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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스승
원각경 위덕자재보살장 말씀에서
부처님께서 한 모금의 차로 입술을 적시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자 그럼 이론을 제시하고,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두 분 모두 동의하는 과정을 거쳤으니, 이제 구체적으로 검증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지요?”
남편이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네, 부처님!”
느닷없이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이 살갑게 느껴졌는지, 부처님도 따라 소리 내어 웃으셨다. 웃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부처님께서 조용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자, 그럼 거사님께서는 ‘마음이 거울과 비슷하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검증하시겠습니까?”
남편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부처님, 지난날을 돌아보니, 저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생각들에 늘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일종의 강박이지요. 그 강박감은 저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늘 ‘무엇’이라는 바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은 없었던 거지요.
오늘 이렇게 부처님을 만나,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저도 일주일에 꼭 하루라도 시간을 내어 절에 갈 생각입니다. 깨끗이 목욕하고, 정갈한 옷을 입고, 걸음걸이부터 반듯하게 부처님을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자세로 머리 숙여 절을 하고, 처음 학교에 간 어린아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 새기고, 산꼭대기 바위처럼 우뚝 앉아 조용히 그 가르침에 따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리고 꼭 절에 가지 않더라도, 가능하면 매일 아침 조용한 시간에 일찍 일어나 향이라도 하나 사루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단 10분이라도 좌선하며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사마타를 닦고, 삼마발제를 닦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부처님, 그런 시간을 가지며 세월을 보내다 보면 부처님께서 보신 것을 저도 보고, 부처님께서 아신 것을 저도 알고, 부처님께서 느끼신 것을 저도 느끼고, 부처님께 깨달으신 것을 저도 확연히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남편의 진중한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부처님께서 환한 미소를 보이셨다. 부처님도 잠시 침묵하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특히 ‘밖으로만 내달리고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는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드는군요. 그런 깊은 후회와 반성 없이는 새로운 삶이 전개되지 않지요. 참 좋은 생각입니다, 지금 제 앞에서 다짐했듯이, 앞으로 그런 시간을 꼭 가져보시기를 기원합니다.”
부처님의 칭찬에 기쁜 마음이 솟았는지 남편이 환한 미소를 보였다.
“네, 부처님,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거사님” “예”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닦기에 더 좋은 시간, 더 좋은 장소, 더 좋은 스승이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남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모르겠는데요.”
부처님이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보고 말씀하셨다.
“보살님은 혹시 아십니까?”
아내는 아무런 말 없이 마냥 웃기만 하였다. 부처님이 싱긋이 웃으시더니 아내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이 늙은이가 너무 말이 많았으니, 이번엔 보살님이 한번 얘기해 보세요.”
아내가 찻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더니 남편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닦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마음이 거울처럼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실 단 한순간도 거울처럼 작동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확인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 어느 장소, 어떤 일에서건 바로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닦을 수 있지요.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직 낯선 사람일 경우에야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별한 선생님도 꼭 필요하지요.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신뢰가 생겼다면, 사실 특정 형식이나 대상은 무의미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돌아보며 물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이요?” “그럼요, 당연하지요.”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런 저런 말과 생각 또 행동이 서로 오가고 있는 그런 자리에서는 자연히 마음이 산만해지지 않소? 이런 산란함도 거두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수행이 가능하단 말이오? 당신도 참…”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마타와 삼마발제가 꼭 필요한 순간은 마음이 산만할 때이지 마음이 조용할 때가 아닙니다. 사마타와 삼마발제가 꼭 필요한 장소는 마음이 혼란스러운 장소이지 마음이 깨끗해지는 장소가 아닙니다. 사마타와 삼마발제의 효과를 가장 명백히 드러내주는 사람은 보기만 해도 불편한 사람이지 이름만 들어도 마냥 존경스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남편이 영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거 참 괴상한 말들을 하네. 당신 혹시 유마거사 얘기를 들은 거요?”
아내가 정색을 했다.
“유마거사가 누구예요? 당신도 알잖아요. 제가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
“그런데 그런 말들은 도대체 어디서 들었소?”
아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도 참~. 제가 지금 어디서 읽거나 들었던 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에요.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럼,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걸레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예요?”
“방바닥이 지저분할 때겠지.”
“비누가 꼭 필요한 순간은요?”
“얼굴과 손발이 더러울 때지.”
“빨랫감 중에서 세제의 효과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옷은 어떤 옷일까요?”
“가장 더러운 옷이겠지.”
아내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거 봐요. 사마타와 삼마발제도 마찬가지예요. 수행이란 마음을 청소하고, 마음을 씻고, 마음을 세탁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러니 번뇌가 없다면 수행도 해탈도 필요 없지요. 이미 깨끗한데 뭐 하러 청소를 해요?”
남편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지켜보는 부처님은 그저 싱긋이 웃으실 뿐이었다.
성재헌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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