 시이지만 감동적인 시이다. 이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본래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모두 선의를 갖고 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웃는 사람이다. 다만, 이 본래의 선의를 잘 가꾸었느냐, 잘 활용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등록’에는 담장 선사와 도둑 얘기가 실려 있다. 담장 선사는 당나라 때 마조 선사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밤에 암자에 도둑이 들었다. 그때에 도둑을 발견한 담장 선사가 도둑에게 말했다. “누추한 암자까지 찾아오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혹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마음대로 가져가십시오.” 도둑은 담장 선사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아서 절을 올리고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유마경’에는 이런 가르침도 있다. “중생에게 덕을 베풀되 되갚음을 바라지 말고, 일체중생을 대신해 내가 고통을 받으며, 지은 공덕을 그들에게 회향하라.” 대가 없이, 보답 없이 보시행과 같은 선의를 베풀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대가를 바라고 공덕을 베풀다보면 본래의 순수한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베풀고 난 뒤에는 베풀었다는 관념을 두지 말라는 것일 테다. 무주상보시, 즉 집착 없이 베풀라고 이르시는 것일 테다.  

선한 마음의 사용은 결국 선한 마음의 화답을 받게 된다. 봄볕 같은 마음의 사용에 대해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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