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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그땐 그랬을 뿐입니다

  • 입력 2021.06.01

원각경 위덕자재보살장 말씀에서 

 

 부처님께서 재빠른 이해력과 열린 감성을 칭찬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아내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걱정스러우셨는지, 부처님께서 말씀을 돌리셨다. 
“보살님, 차 식습니다. 얼른 한 잔 드셔요.” 
아내는 부처님의 권유에 못 이겨 겨우 차를 한 모금 넘겼다. 아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 축축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처님, 제가 참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살았습니다.”


긴 한숨을 내뱉는 것이 곧 눈물이라도 뚝 떨어뜨릴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에도 착잡함이 가득했다. 
부처님께서 따스한 미소를 보이며 말씀하셨다.
“조금 전 보살님께서 어떻게 수행하면 되냐고 물으셨지요?”
“네.”
“바로 그렇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행의 첫걸음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탐욕, 자신의 분노, 자신의 어리석음, 자신의 교만, 자신의 편견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수행의 첫걸음입니다. 그 첫걸음에서는 누구나 큰 부끄러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지요. 만약 누군가 이런 큰 부끄러움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정과 지혜를 논하고, 깨달음과 열반을 논한다면 그 사람은 사실 제대로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수행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크게 뉘우칠 때 비로소 참다운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격려에도 아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처님께서 음성을 높이셨다.
“과거에 했던 바보 같은 짓에 대한 오늘의 후회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회에 사로잡힌 오늘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그에게 과연 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하는 자책에 빠지는 것은 과거에 저지른 바보 같은 짓보다 더 바보 같은 짓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아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후회와 자책은 짧고 강렬할수록 좋습니다. 오래 지속되면 내일로 나아가는 발목을 붙잡아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만들지요. 애인 잃고 골방에 틀어박힌 사춘기 소녀처럼 그렇게 우중충한 표정 지을 것 없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가 찾아와 마당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 얼른 문고리를 풀고 방문을 열어야지요.” 
부처님의 비유가 재밌었는지 아내가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자꾸 후회스럽네요. 그러게요, 부처님. 이렇게 소용없는 후회만 반복하는 제 자신이 또 한심스럽네요.”
부처님께서 더욱 활기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후회 다음에 할 일은 후회의 반복도 아니고, 후회만 반복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도 아닙니다. 지금부터 보살님이 해야 할 일은 ‘왜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그 까닭을 밝혀내는 일입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묻겠습니다. 제 이야기에 집중하고 곧장 대답해 보셔요.” 
아내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부처님.”
“자, 보살님이 새 옷을 한 벌 장만했는데 옷장을 열어보니 옷이 꽉 차 넣어둘 공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옷을 보관할 다른 공간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럴 때 보살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만에 옷들을 몽땅 꺼내서 낡고 해진 옷들은 버리고 쓸 만한 것들만 골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새 옷을 걸어둘 공간이 나오지요.”
“좋습니다. 그런데 새 옷을 둘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면서도 헌 옷들을 뒤적거리기만 하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왜 그럴까요?”
“아까워서 그러겠지요. 지금이야 헌 옷이지만 처음엔 그것도 새 옷이었고, 또 그땐 꽤나 비싼 값을 치렀거든요.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옷장을 열었더니 처녀 시절 백화점에서 샀던 비싼 옷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간만에 꺼내 입어보았더니 배가 나와서 단추도 채워지지 않더군요.”
부처님께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듯 눈을 반짝이셨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내가 싱긋이 웃었다. 
“다시 옷장에 넣었습니다. 살만 빼면 다시 입을 수 있을 것도 같고…”
“보살님은 자신이 처녀시절 몸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내가 피식 웃었다. 
“아니요, 그냥 희망사항이죠.”
부처님이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웃으셨다. 
“바로 그겁니다. 자, 그럼. 묻겠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대답해 보셔요. 보살님 옷장이 넉넉해서 그 옷을 그냥 걸어두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면 그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살님 옷장에 여유 공간이 전혀 없어 짜증스럽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럴 때, 처녀시절에 비싼 값을 치루고 산 그 예쁜 옷은 보물일까요, 쓰레기일까요?”
“사실 필요도 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쓰레기이지요.”
“쓰레기는 버려야 합니까, 쌓아두어야 합니까?”
“버려야지요.”
“그걸 아시면서 왜 버리질 못하죠?”
“아까워서요.”
“보살님은 보물을 아낍니까, 쓰레기를 아낍니까?”
“보물을 아끼지 쓰레기를 아끼는 사람이 누가 있답니까?”
부처님이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여기 있지요. 보살님이 그 쓰레기를 아끼는 사람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그 옷이 보물인지 쓰레기인지를 묻자 스스로 쓰레기라고 대답하셨지요. 그런데 그 옷이 아깝다 하니, 쓰레기를 아끼는 사람이 아니면 누굽니까?” 
아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네요. 제가 바로 쓰레기를 아끼는 사람이네요.”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옷이 아까워 버리지를 못한다면 보살님은 과거에 집착하고 기억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현재를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때 보물이었다고 지금도 보물인 것은 아닙니다. 보살님이 아까워하는 그 낡은 옷은 과거의 보물이지 현재의 보물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현재 쓰레기 취급을 한다고 과거부터 본래 쓰레기였다는 말도 아닙니다.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중생들의 큰 병 중 하나가 놓아야 할 때 놓질 못하고, 버려야 할 때 버리질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되었건 미움이 되었건, 현재 그럴 필요가 없고 도리어 삶을 불편하게 하고 거추장스럽게 한다면 그런 감정과 생각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미워했다고, 또 그렇게 미워할만한 이유가 충분이 있었다 해서 지금까지도 아득바득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에 사랑했다고, 또 그렇게 사랑할만한 이유가 충분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 억지로 사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땐 그랬을 뿐입니다.
사마타는 이렇게 집을 청소하듯, 옷장을 정리하듯, 우리의 마음 창고를 활짝 열어서 낡고 쓸모없는 생각과 감정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비우는 과정입니다.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불필요한 과거의 유산입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마타의 첫걸음입니다. 그 다음엔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이나 과장된 상상과 불안을 버려야 합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현재 내 마음을 지배하는 생각과 감정에 도취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생각한다고 영원히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니고, 지금 그렇게 느낀다고 영원히 그렇게 느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또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멈추고 찬찬히 아내의 얼굴을 살피셨다. 
“어떻습니까? 저 나름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는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십니까?”
아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네, 조금은요. 하지만 부처님, 의심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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