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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보 칼럼
부처님과의 약속
“좋은 아침입니다. 실장님, 출근하셨어요?”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닌 신입 직원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게 직원들과도 살갑게 잘 지내고, 거래처의 요구를 인내심 있게 경청할 줄 아는 자세를 지녔다. 놓치기 아까운 인재 랄까. 슬쩍 돌아보니 먼저 출근한 남편이 대표실에 앉아서 서류를 읽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직원들도 활기차게 맡은 일을 시작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 풍경이지만 마음 가득 감사함이 차올랐다.
어두운 새벽, 조계사에서
7년 전,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남편의 회사가 머지않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아들이 입대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딸아이가 일하고 있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온갖 기계를 달고 누워있는 남편을 보며 다짐했다. 언젠가 회향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회사를 꼭 지키겠다고. 아들이 제대하기 전까지는 내가 회사를 지킬테니 당신도 꼭 일어나야 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일주일이 지날 무렵 천만다행으로 남편은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나와 딸아이밖에 알아보지 못했고 말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곁에 오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당장 수습해야 할 일들이 태산 같았으나 아이처럼 나만 바라보는 남편에게 차마 간병인을 둘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가장 먼저 현실을 직시한 사람은 딸아이였다. 공부로는 한 번도 속을 썩여본 적 없었던, 나와 남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딸은 대학에서 자리를 잡겠다는 뜻을 접고 병원에 남았다. 그날 새벽, 혼자 조계사를 찾은 나는 법당에 엎드려 펑펑 울면서 부처님께 기도했다.
‘남편이 건강해지면 부처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남편이 건강해질 수 있게, 제가 남편과 회사를 지킬 수 있게, 제가 아들과 딸의 어머니로 떳떳하게 살 수 있게 힘을 주세요.’
절에 올 수 있는 시간은 새벽밖에 없었다. 인적이 드문, 어둑어둑한 조계사 도량에서 나는 마음껏 울었다. 이를 악물고 꿋꿋하게 버텼던 몸과 마음은 부처님 앞에서 하염없이 약해졌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분은 부처님뿐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을 원망하면서도 기댈 수 있는 곳,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남편이 퇴원하던 날, 나는 부처님께 약속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3년 동안은 가족을 위해 살겠습니다. 아들이 제대하고, 회사가 무너지지 않고, 남편이 건강을 되찾으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주시는 소임을 다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가족을 위해 살겠습니다.”
가족의 이름으로
3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남편을 대신하여 회사를 운영하며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일단 부딪히고 해결했다. 힘은 들었으나 직원들과 거래처에서 나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느껴질 때면 뿌듯하기도 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의 재활 운동을 함께했다. 남편의 상태는 아주 느리게 좋아졌다. 한 걸음 두 걸음 느릿느릿 불안하던 걸음이 단정해지고, 걷는 속도도 천천히 빨라졌다. 남편의 건강은 결코 한 번에 좋아지지 않았다. 천 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날마다 재활 운동을 했던 결과가 쌓이고 쌓여, 하루하루 미세하게 달라졌고 마침내 어눌하지 않은 발음으로 말을 하고, 내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남편의 재활과 회복은 그 자체가 수행이었고 간절한 기도였음을 이제는 안다.
입대 후 내내 아버지를 걱정했던 아들이 무사히 제대했을 때, 저절로 감사 기도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실 고등학교까지 아들의 성적표를 받고 웃어본 적이 없었다. 딸아이와 비교하며 속이 터질 때도 많았다. 그랬던 아들이 제대 후 스스로 공부를 해 유학을 가더니 4년 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남편의 몸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좋아졌고, 회사에 출근하여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자신의 꿈을 접은 채 장장 7년 동안 병원에서 근무했던 딸아이는 작년, 대학에서 부름을 받아 초빙교수가 되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딸이 오히려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남편과 함께 회사에 간다. 물거품이 아닌 단단한 현실 위에 서 있는 회사에서 발견한 보물, 신입 직원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요즘 청년 같지 않게 싹싹하고 일 잘하는, 놓치기 아까운 이 신입 직원은 바로 아들이다. 사람들은 내게 남편도 이제 건강하고, 회사도 잘 되고 있고, 딸은 교수에 회사를 물려받을 건실한 아들이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까지,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파도가 있었는지 모른다.
남편이 쓰러진 후 7년 동안 내게 어떤 파도가 닥쳐왔는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파도를 막아냈는지 아는 분은 부처님뿐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조차 싫어졌을 때, 속에서 들끓는 열불을 삭히지 못해 헤맬 때,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이 계셨기 때문임을 이제는 안다. 어두운 새벽마다 부처님은 내 속을 까맣게 태우는 뜨거운 불을 가만히 꺼주셨고, 소리 내어 울 곳을 찾지 못하는 나에게 품을 내어주셨다. 이 감사함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부회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이제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킬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총동문회 부회장 소임을 마치고 지금은 제26대 신도회 부회장 소임을 맡고 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돌아보면 자식들이 엇나가지 않았던 것도, 남편이 건강을 회복한 것도 모두 감사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늘 느끼는 이 감사한 마음이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힘이 되리라. 아침마다 부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윤상희 (수선화, 조계사 신도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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