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울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기로 한다/ 모른 척 다른 데 바라보기로 한다// 혼자 울다 그칠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다 웃을 수도 있도록/ 나는 여기서 무심한 척/ 먼 하늘 올려다보기로 한다”
이 시는 이문재 시인의 시 ‘혼자 울 수 있도록-오래된 기도 3’의 앞부분이다. 곁에 있되 혼자만의 시간을 배려하는 마음이 잘 느껴지는 시이다. 함께 있되, 혼자만의 시간의 넓이와 깊이를 잘 지닐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감동적이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야말로 혼자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한꺼번에 여럿의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한 공간을 함께 공유하던 때가 그립다. 그러면서 동시에 혼자의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단지 고립의 시간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도 되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혼자의 시간은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한 까닭에 이 코로나 대유행이 몰고 온 삶의 변화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내일의 모습으로 점차 뿌리내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혼자의 시간에 명상과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이에 따라 유명 호텔에서도 이를 응용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가령 티베트와 네팔 등에서 명상 도구로 널리 활용되어 왔던 싱잉볼을 활용한 명상 프로그램이 그 일례가 될 것 같다. 싱잉볼은 노래하는 그릇이라는 의미이다. 싱잉볼 소리를 들으며 하는 명상 시간에 관심과 호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독서량도 상당히 늘었다. 특히 문학 관련 도서를 찾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 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 소설, 힐링 판타지 장르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공감과 위로의 장르인 문학 분야 도서들이 구매에 있어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현상은 혼자의 시간이 몰고 온 또 하나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른 독자들 사이에서 그림책 인기가 높은 것은 더더욱 주목할 만하다. 나도 올해에 두 권의 그림책을 번역해서 출간했다. 하나는 달라이 라마 존자의 첫 번째 동화를 번역한 책이었고, 또 하나는 내향적인 사람들을 위한 그림책이었다.
그런데, 그림책을 함께 읽는 어른들의 모임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있고, 이보다 더 용기를 내서 그림책을 직접 만들어보는 일에 도전하는 어른들도 증가하고 있고, 이에 맞춰 그림책 전문서점도 곳곳에서 개점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어른들 사이에 그림책 열풍이 신선하게 불고 있는 것이다.
그림책 전문가들은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안에 살고 있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어른으로서 지금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게 되는데, 이것이 행복감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그림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느릿함, 호기심, 재치와 웃음, 어린 시절의 추억, 탐험, 통쾌함, 원색의 그림 자체가 주는 싱그러움 등에서 매력을 새롭게 느낀다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열풍의 또 다른 이면에는 힐링과 치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놓여 있고, 그것은 또 혼자의 시간이 우리의 일상적인 패턴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의 경전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 가운데에도 혼자의 시간을 잘 단속할 것을 당부한다. ‘법구경’에서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조련사가 말을 잘 다루듯이 자신을 잘 다스려라.”라는 말씀이 있고, 또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늘 살펴라. 지혜 있는 사람은 하루 세 번 자신을 관조한다.”라고 이를 정도이니, 마음챙김과 자아성찰의 중요성은 거듭거듭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출요경’에서 “먼저 자기 몸을 바로 하고 난 뒤에 남을 바로잡아라. 자기를 바로 한 사람을 '가장 수승한 자'라고 일컫는다.”라고 설하신 것도 수행의 처음이 혼자의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있다는 뜻이 담겨 있을 테다.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레 내려가/ 가만히 앉으세요/ 그리고/ 숨을 쉬세요/ 부드러운 둘레와/ 밝은 둘레와/ 입체적 기쁨 속에서”
이 시는 개화의 때를 보내면서 쓴 나의 졸시 ‘꽃’ 전문이다. 내면도 하나의 공간이다. 몸 바깥에만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건축물 내부에만 공간이 자리 잡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더 큰 공간이다. 우리의 내면이 꽃의 내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꽃의 내부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우리의 둘레에는 부드러움과 밝음과 기쁨이 가득할 것이다.
혼자의 시간은 이처럼 우리의 아름다운 내면을 자꾸 발견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경전에서 말씀하셨듯이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꽃의 내부와도 같은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문태준(文泰俊)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애지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 제주불교방송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