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곰팡이 핀 피자 조각을 버리듯

  • 입력 2021.05.01

원각경 위덕자재보살장 말씀에서 

 

 부처님께서 천천히 찻잔을 들고 그 향기를 음미하시다가 한 말씀 하셨다. 
“마음을 청소한다는 게 보살님에게는 매우 낯선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알면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고, 또 복잡할 것도 없습니다. 보살님이 평소 집 안팎을 정리하고 쓸고 닦는 청소랑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아내도 따라 차를 홀짝이다가 이내 여쭈었다. 
“부처님, 어떻게 수행(修行)해야 합니까?”


“보살님, 오늘 이 만남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셨을 때에 집안이 잘 정돈되어 있고 또 어지럽혀진 물건도 더러운 때나 먼지나 쓰레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그럴 때도 보살님은 청소를 하십니까?” 
아내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멀쩡한데 뭐 하려고 합니까?”
“그렇지요. 만약 멀쩡한데도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보살님은 그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아내가 피식 웃었다. 
“청소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그건 강박증이지요. 그게 아니면 자기가 그어놓은 선을 벗어나는 꼴을 못 보는 결벽증이거나요.”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보살님이 묻고 계신 수행법(修行法)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보살님 마음에 큰 아픔이나 혼란, 큰 불편함이나 불안이 없다면 보살님은 굳이 그 마음을 청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입을 가리고 호호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죠?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전 철학(哲學)에 심취하는 성향도 아니고, 이상(理想)을 추구하며 매진하는 성향도 아닙니다.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부처님을 뵙고 저에게 해주신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또 감동하고 있지만 사실 부처님처럼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부처님이 생뚱맞다는 듯 눈을 크게 떠보였다.  
“저처럼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요? 제가 어떤데요?”
아내가 눈길을 돌리고 머뭇거리다가 얼버무리듯 말했다.
“뭐… 최고의 마스터(master), 극강의 히어로(hero),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로 넘사벽?”  
아내의 솔직함과 장난기에 남편도 부처님도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웃다가 부처님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보살님이 수행에 관한 제 이야기를 듣고 혹시라도 멀쩡한 자신을 다그치는 과오를 범할까 염려했는데, 눈치를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아내가 싱긋이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필요하다 싶을 때 제 마음을 청소하겠습니다. 부처님, 사마타(奢摩他, samatha)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사마타 입니까?” 

부처님께서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더니 허리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지그시 눈을 감으셨다. 시간이 멈춘 듯, 미동도 없는 그 모습에 신비한 위엄이 가득했다. 그런 부처님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에 경외감이 감돌았다. 그렇게 제법 한참의 시간이 말없이 흘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천천히 그 눈을 뜨셨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그 눈빛은 너무나 고요하고 그윽하였다. 그 아찔함에 아내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런 아내에게 부처님이 나직이 물으셨다. 
“아시겠습니까?”
“네? 뭘요?”
“이것이 사마타입니다.”
“그것이 사마타라구요? 전 도무지 뭐가 뭔지 모겠습니다, 부처님.”
“보살님, 제가 조금 전에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던가요?”
“아니요.”
“그럼 어떻게 보이던가요?”
“어떤 감정도 생각도 없는 분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광활한 벌판에 홀로 우뚝 선 고목나무랄까….”

부처님께서 자신을 다그친다고 느꼈는지 아내의 말꼬리가 약간 흔들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내를 다독이려는 듯 부처님이 툭 한마디 던지셨다. 
“표현이 멋들어집니다. 철학(哲學)에는 심취하지 않으면서 문학(文學)에는 꽤나 심취하시는군요.”
부처님의 농담이 싫지 않았는지 아내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자, 그럼 설명해 볼까요? 조금 전에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집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지요?”
“네.”
“식탁 뒤쪽에서 사흘 전에 먹다 남긴 피자 한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벌써 곰팡이까지 슬었네요. 보살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장 버리지요.”
“그 피자를 깨끗이 닦지 않고요?”
“어휴, 아무리 애써봐야 이미 악취만 더할 쓰레기인데요.”
“돈까지 지불하고 산 것인데, 아깝지 않을까요?”
“아깝기는요? 두면 둘수록 온 집을 더 더럽힐 뿐입니다.”
“그럼 집을 깨끗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당장 버려야죠.”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그게 사마타입니다. 비유하자면 집은 보살님의 마음과 같고, 피자조각은 보살님의 마음속에 가득한 온갖 상념과 감정들 중 하나와 같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곰팡이가 잔뜩 핀 냄새나는 피자조각을 발견하면 얼른 내다버리듯 자신의 마음에서 괴로움과 불편함을 야기하는 감정이나 생각을 발견하면 얼른 내다버리는 것, 그것이 사마타입니다.”
아내가 깜짝 놀란 듯 멍한 눈길로 부처님을 바라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처님이 말씀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보살님, 왜요? 제가 뭘 잘못 말씀드렸나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내가 고개를 숙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부처님. 마치 제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하시는 말씀 같아 놀랐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부처님. 결국 냄새나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얼른 버리기만 하면 되는데, 이 간단한 것을 저는 왜 여태 몰랐을까요? 불쾌한 줄 알면서도, 나에게도 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저런 감정에 사로잡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끝내 놓지를 못했고 기회만 생기면 다시 꺼내 일삼았으니 …. 그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바심내면서 그게 잘하는 짓이라 여겼으니 …. 결국 전 곰팡이가 잔뜩 슬어 문드러져가는 피자조각 앞에 쪼그려 앉아 그 썩은 피자조각을 하염없이 뒤적거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너무 부끄럽네요.”
부처님께서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셨다.
“매번 놀라지만, 보살님은 이해력이 참 빠르십니다.” 


 

성재헌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