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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원명스님의 마음산책

밀린다왕문경(7)

  • 입력 2021.07.01

(밀린다팡하 Milindapanha, 나가세나비구경) 

 

  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를 말하라고 한다면 지혜와 자비를 대다수는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지혜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 반야(般若), 혜(慧) 즉 판단작용은 그 범위가 아주 넓은데, 크게 대별 하면 나쁜 지혜 또는 그릇된 지혜인 악혜(惡慧)와 선한 지혜 또는 바른 지혜인 선혜(善慧)로 나누게 됩니다. 예를 들어, 팔정도의 정견(正見)은 선혜에 속하며 그 반대인 부정견(不正見) 또는 사견(邪見)은 악혜에 속합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악혜 즉 그릇된 판단작용도 여전히 판단작용이므로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지혜, 반야 또는 혜라고 할 때는 선혜만을 뜻합니다. 이 경우, 즉 선혜로서의 판단작용 즉 식별력(識別力)을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는 택법(擇法)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법(法)을 살펴서 참된 것[眞]과 거짓된 것[僞], 선한 것[善]과 악한 것[不善]을 판별하여, 참된 것과 선한 것을 취하고 거짓된 것과 악한 것을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혜(慧) 즉 판단작용 중에서도 결택 또는 결단의 능력이 있는 것을 가리켜 특히 지(智, 산스크리트어: jnana, 즈냐나)라고 하는데, 이 때의 결택 또는 결단은 의심·무명 등의 번뇌를 끊어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한편, 지(智)·견(見)·명(明)·각(覺)·해(解)·혜(慧)·광(光)·관(觀)을 통칭하여 혜의 여덟 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성인의 지혜인 무루혜 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지혜로서, 부처가 가진 지혜를 가리켜 흔히 반야(般若)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뜻에서의 반야는 모든 사물[事]이나 도리[理]를 명확하게 뚫어보는 깊은 통찰력을 말합니다. 이러한 뜻에서의 반야는 일반의 세속적인 지혜 또는 주관과 객관의 상(相)을 떠나지 못한 상태 또는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혜인 유분별지(有分別智)가 아니며, 아직 부처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다른 성인들이 증득한 여러 무루혜 또는 무분별지보다도 더 뛰어난, 진여를 바르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깨우친 지혜인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智)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진여를 전면적으로 깨우친 지혜, 또는, 진여의 완전한 지혜를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智)라 합니다. 

초기 불교에서도 제행무상·일체개고·제법무아를 반야에 의해서 안다고 주장하지만, 반야는 대승불교에서 특히 중요시되었습니다. 반야는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 수행하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육바라밀(六派羅蜜) 중 반야 바라밀 또는 지혜 바라밀로 설법되고 있으며,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로 여겨져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역으로, 선정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반야는 “모든 부처(諸佛)의 어머니(즉, 성불의 원인)”라 불리며, 이러한 교의는 많은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이나 논서에서 널리 강조되고 있습니다.

밀린다왕문경에서는 지혜와 신앙의 특징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왕은 물었다. 
주의작용의 특징은 무엇이며,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주의작용은 파지(把持, 움켜잡음)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합니다. 주의작용은 어떻게 하여 파지를 특징으로 하며, 지혜는 어떻게 하여 끊어버림을 특징으로 합니까. 비유(譬喩)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그대는 보리를 베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보리를 벱니까. 
왼손으로 보릿대를 움켜잡고 오른손으로 낫을 들어 보리를 벱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그와 같습니다. 출가자(修行者)는 사고력에 의하여 자기 마음을 움켜잡고(把持) 지혜에 의하여 자기의 번뇌를 끊어버립(斷切)니다. 이같이 하여, 주의작용은 파지(把持)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합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왕은 물었다. 
나가세나 존자여, 신앙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청정(淸淨)과 대망(大望)입니다. 
청정은 어떻게 하여 신앙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마음에 신앙심이 솟아날 때 신앙심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 즉 탐욕, 성냄, 나태, 자만, 의심)를 쳐부수며, 또 장애를 벗어난 마음은 가라앉고(明澄) 깨끗해지고 흐림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럼 대망은 어찌하여 신앙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출가자는 남들의 마음이 어떻게 해탈했는가를 성자류(聖者流)에 든 경지(預流果)와 한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경지(一來果)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경지(不還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경지 등에 뛰어들어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느끼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이같이 신앙의 특징은 대망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마치 이와 같습니다. 큰 비가 산마루에 내린다고 합시다. 그 빗물은 낮은 곳을 따라 흘러 산골짜기와 벌어진 바위틈을 메우고 강을 채우고 강의 양 뚝에 범람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거기 와서 강의 깊이나 넓이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망설이며, 강기슭에 서 있다고 합시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자기의 체력과 역량을 알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강물에 뛰어들어 저쪽 뚝으로 건너갔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그 사람이 건너 간 것을 보고 그 강을 건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나머지 사람들이 강물에 뛰어드는 것처럼, 앞에 말한 4단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신앙에 의하여 격류(激流)를 건너고, 근면에 의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넌다. 
정진(精進)에 의하여 모든 괴로음을 뛰어넘고, 지혜(智慧)에 의하여 청정하게 된다. 

잘 알겠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원명스님 (조계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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