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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백성호의 국수가게

천국은 하늘에도 없고 바다에도 없다

  • 입력 2021.09.01

한 그릇

 

『도마복음』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약 2000년 전에 기록된 문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정경(正經)으로 채택되지 못했고 외경(外經)으로만 간주되는 복음서입니다. 이 『도마복음』에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담겨 있습니다. 어찌 보면 불교의 가르침과 상당히 맥이 통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주님,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다에 있는 것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에 대한 논쟁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에게 도대체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 물은 겁니다. 예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천국이 하늘에 있는 것이라면 공중을 나는 저 새가 먼저 닿을 것이고, 천국이 바다에 있는 것이라면 물속을 헤엄치는 저 물고기가 먼저 닿을 것이다.”

 

예수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천국은 하늘에도 있지 않고, 바다 속에도 있지 않다고 선언한 겁니다. 유대인들은 천국이 어떤 특정한 공간에 왕국처럼 있다고 믿었는데, 그런 생각을 부수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천국은 하늘에도 있지 않고, 바다에도 있지 않다. 천국은 차라리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바깥에 있다.”

 

예수는 천국이 저 높은 구름 위에 있거나, 저 깊은 바다 밑에 있는 미지의 왕국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갠지스 강가에 있는 화장터


두 그릇

 

인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외신 뉴스를 보면 코로나 사망자를 화장도 하지 않고 다리 위에서 갠지스강에 던져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갠지스강에 대한 인도인의 종교적 사고가 깊이 깔려 있습니다. 

 

갠지스는 힌두교인에게 ‘성스러운 강’입니다. 13억 인도 인구의 80%가 힌두교를 믿습니다. 힌두교에는 창조와 유지, 그리고 파괴의 신이 있습니다. 수억에 달하는 인도의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신입니다. 무언가 만들어지고, 그게 일정 기간 유지되고, 때가 되면 파괴됩니다. 세상의 작동 원리를 신들이 상징하는 겁니다. 그걸 브라마(창조)와 비슈누(유지)와 시바(파괴)라는 세 신이 담당합니다.  

 

먼 옛날 인도에 엄청난 대홍수가 났습니다. 그때 한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이 하늘에 기도를 했습니다. 땅위에 넘치는 물을 하늘로 가져가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천신들이 땅의 물을 하늘로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랬더니 땅이 메마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가물어 살 수가 없었습니다.

 

브라만이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늘의 물을 내려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가져온 물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늘의 물을 한꺼번에 내렸다가는 다시 대홍수가 날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수미산에 사는 시바신이 나섰습니다. 하늘의 물이 시바의 머리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리게끔 했습니다. 그게 갠지스강이 됐습니다. 

 

인도 북동부의 강은 모두 동쪽으로 흐릅니다. 유독 갠지스강만 북쪽으로 흐릅니다. 고대 인도인의 눈에는 거꾸로 흐르는 강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이 시바신이 사는 천국으로 흘러간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 뒤 갠지스강에 유골을 뿌리는 이유입니다. 

 

 

 

 

 

세 그릇

 

갠지스강에서 한 바라문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힌두교인은 갠지스강에서 목욕만 해도 죄를 씻는다고 믿습니다. 신성한 강이니까요. 그걸 지나가던 인도의 비구니 스님이 봤습니다. 비구니 스님이 물었습니다. 

 

“왜 강물에 몸을 씻는 겁니까?”

 

목욕을 하고 있던 바라문이 답했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요. 이 신성한 강물이 인간의 죄를 씻어주니까요. 그렇게 죄를 씻어서 해탈을 이루고자 함이오.”

 

그 말을 듣고 비구니 스님이 말했습니다. 

 

“저 강물이 정말로 죄를 씻어준다면, 갠지스 강의 물고기는 모두 해탈을 이루었겠소.”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의 표정이 어땠을까요. 마땅히 반박할 답변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비구니 스님의 지적이 이치에 맞기 때문입니다.

 

 

 

 

 

네 그릇

 

어떻습니까. 도마복음 일화와 갠지스강 일화가 서로 비슷하지 않나요. “천국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예수는 “네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의 안에서 천국을 찾는다면, 너의 바깥에도 천국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을 한 셈입니다.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바라문을 향한 비구니 스님의 지적도 같은 맥락입니다. 강에서 목욕을 한다고 죄가 씻어질까요. 그건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면 죄가 씻어질 것’이라는 바라문의 신념 체계에 불과합니다. 일종의 종교적 의식일 뿐입니다. 그걸 아는 비구니 스님이 “천국은 당신 안에 있는데, 왜 바깥에서 찾고 있느냐?”고 지적한 셈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를 무척 아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고고하고 당돌하게 피어나는 매화는 지조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맨 처음 피는 매화를 만나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매화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지치고 낙담한 선비가 집에 돌아왔더니 자기집 마당에 매화가 피어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불국토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산과 거친 들을 헤집고 다니며 매화를 찾는 일이 아닙니다. 내 안에 이미 피어있는 매화를 찾는 일입니다. 내 집 마당에 이미 피어있는 매화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러니 본래부터 내 안에 있던 매화입니다. 그게 본래 부처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도 닿지 못하는 천국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의 출발점은 눈을 내 안으로 돌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새벽에 해가 뜰 무렵의 갠지스강


갠지스강에서 만난 힌두교 수행자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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