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연재완료] 성재헌의 경적독후

말꼬리를 쫓는 태도

  • 입력 2021.10.01

원각경 위덕자재보살장 말씀에서 

 

남편은 샘물처럼 끊이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를 건너 마을 구경꾼처럼 눈만 껌뻑거리면서 지켜보아야 했다. 남편은 꽤나 무료하고 또 은근히 샘도 났다. 해서 두 사람의 말 틈 사이로 슬쩍 발을 들이밀었다. 
“부처님, 마음의 본성이 거울과 비슷하다는 말씀이시죠?”
부처님이 고개를 돌려 남편을 돌아보셨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마음을 거울처럼 사용하는 것이 수행이라 하셨는데, 우리 마음의 성품이 본래 거울과 같다면 다시 거울처럼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 싱긋이 웃으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특별히 수행이란 말을 붙여 새롭게 깨닫고 시도하고 노력하고 익혀야 할 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속내를 들킨 남편이 머쓱한지 씩 웃었다. 
부처님은 잠시 눈길을 거두고 말씀이 없으셨다. 그 짧은 순간의 침묵이 남편에겐 여름 밤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무겁고 날카롭고 또 두려웠다. 자신의 경솔함을 알아차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사님,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말’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자리를 통해 거사님에게 정말 드리고 싶은 선물은 그 ‘말’ 이상의 것입니다. 저는 거사님께서 이 자리에서 오고 가다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말들’을 주워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남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처님께서 은은한 눈빛으로 남편을 돌아보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세상에 좋은 말들은 옛날부터 항상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그 좋은 말만큼 세상이 좋았던 시절은 극히 드뭅니다. 개인의 틀에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말, 이치에 딱 들어맞게 말하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자신이 내뱉은 말만큼 아름답게 살아가고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요. ‘중생이 본래 부처다’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정말 부처답게 살아가고, 정말 맑고 깨끗하고 향기롭게 그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 흔하던가요?” 
남편이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서 정중히 사과드렸다. 
“부처님, 제 경솔함으로 인해 부처님의 노고를 헛되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부처님께서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으셨다.  
“네, 맞습니다. 조금 전 거사님의 질문은 그 내용도 사려 깊지 못했고, 그 태도 또한 진중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지금 제가 거사님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색을 거치지 않은 가벼운 말로 엮어진 대화, 말이 뜻하는 바를 살피지 않고 말의 꼬리만 따라다니는 태도는 거사님이 진실의 길, 진리의 길, 새로운 삶의 길로 나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음성은 따듯했고, 그 웃음은 아이처럼 천진했다. 그런 부처님 모습에 남편은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처님께서 장난꾸러기처럼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셨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질문하시면 안 됩니다.” 
남편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방안을 쩌렁 울리는 우렁찬 소리에 부처님도 아내도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고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왕에 꺼낸 질문이니 대답을 해야겠지요. 조금 전 ‘우리 마음의 성품이 본래 거울과 같다면 다시 거울처럼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 않냐’고 물으셨지요?”
“네, 부처님.”
“그럼 그 질문을 점검해 봅시다. 거사님의 질문에는 ‘우리 마음의 성품이 본래 거울과 같다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네.”
“그럼 묻겠습니다. 거사님은 거사님 마음의 성품이 거울과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어렴풋이 이해는 합니다.”
부처님이 싱긋이 웃으셨다.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신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확실히 알고 철저히 인정하지 못한다면, 거사님은 거사님 마음을 끝내 거울처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제도 인정하지 않는데 그 전제를 바탕으로 삼고 전개하는 뒷얘기야 거론해 뭣하겠습니까? 늘어놓아보았자 쓸데없는 말잔치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거울처럼 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니 없니’를 논하는 말들은 거사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턱을 고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부처님께서 왜 저에게 ‘말의 꼬리만 쫓는 태도’라고 꾸짖으셨는지 이제 이해가 됩니다.”
부처님께서 허리를 숙여 남편에게 바짝 다가서며 물으셨다. 
“거사님은 어떤 것이 ‘말의 꼬리만 쫓는 태도’라 생각하십니까?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이 맑고 서늘했다. 
“앞서 거론한 말씀을 예로 들자면, 부처님께서 ‘마음의 성품은 거울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의 성품이 거울과 비슷하다면~’이란 전제를 깔고 이런저런 다음 생각을 요리저리 엮어가는 것 자체가 말의 꼬리만 쫓는 짓이지요.”
부처님이 또 물으셨다. 
“좋습니다. 그럼, 제 말의 꼬리를 쫓지 않고 제 말의 머리를 거머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또렷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정말 그런가?’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겠지요?”
부처님이 놀라신 듯 눈을 똥그랗게 떴다. 
“정말 그런가 돌아본다구요?”
“네, 부처님께서 ‘마음의 성품은 거울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빌미삼아 ‘지금 이렇게 작용하고 있는 이 마음이 정말 거울과 비슷한가?’ 하고 스스로 찬찬히 돌아보고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지요. 그런 세밀한 관찰을 통해 부처님 말씀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검증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간곡한 말씀과 노고를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셨다. 
“이제 거사님과 더불어 다음 이야기를 논할 수 있겠군요.”





 

성재헌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