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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원명스님의 마음산책

밀린다왕문경(5)

  • 입력 2021.05.01

밀린다팡하 Milindapanha, 나가세나비구경 

 

 

우리 불자들이나 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윤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삶은 이렇게 지속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윤회(輪廻, samsara, 삼사라)’는 ‘함께’라는 뜻의 sam과 ‘달리다’, ‘흐르다’, ‘건너다’, ‘빨리 움직이다’는 뜻을 가진 sara(사라)가 합쳐진 말이고, ‘카르마(Karma)’는 ‘일’, ‘행동’, ‘행위’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카르마 및 윤회신앙은 자연현상이 법칙적으로 생기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행위 사실들 역시 법칙적으로 승계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행위주체의 존재, 그리고 자연법과 도덕법의 구조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윤회설에 근거하여 우리는 불교를 가장 세련된 형태의 도덕종교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윤회란 무엇인가를 밀린다왕문경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은 물었다. 
“나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원인 즉 인(因)과 연(緣)이 정지하므로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한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어 창고에 채워 둔 후 얼마 동안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거나 하지 않고 저장되어 있는 곡식을 먹거나 다른 물품과 바꾸고 또 필요할 때 쓰기도 하며 살아간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 농부는 이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차 있지 않음을 알고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응당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그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창고를 채우는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대 말씀과 꼭 같습니다.”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사람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오온(五蘊)이란 인간과 사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존재요소로서 색(色: 육체), 수(受: 감수작용, 감정), 상(想: 대상 인식), 행(行: 정신작용과 특성), 식(識: 眼耳鼻舌身意)을 뜻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의 실체적 본질성에 대한 물음을 오온론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부정적인 답을 얻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그 어떤 부분이나 부분들의 총합도 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온론은 비아설(非我說)이라는 형태로 무아설에 접근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 존재의 통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초월적 존재계기의 요청이 없는 한 오온론은 비아설 또는 무아설로 해석하게 됩니다.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Nagasena)스님에게 나가세나가 무엇인가, 즉 나가세나라는 인격적 정체성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밀린다왕은 나가세나스님의 인격 주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신체의 구성부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오온론을 통한 존재 분석을 시도하게 되고, 그때마다 나가세나스님의 부정적인 대답에 직면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얻은 공통된 결과는 여러 부분들에 대한 이름들과 공통적인 개념, 그리고 일상적인 표현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형성되지만 실제로 그것에 대한 인격적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오온론은 어떤 것의 존재가 실제로 무수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영원불변하는 실체 존재와 같은 것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밀린다왕문경을 통하여 무아설과 윤회 주체성을 정당화 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 보겠습니다.
 
왕은 물었다. 
‟나가세나 존자여, 무엇이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명칭(名, 인간의 정신 활동)과 형태(色, 물질과 육체)가 바꿔 태어납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이나 악의 행위(業 카르마)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서 바꿔 태어납니다.” 
‟존자여, 만일 현재의 명칭과 형태 그대로 저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대답했다. 
‟만일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실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한, 악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망고나무 과일을 훔쳤다고 합시다. 
망고나무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서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망고를 따 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와 제가 따 온 망고와는 다릅니다. 
저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고 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나이를 처벌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럽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처음 망고는 현재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망고에 대해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악의 행위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명스님 (조계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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